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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튼로프 Dec 23. 2019

2019 K-Pop 내 맘대로 어워드. 1부

마음에 남은 10곡의 노래들 

평론가도 전문가도 아닌 그저 음악 좋아하는 일개 덕후일 뿐이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름대로 결산을 해봅니다. 올 한해 즐겁게 들었고 이야깃거리가 있는 10곡의 노래들을 순위 없이 발매일 순서로 뽑아 봤습니다.

꿈꿨어 – 네이처 (2019. 1)

사실 이 곡은 2018년 11월 발매된 ‘썸(You’ll Be Mine)’의 수록곡인데 타이틀이 별 반응이 없어서 그런지 노래를 바꿔서 올해 1월 뮤직비디오까지 내고 활동했다. 처음 들었을 때 귀가 자동으로 반응했던 이유는 개성은 부족하지만 맑고 깨끗한 목소리들을 더블링으로 겹겹이 깔고, 코러스로 빈 공간을 메워 풍성하게 만든 보컬 믹싱 때문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었다 싶었는데 소속사 대표 정창환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소나무 같은 취향에 쓴 웃음을 지었다. 데뷔곡 ‘Allegro Cantabile(너의 곁으로)’를 켄지가 편곡해준 것도 SM에서 맺은 인연이겠지. 음악방송 무대에 사탕 막대를 들고 나와 ‘Kissing You’에 오마주를 보내는 걸 보고 또 한 사이클이 돌았다는 걸 느꼈다.

우와 – 다이아 (2019. 3)

본토보다 한국 클럽에서 유독 사랑받았던 2 Unlimited의 Twilight Zone, Black Beat의 How Gee, 666의 Amokk 같은 곡들이 있다. 대충 퉁 쳐서 유로댄스, 테크노로 불리던 비트들이 뽕끼와 결합해 만들어진 세기말 댄스 가요들. 표절과 레퍼런스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열화복사를 양산하다 보니 요즘 K-Pop에 비하면 불량식품 같지만 ‘K’에 함유된 ‘흥’과 ‘한’의 주 성분은 여기서 만들어졌다. 어디 가서 좋아한다고 말은 못했지만 노래방과 나이트에서 사랑했던 노래들이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으로 다시 소환되는 大레트로 시대.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계속 돌아오는 신사동호랭이가 만든 곡을, 망하지도 않는 MBK 엔터테인먼트 소속 티아라의 직계 후배 다이아가 부른다. 무한궤도처럼 돌아가는 ‘K’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제는 인정해야지.

Fancy - 트와이스 (2019. 4)

소녀시대가 Oh 이후에 The Boys와 I Got A Boy를 내놓으면서 커리어의 경계를 확장했던 것처럼 올해 트와이스도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했다. 넘치는 박력과 에너지로 질주하는 Breakthrough도 좋았고, 투스텝 개러지에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Feel Special도 훌륭했지만, 변화의 징조는 이미 Fancy에서 느꼈다. 눈가에 뿌려진 펄처럼 반짝이는 트로피컬 하우스 사이로 촌티 나게 쿵짝거리는 이탤로 디스코의 베이스 라인이 치고 들어와 위화감을 만들어내고, 신나야 할 코러스는 오히려 힘을 빼면서 뒤로 물러난다. 눈부시고 화려하게 빛나던 세계 속에 스며든 공허함과 외로움. 빠른 BPM에 맞춰 춤추고 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쓸쓸한 모순의 시간이 담겨 있다.

짐살라빔 – 레드벨벳 (2019.6)

샤이니가 Clue와 Note를 섞어 Sherlock을 내놨을 때도, 소녀시대가 I Got A Boy를 내놨을 때도 ‘서로 다른 곡들을 섞어 하나의 곡으로 만든다’는 개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중들은 난해하다고 기피했고 팬덤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그리고 올해 이 곡이 나왔을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행진곡처럼 경쾌하게 진행하던 버스(Verse)는 음산하고 중독적인 코러스로 점프하고 EDM 댄스 브레이크가 끼어들어 요동치다가 브릿지 구간에서 바닥까지 낙하하고 다시 수직으로 솟아올라 마무리하는 구조는 마치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청각경험을 선사한다. 이 곡의 진가는 콘서트에서 다시 한 번 느꼈는데 소원을 이루어 주는 주문이 아니라 집단 최면과 주술을 위한 부두교의 만트라(Mantra) 같은 에너지가 흐른다. I Got A Boy가 K-Pop의 혁신으로 재평가 받는데 걸린 시간 9년. 이 곡은 얼마나 걸릴지 기다려 보자.

