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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Jun 08. 2016

제주도의 여름, 하늘 부자가 되다

2015년 여름 휴가

벌써 여름 휴가를 준비해야할 시기가 왔다. 사실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든 해외로 갈지 국내에 머물지 정도는 결정해야한다.

그렇게 여름 휴가를 준비하던 중 작년 여름 휴가가 떠올랐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떠나는 여름 휴가. 모아둔 돈도 많이 없었고, 급하게 일정을 잡느라 제주도를 가게 됐다. 멀지도 않고,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제주도였지만 첫 여름 휴가라는 생각에 설레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일을 했었다.

확실히 고등학생 시절 단체로 다녀온 제주도와 자유롭게 나만의 여행을 하는 제주도는 천지차이였다.

돌과 바람, 여자가 유명한 제주도이지만 나에겐 다른 것이 마음에 들어왔다.

제주의 하늘. 드넓은 하늘을 한눈에 다 담지 못하는 경험은, 도심에서는 쉽게 할 수 없다.

제주도에 있으면 누구든 하늘 부자가 될 수 있다.


1. 여행 첫 날

김포공항에 도착하기 전부터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아무래도 장마철에 가는 휴가라 걱정이 많았는데, 현실이 되는 듯 했다. 제주도 날씨를 검색해보니 화창한 날씨라 나들이하기 좋다고 했지만, 괜한 걱정을 지우긴 어려웠다.

그래도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설렌다.


우려와 달리 제주도는 청명한 하늘을 자랑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렌트카를 수령받고 식사를 하러 떠났다. 아직 점심시간까지 2시간 정도 남았던터라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맛집으로 소문난 해물라면집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무한도전에서 나온 음식점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은 것 같다.

오픈 시간인 10시에 번호표를 받고 근처를 산책했다.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음식점이라 기다리는데 지루하진 않았다. 또 사진으로만 익히 봤던 카페도 근처에 있어 편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이렇게 사람이 많다. 다들 뒤엉켜서 음식을 기다리고, 음식을 맛본다. 아기자기한게 분위기도 좋았다. '타지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공간. 다만 파라솔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했다. 더운 날씨에 따가운 햇살까지 받으며 뜨거운 라면을 먹자니 조금은 힘들었다. 그럼에도 해물라면 맛은 일품이었다. 균형이 잘 맞는 맛. 자극적이지 않고 바다의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첫 날 묵을 숙소로 출발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예약한 게스트하우스 '500일의 썸머'. 외관만큼이나 깔끔한 내부. 위생상태도 훌륭했다. 자동차 없이는 찾아가기 어렵지만, 제주도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곳이다.


제주도에서 렌트카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 탓에 여유롭게 바다와 하늘을 즐기기 위해선 자동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해안가 도로에는 자동차도 많지 않아 운전하기 좋았다. 바쁜 일상에서 꿈꾸게 되는 해안가 드라이브. 제주도 여행 중 원 없이 즐겼다.


드라이브하던 중 만나게된 망고쥬스. 알고보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이름은 리치망고로 기억한다. 파란 하늘을 품은 제주와 샛노란 건물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더운 날씨에 지친 몸을 달래주기도 충분한 맛이었다.

주문한 망고쉐이크와 망고라쉬. 사실 이름은 가물가물하다. 왼쪽 음료는 생망고의 청량감을 느끼기 좋고, 망고라쉬는 좀 더 묵직한 달달함이 특징이었다.

음료 구입 후 가에 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어디에 앉아도 그림이 되는 곳. 제주도는 그런 곳이다.

넓은 하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있다. 서울 빌딩숲에 가려진 하늘이 익숙한 나에게 탁 트인 제주도의 하늘은 그야말로 선물이었다. 사람들이 제주도에 강력한 인상을 받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제주도하면 여기를 꼭 와야지. 오설록 녹차 박물관이다. 녹차를 좋아하는 나에겐 그야말로 천국 같은 곳.

녹차는 물론이고 아이스크림, 조각 케이크도 맛 봤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 없었다. 그런 탓인지 테이블과 바닥이 청결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웠다. 맛도 뭐...


이렇게 녹차밭이 조성돼 있어 좋았다. 이런 녹차밭은 보통 광고에서 접했는데, 실제로 보고 녹차밭 속으로 들어가니 기분이 새로웠다.


이곳은 카트장. 운전을 못하는 여자친구가 속도를 즐기고 싶다며 데려간 곳이다. 뭐 생각안하고 탔는데 생각보다 속도도 즐길 수 있고 좋았다. 사람이 많지 않았던 점이 좋았고.

특히 카트장 인근에는 야자수가 많이 심어져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좋았다. 한번쯤 들릴만한 곳.


사진은 없지만, 일찍 숙소로 돌아와 남은 시간을 보냈다. 술이 간절했지만 운전을 해야해서 술을 멀리 했더니 참기 힘들었다. 한라산 소주와 음식들을 사서 숙소에 돌아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쉬웠던 점은 500일의 썸머에서 편의점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모자른 음식과 술을 사러가기 힘들었다. 걸어서 40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또 가로등이 많이 설치돼 있지 않아서 솔직히 무서웠다.


