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일어나
너무나 빨리 아기를 떠나 보낸 후, 망가진 몸과 더 망가진 마음을 되잡기 위하여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달리기였다. 사실 그 외에는 생각할 거리가 없었다. 늘 언제나, 어려울 때마다 나는 엄마 품을 파고드는 내 아들처럼 달리기 속을 헤매였다. 막상 임신했다고 하니 달리기 못하는 게 가장 아쉬웠던 나였다. 내 입장에서는 실패가 없는, 명확한 선택이었다.
아기를 잃었다는 진단을 받고 열흘 만에 주로로 나섰다. 그 날 정말 다행스럽게도, 친구들과 함께 뛰는 달리기가 직장 근처에 있었다. 내 소식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았기에 다들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는데, 나만 다른 세상을 만난 듯 친구들이 쑥쓰러웠다. 주로도 친구들도 똑같은데 나만 아기가 있었다가 없어졌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 시작 전부터 위축되는 마음을 떨치려 애썼다. 내 소식을 아는 친구들은 별 말 없이 안아줘서 더 고마웠던 순간. 가장 느린 그룹에서 천천히 5km를 뛰었다. 달리기를 해서 좋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너무 일찍 하게 되어서 씁쓸함을 안은 채 한강을 보았다. 무심하게 한강은 너무 빛났다지.
그 날도 달리기를 했다. 영하 12도로 떨어졌던 어느 날의 화요일. 나는 결국 나를 3~4개월 가량 괴롭혀 무지막지한 스트레스를 준 사람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게 되었는데, 그 신고가 (드디어!) 회사 대표에게까지 올라가 일종의 1차 징계가 이루어졌다. 조사가 이루어질 때까지의 업장 입장 제한 및 업무 지시 금지 등. 일종의 분리조치인 셈인데, 갑작스럽게 그 소식을 듣고 조금 멍했던 기억이 있다. 빨리 신고할 걸. 왜 그렇게 참았을까. 참는 시간 동안 망가진 몸과 마음은 결국 내 책임이 되었는데.
그 기쁜 소식을 듣고 안 뛸 수가 없었다. 영하 12도쯤의 추위를 이겨내면 더한 것도 이겨낼 것 같은 마음이었다. 뭐가 그렇게 처연할까 싶겠지만, 직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하다가도 내 잘못으로 아기를 잃은 사람으로 느껴질 때면 참을 수 없이 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 마음을 참고 또 참고 또 참으며 흘려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 비해 영하 12도는 별 것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뭐 실제로도 별 것 아니었는데(!) 석촌호수에는 사람이 역대급으로 적어 뛰기 편했고(!) 볼을 찢을 듯한 추위도 뛰면서 열이 오르자 편안(!)해졌다. 사진에 찍힌 것처럼 추위도 바람도 선명했기에 나는 더 신이 났다. 이 추위에 뛰는 사람은 별로 없을거야. 난 지금 이걸 뚫고 뛰고 있잖아. 괜찮아. 다 이겨낼거야.
유산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힐링 달리기(!)의 화룡점정은 어느 날의 장거리였다. 장거리라 하기에는 너무 짧은 장거리지만, 15km 이상을 뛸 수 있다면 몸의 회복은 물론 심적으로도 뿌듯하리라, 더 튼튼해지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를 성공으로 마무리하자 더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주저앉을 수는 없지. 당연하지. 난 쉬더라도 이만큼은 뛸 수 있는 사람인걸. 나 자신에게 보여줬잖아. 뛰면서 아기를 생각했다. 또 와. 엄마한테 꼭 와. 꼭 또 와.
장거리, 그리고 꼬박꼬박 달리기를 실천하자 몸은 그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별안간 1km 최고 기록까지. 주 3회 달리기를 실천한지 2주가 되자 몸무게도 1kg쯤 빠져 가벼워졌다.
아직 극복은 현재진행형. 그러나 내 잘못이 아니었단 것, 설사 내 잘못이더라도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주저 앉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는 것 등을 달리기를 통해 배우고 있다. 그러한 체감은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오늘의 나를 일으킨다.
그렇게 달리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