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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아 Feb 05. 2024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달리기

달리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일어나

    너무나 빨리 아기를 떠나 보낸 후, 망가진 몸과 더 망가진 마음을 되잡기 위하여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달리기였다. 사실 그 외에는 생각할 거리가 없었다. 늘 언제나, 어려울 때마다 나는 엄마 품을 파고드는 내 아들처럼 달리기 속을 헤매였다. 막상 임신했다고 하니 달리기 못하는 게 가장 아쉬웠던 나였다. 내 입장에서는 실패가 없는, 명확한 선택이었다.



 

  아기를 잃었다는 진단을 받고 열흘 만에 주로로 나섰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친구들과 함께 뛰는 달리기가 직장 근처에 있었다. 소식을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다들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는데, 나만 다른 세상을 만난 친구들이 쑥쓰러웠다. 주로도 친구들도 똑같은데 나만 아기가 있었다가 없어졌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 시작 전부터 위축되는 마음을 떨치려 애썼다. 소식을 아는 친구들은 없이 안아줘서 고마웠던 순간. 가장 느린 그룹에서 천천히 5km를 뛰었다. 달리기를 해서 좋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너무 일찍 하게 되어서 씁쓸함을 안은 채 한강을 보았다. 무심하게 한강은 너무 빛났다지.


영하 12도에서의 달리기


  그 날도 달리기를 했다. 영하 12도로 떨어졌던 어느 날의 화요일. 나는 결국 나를 3~4개월 가량 괴롭혀 무지막지한 스트레스를 준 사람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게 되었는데, 그 신고가 (드디어!) 회사 대표에게까지 올라가 일종의 1차 징계가 이루어졌다. 조사가 이루어질 때까지의 업장 입장 제한 및 업무 지시 금지 등. 일종의 분리조치인 셈인데, 갑작스럽게 그 소식을 듣고 조금 멍했던 기억이 있다. 빨리 신고할 걸. 왜 그렇게 참았을까. 참는 시간 동안 망가진 몸과 마음은 결국 내 책임이 되었는데. 


  그 기쁜 소식을 듣고 안 뛸 수가 없었다. 영하 12도쯤의 추위를 이겨내면 더한 것도 이겨낼 것 같은 마음이었다. 뭐가 그렇게 처연할까 싶겠지만, 직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하다가도 내 잘못으로 아기를 잃은 사람으로 느껴질 때면 참을 수 없이 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 마음을 참고 또 참고 또 참으며 흘려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 비해 영하 12도는 별 것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뭐 실제로도 별 것 아니었는데(!) 석촌호수에는 사람이 역대급으로 적어 뛰기 편했고(!) 볼을 찢을 듯한 추위도 뛰면서 열이 오르자 편안(!)해졌다. 사진에 찍힌 것처럼 추위도 바람도 선명했기에 나는 더 신이 났다. 이 추위에 뛰는 사람은 별로 없을거야. 난 지금 이걸 뚫고 뛰고 있잖아. 괜찮아. 다 이겨낼거야. 


16.33km

  유산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힐링 달리기(!)의 화룡점정은 어느 날의 장거리였다. 장거리라 하기에는 너무 짧은 장거리지만, 15km 이상을 뛸 수 있다면 몸의 회복은 물론 심적으로도 뿌듯하리라, 더 튼튼해지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를 성공으로 마무리하자 더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주저앉을 수는 없지. 당연하지. 난 쉬더라도 이만큼은 뛸 수 있는 사람인걸. 나 자신에게 보여줬잖아. 뛰면서 아기를 생각했다. 또 와. 엄마한테 꼭 와. 꼭 또 와.  


  장거리, 그리고 꼬박꼬박 달리기를 실천하자 몸은 그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별안간 1km 최고 기록까지. 주 3회 달리기를 실천한지 2주가 되자 몸무게도 1kg쯤 빠져 가벼워졌다.



  아직 극복은 현재진행형. 그러나 내 잘못이 아니었단 것, 설사 내 잘못이더라도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주저 앉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는 것 등을 달리기를 통해 배우고 있다. 그러한 체감은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오늘의 나를 일으킨다. 


그렇게 달리기를 한다.


평생 잊지 못할 2024년 1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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