2. 여행 둘째 날

500일의 썸머의 조식은 근사하다. 구성도 좋고 맛도 좋다. 늦잠을 자고 싶었으나 이른 아침 날 깨운 것은 조식이었다.

조식을 먹으며 하루의 일정을 점검했다. 이날은 우도도 가야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럼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이 숙소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몰고 저지문화예술인 마을에 위치한 제주 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사람이 많지 않아서 몸풀기에 좋았다.

미술관을 빌린 듯한 기분. 이렇게 차분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서울에선 쉽지 않다.

예술인마을도 잘꾸며져 있었다. 공원 같은 곳에 예술인들이 모여산다니... 꽤 부러웠다. 집도 나름 으리으리하던데.


성산일출봉. 고등학생 시절 졸업여행 때 가보고 오랜만에 들렸다. 9년 만에 방문한 성산일출봉은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된 후 자유롭게 둘러보니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탁 트인 시야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해녀들이 나를 다른 세계로 들여보냈다.


우도를 다녀왔는데 사진이 별로 없다. 돌하르방빵을 찍은 것이 전부. 우도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동차와 스쿠터로 여행을 했지만, 모르고 지갑을 놓고온 나와 운전면허증이 없는 여자친구는 아무 것도 빌릴 수 없었다. 운전면허증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

그래도 버스투어가 있어서 편하게 우도를 돌아봤다. 그런데 사실 제주도와 크게 다를게 없는 풍경에 맥이 풀린 것도 사실이다.

우도를 다녀온 후 다시 성산일출봉 근처에 위치한 흑돼지 음식점에 갔다. 돼지는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지만 제주도의 향기와 들떠있는 주변 사람들 덕에 맛이 배가 됐다.


둘째날 숙소였던 올레돔펜션. 특이한 외관이 맘에 들어 예약했지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어차피 내부는 평범하고, 겉만 돔 형태이니 당연할 수도.

다만 요리가 가능하단 점은 좋았다. 간단히 안주를 만들고 테라스에서 음악과 함께 술 한 잔했다.


백종원이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바지락찜. 간단하지만 맛도 좋고. 소주와는 정말 잘 맞는 안주였다.


이날은 술을 꽤 많이 마셨다. 마지막 밤이라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다음 여름 휴가 때는 해외로 가자.

휴가 이후 일상으로 돌아갈 걱정.

좀 더 먼 미래.

...

..

.

대화는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우리는 마르지 않는 대화 속에 살아간다. 매일 이야기를 나눠도 마르지 않는다. 삶은 이야기 그 자체이기 때문일까.


3. 여행 마지막 날

여행의 마지막 날. 여름 제주에 왔으면 전복 물회를 꼭 먹어야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따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였다. 아침이라 그랬던 것일까. 입맛의 차이였을까.

꼭 이걸 먹을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여행 중 귀중한 한 끼를 버린 느낌. 다음에 제주도를 다시 찾는다면 다른 음식을 먹을 것이다.


섭지코지. 제주도 여행 중 가장 만족한 관광지다. 바다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시원한 바람, 높은 하늘.

여행 중 소리를 내서 감탄한 곳은 섭지코지 뿐이다. 압도적인 자연이 주는 행복한 위압감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꽤 긴 시간을 걸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시 제주도에 간다면 이곳부터 들리고 싶다.


섭지코지를 걷는 중 만난 돌고래떼. 사진에는 한 쌍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꽤 많은 돌고래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뜻밖의 행운을 맞이할 수 있었던 섭지코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제주도에서도 멋진 해변으로 꼽히는 애월해변.

확실히 멋진 해변이었다. 이곳을 마지막 날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애월해변은 휴식을 취하며 여행을 정리하기 참 좋은 장소였다.

또 인근에 해변을 감상하기 좋은 카페들이 많아 여행에 지친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이렇게 앉아서 푹 쉬면 정말 좋다. 여행을 다녀온 후 한동안은 이 사진을 계속 꺼내봤다.

정말 평화로워 보인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식사. 고기국수.

바로 옆에는 수요미식회에 나온 고기국수집이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고기국수집을 왔는데, 충분히 맛있었다. 제주도 고기국수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내가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최고지.

고기국수 자체는 아주 맛있는 음식이었다. 진한 담백한 맛이 일품.


육지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1년 전 제주도의 높고 넓은 하늘을 잊고 살았다. 정말 재밌게 여행을 다녀왔지만, 일상에 적응하게 되면서 제주의 기억은 한 구석에 밀어넣었다.

1년이 지나고 여름 휴가를 계획하면서 사진을 다시 꺼내봤다.

하늘 부자로 지낸 2박3일. 늦은 여행기를 쓰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도 하늘만 볼 수 있는 곳이 없다.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고개를 숙였다. 일상에서 하늘보다 땅을 더 많이 보게 된 것도 이 때문일까.

하늘부자로 살 수 있는 제주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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