도로시 – 설리 (2019. 6)

고백하자면 그룹 활동때도 관심 있던 멤버는 아니었다. 탈퇴 이후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며 어뷰징을 끌 때도 “조용히 살면 편할 텐데 왜 저럴까?”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음악활동을 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세 곡이 실린 싱글이 나왔을 때 놀랐고, 기묘하고 음산한 무드를 자아내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낮고 서늘한 음색으로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이야기하는 음악에 두 번 놀랐다. “당신들은 나를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나를 몰라. 그런데 어차피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잔혹한 우리의 세계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던 도로시는 질문에 미처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갚을 길 없는 무거운 빚만 남겨 두고, 다시 오즈로 영영 떠나버렸다.

Diamond – 백현 (2019. 7)

지미 잼 & 테리 루이스, 베이비페이스 & LA 레이드, 테디 라일리, 그리고 로드니 '다크차일드' 저킨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물급 프로듀서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K-Pop 월드. 추억을 소환하는 반가움과 한 시절이 지나가 버렸다는 씁쓸함이 교차하는 와중에 그래도 어떤 곡은 오랫동안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든다. 쪼개지는 비트를 듣는 순간 굳어버린 어깨는 바운스를 타고 삐걱대는 무릎은 버터플라이를 추고 싶어 진다. 마이클 잭슨에서 시작해 어셔, 시스코, 저스틴 팀버레이크로 이어지는 어떤 계보는 귀와 몸에 각인되어 있으니까. 그루브를 타면서 여유롭게 맴돌다가 순식간에 달려 들어 치명적인 팔세토로 설득시켜버리는 백현의 표현력에도 감탄했다.

Dream Run – NCT Dream (2019. 7)

성인이 되면 졸업해야 하는 시스템, 계획과 다르게 꼬여버린 플랜, 어른들의 복잡한 비즈니스가 만들어낸 알 수 없는 미래. 그래도 해맑고 화사하게 웃으면서 너와 내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을 기억해달라고 노래하는데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리듬 기타와 슬랩 베이스, 브라스 세션이 만들어내는 경쾌하고 흥겨운 Funk 사운드에서 떠오르는 이름은 잭슨 파이브, 뉴 에디션, 보이즈 투 맨. 아직은 거장이 되기 전,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아 미숙함이 묻어 있는 목소리로 부른 노래들. 세월이 흘러 같은 노래를 다시 부르는 걸 들어도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은 복원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멤버들이 ‘지금’ 목소리로 부른 노래는 ‘지금’ 들어야 한다.

Want It? (Imad Royal Remix) – ITZY (2019. 7)

전원 밀레니엄 이후 출생한 멤버들, 맥락은 없지만 일단 다르다고 지르고 내 멋대로 살 거니까 말리지 마라고 외치는 당돌한 태도, 압도적인 신체로 펼치는 서커스 같은 퍼포먼스. 3세대로 구분되는 트와이스가 여전히 정상을 지키는 와중에 등장한 같은 소속사 ITZY는 자연스럽게 4세대로 인식됐고, 때마침 걸그룹 Scene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정상에 오르는 성과도 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4세대의 시작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드웨어는 최신형으로 ‘달라달라’인데, 1세계를 향한 인정 투쟁의 미련을 못 버린 사장님의 운영체제는 ‘ICY’라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래도 원곡의 에너지를 리믹스로 한껏 증폭시켜 아예 터뜨려버리는 이 곡을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성능과 파워를 뽑아 내면 대단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맞추고 손맞대고 – 레드벨벳 (2019. 8)

R&B 싱어 퍼센트의 Rabbit Hole을 같이 만들었던 수민과 정동환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다는 곡 정보가 공개되고 15초 남짓 되는 티저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올해의 최애곡이 될 거라고 예감했다. 리듬을 만들어내는 드럼과 베이스는 복잡하고 차갑게 쪼개지는데, 고전적인 일렉트릭 피아노와 스트링, 벨이 감싸면서 베드타임 R&B의 은근하면서 섹시한 무드를 만든다. 예정에 없었으나 함께 밤을 보내고 맞이한 아침,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충만한 애정으로 차오르는 감정 변화를 화음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멤버들의 보컬도 훌륭하다. 원제가 '눈맞추고 몸맞대고'였다는 후일담까지 듣고 나면 머리 속 퓨즈가 새카맣게 타버린다.

Lion – 아이들 (2019. 10)

3분 37초라는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그려낸 거대한 서사시. 머리 속 영감과 계획을 실제 음악과 비주얼로 구현해낸 작가이자 감독 전소연의 실행력도 대단하고, 이걸 의도대로 정확하게 연기하는 멤버들의 표현력도 훌륭하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슈화는 곡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어린 사자의 성장’을 통째로 맡아서 전개하고, 수진은 고혹적인 퇴폐미로 상처입은 사자의 고통을 설득시킨다. 이국적인 음색이 매력적이던 민니는 피치를 한껏 올려 표효하고, 우기는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범접할 수 없는 여왕의 위엄을 담아낸다. 메인 보컬 미연이 간드러진 뽕끼를 줄이고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내면 소연이 독기어린 랩으로 인장을 찍고 선언한다.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의 여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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