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입생, 3학년 1학기를 마치며
올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방송대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12년, 이제 30대 중반이라 우기기 조금 어려운 나이에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시작은 또 회사일로 거슬러 올라갔다. 브런치에도 쓴 것처럼 나는 작년 연말~올해 연초 직장내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문제로 유산도 했다(고 믿는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회사를 그만두면 뭘할까'란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더욱이 가장 큰 문제는 기존에 하던 일인 '리서처'와 정중히 작별하고 '데이터분석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나의 노력이 크게 소용이 없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의지는 좋았지만 제대로 된 교재나 수업을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게다가 공부를 해도 깔짝깔짝. 몇 번 하고 시들해지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공부 효용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데이터분석가 채용공고를 보면서 나는 냉철하게 생각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는 채용공고에 나온 업무 하나를 소화할까말까다'.
공부를 더 해야했다.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했고, 수업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전직'을 얼마나 원하는지 나 자신을 시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정말 직업을 바꾸고 싶어? 그럼 뭐했어? 라는 자문자답에 어떤 결과로서, 증명이 필요했다.
운 좋게도 이런 생각이 방송대 2024년도 1학기 추가모집 전에 확고해졌다. 그렇게 나는 약 40만 원여의 저렴한 등록금(!)을 내고 통계데이터과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수업은 2월말부터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육퇴한 게 아니면 평일에는 수업을 들을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2월말에 노션 캘린더를 만들어 한 주 강의를 어떻게 들을 지 미리 계획을 짰고, 회사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으며 강의를 들었다. 내게 주어진 평일의 학습시간은 출퇴근 합쳐 약 40분(지하철에 있는 순수 시간) 및 점심시간 1시간 반(3월부터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ㅠ). 사실 이것도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펼치고 치우고 하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순수하게 다 쓸 수 없는 시간이었다. 가능한 시간을 재고하기 전에 어떻게든 엉덩이 붙일 시간을 마련해야 했다. 점심시간에 약속이 있거나 회식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매일 꾸준히 앉아 강의를 들었다.
참으로 운이 좋게도, 3월과 4월은 임신 초기로 활동을 조금은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움직이지 않고 강의를 듣는 생활이 몸에도 잘 맞았던 것이다. 이런 우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쩌면 정말 공부해야 할 때였을지도,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강의를 듣는 것은 제대로 된 학습은 아니었다. 도시락을 먹으며 멍 때리면 강의는 순식간에 지나가 있고, 때로는 너무 힘들어 강의만 틀어놓고 한 귀로 흘려들은 적도 있었다. 게다가 책을 보면서 복습(!!)을 해야 실력이 느는 건데 복습할 시간은 정말... 흑흑 (절망)
그래도 매우 한 주 시작 전에, 어떤 강의를 들을 것인지 계획을 짜는 시간은 잡념을 사라지게 했다. 몰두할 것이 필요했던 걸까. 불순물이 끼여들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짜투리 시간에도 강의 듣고 책 보고. 단순하지만 내 의지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날이 이어졌다.
꾸준히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내 모습은 나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3월 말~4월 말 이어진 출석수업(일종의 중간과제가 부여됨)을 듣고 과제를 위해 책을 들춰보면서 '내가 무엇을 공부하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붙잡아 두던 과제의 실마리를 푼 날, 새벽 1시에 잠들어 5시간 자고 출근해야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잠들었다. 그렇게 순수한 기쁨은 정말 실로 오랜만이었다.
올해 5월은 쉬는 날이 많았다. 다음날이 쉬는날이면 아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끝내주게 놀아주기 위해 새벽에 일도 하고 과제도 제출했다. 피곤했지만 '보냈다!'하는 기쁨이 더 컸다. 과제 낼 때마다 진짜 뿌듯했다. 히히. 그리고 출석수업 과제 모두 만점을 받았다!
또한 매주 스터디에도 참여했다. 방송대는 단체 OT 후, 과목 스터디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 난 시간관계상 하나만 참여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매주 수요일 밤 9시~11시에 하는 스터디를 100% 다 출석했다. 총선으로 쉬는 날엔 서울대공원을 다녀온 뒤 졸면서 들었고, 어느 날은 아들을 재우다 이어폰으로 목소리만 들었던 적도 있지만, 여튼 100%였다. 이미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공부가 재밌어서, 그리고 나를 고양시키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세계가 넓어지듯 나의 마음의 시야도 트이고 있음을 나는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계속 난 열심히 했어, 난 만족스러웠어를 외치는 저의 최종 학점은 어떨까요? 대개 장밋빛 결과가 펼쳐지지만 공부는 시간! 노력! 현실은 현실!
지난 6월 9일, 기말고사 마지막날로 야심차게 시험 4개를 몰았건만 나름대로 연차까지 내며(!) 공부한 것보다는 시험 성적이 다소 아쉽다. 흑흑. 5개 중 A+은 2개, 1개는 A0, 2개는 B+로 예상된다. 1과목은 한 문제만 더 맞았어도 A0인데 흑흑 ㅠㅠ 하지만 이것도 내 실력임을 알기에 어쩔 수 없다. 1학기는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끝낼 수 밖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멋 모르고 신청한 5과목을 무사히 완주했다는 것만으로 내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2학기는 어떻게 해야할까? 11월 초에 출산이 예정되어 있어 고민했지만, 한 번 휴학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방송대 불문율이 있기에 깊게 고민한 끝에 욕심내지 않고 2~4과목 정도만 들을까 생각 중이다. 방송대는 임신, 출산 등을 한 재학생을 대상으로 기말고사를 과제로 대체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단, 최대 받을 수 있는 학점은 B+) 이러나저러나 공부할 마음만 있으면 완주할 수 있는 방송대 시스템이니 나도 힘 닿는 데까진 해보는 걸로.
+)추가. 2024.07.06 최종 성적
직장을 다니며, 만 2세짜리 아들을 키우며, 집안일도 해야 하는 여러 상황 속에서 1학기를 완주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사람은 단연코 남편, 배우자다. 스터디할 때 아들 재워주고, 기말고사 준비하는 아내를 위해 독박육아를 며칠씩이나 해준 남편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불가능한 공부! 그래서 더욱 틈틈히 하는 시간이 소중했고, 기뻤고, 재밌었나보다. (아마 전업으로 공부만 했으면 이렇게 재밌지 않았을 수도 ㅎㅎ) 2학기에도 많이 도와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