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이 된 우리의 일상, 왜?
한 사람이 큰 바위를 어깨에 메고 산 정상까지 오른다. 그 남자가 정상에 올라 그 바위를 내려놓으면, 그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바위가 산 아래로 구르는 걸 무심히 지켜보는 그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방금 전 한 일을 또 시작한다. 이 사람은 이런 무의미한 일을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 사람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스가 신의 이런 형벌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경멸하며 저항한 것으로 해석한다.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그의 반복하는 일상의 행동이 어떻게 신의 형벌에 대한 저항일까? 카뮈는 시지프스의 그 행위 즉, 바위를 메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은 명백히 무의미하지만, 이런 자신의 임무를 계속하겠다는 의식적 선택 그 자체가 바로 신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았다. 시지프스의 이런 선택과 노력은 신의 징벌에 좌절하기를 거부하고, 이렇게 선택함으로 자신의 자율성을 되찾는다. 시지프스의 지속된 노력 즉, 그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적 일을 수행하는 것은 극복할 수 없는 운명에 직면해서도 나름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인간 정신의 힘을 상징한다. 카뮈는 시지프스를 무의미하게 보이는 세계에서도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전형으로 읽었다. 신화 속 시지프스의 노력과 저항을 현대인인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실존적 저항의 한 형태로, 혹은 허무주의와 맞서는 투쟁 방식의 하나로 카뮈는 보았다.
일상에 갇힌 우리들
현대인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에서 비롯한 여러 의무를 갖게 된다. 이런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하는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남편이나 부인으로, 자식이나 부모로, 혹은 친구나 직장인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 의무도 감당하기 힘든 데, 거기에 필요하지 않은 것을 소비한 것 때문에 더 큰 짐을 지게 된다. 물론 소비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현대인이 느끼는 그 짐의 무게 때문에, 그걸 잊기 위해 소비가 일으키는 순간의 기쁨을 원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로 인해 내가 일상에서 지는 책임과 의무는 더 커진다. 물건을 사면 살수록, 시지프스의 바위는 더 커지고 무거워진다. 소비가 주는 순간의 기쁨을 느끼는 대가로 빚의 노예가 된다. ‘하고 싶은 일’보단 ‘해야 하는 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해 일상이 더 팍팍해진다. 이렇게 되면 일상은 다양한 관계에서 비롯한 여러 의무와 갚아야 할 빚만 있는 ‘감옥’과 같은 곳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일상은 오늘의 시지프스들에게 내리는 형벌이 된다.
오늘의 시지프스들에게 형벌을 가한 ‘선한’ 신들의 속삭임
우리는 어느새 인지 모르게 고객님이 되었다. 미디어는 국내 소비 위축을 걱정하는 뉴스를 계속해서 내보낸다.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징검다리 휴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 소비와 여행을 장려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당시 언론은 과소비를 경계시키며, 동시에 외제 상품을 사지 말고 국산품을 애용하라고 했다. 이러던 언론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학교 경제 수업 시간에도 이렇게 가르친다. 시민의 소비가 위축되지 않아야 공장에서 생산이 계속되고, 이런 생산량 증가는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생긴 일자리는 시민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 소비를 진작시키는 선순환 효과가 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선 이제 소비는 선한 것이다. 신용카드는 어떤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넘는 소비도 충분히 가능케 해 준다. 프로그램의 종류와 관계없이 텔레비전 화면 안에 있는 모든 상품이 광고다. 유튜브 콘텐츠나 인터넷 기사를 봐도 온갖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광고를 피할 수 없다. 일상에서 이용하는 모든 미디어가 사고, 또 사라고 은근히 혹은 대놓고 떠든다. “너에게 이 상품이 필요해, 이 상품이 너를 남들과 달라 보이게 할 거야, 이 서비스가 너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거야. 그러니 이용해 봐.”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광고는 너무나 친절하게도 우리가 무엇을 욕망해야 할지, 또 어떤 소비 취향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가져야 할지까지 다 정해 준다. 필요하지 않은 것도 꼭 필요하게 보이는 광고의 힘은 정말이지 저항 불가다. 광고를 보면 볼수록 사고 싶은 욕구는 점점 강해진다. 그러다 보니 대량 생산한 제품으로 소비자를 개성 있게 해 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마저 먹힌다. 소비주의 신들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우린 어쩌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무분별한 소비는 우리를 가둔 일상이란 감옥의 벽만 더 단단케 한다.
욕망에 충실하기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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