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세운 다리. 세고비아의 수도교
세고비아에 위치한 수도교는 로마인들의 토목 공학 기술의 수준을 볼 수 있는 1985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처음 수도교를 보고 기도하는 다리냐고 물어보는 여행객도 있다. 그래도 조금 더 가까운 예측은 많은 기둥과 아치를 보고 그 속에 수도관이 있을 테니 수도교가 아니냐 하는 말도 한다. 비슷하긴 하지만 틀렸다. 수도교는 물을 공급하는 도랑 공사 중 다리를 부를 때 수도교라고 부른다. 그럼 수로는 어디에 위치할 까?
이렇게 다리의 상단에 좁은 폭으로 물이 이동한다. 로마인들의 당시 기술로는 현대의 수로 공사처럼 수압이 아닌 중력을 이용한 경사로만 물을 이동시켰다. 그래서 자세히 수도교를 관찰하면 다리는 조금 기울어져 있다.
공사의 기원은 약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초반으로 본다. 2만 개의 돌로 공사가 됐고, 아치만 해도 167개, 기둥 120개, 수로 폭은 30CM 정도 된다. 수도교의 길이는 728M에 불과하지만 전체 수로 공사는 16.20 Km에 이르는 거대한 공사다. 그럼 수원지는 어디에 있을까?
노란 부분이 세고비아 도시고 두 줄로 된 진한 남색이 수도교의 길이다. 남쪽에 위치한 Frio 강에서 수로가 연결이 돼있다. Azud Acueducto라고 쓰여있는 곳이 물의 출발 지점이다. 본래 Frio 강은 서쪽으로 흘러가는 폭이 좁은 강이다. 그런데 상류의 해발 1300M에서부터 물길을 인위적으로 세고비아 도시로 이동시키는 거대한 토목공사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이렇게 방향은 여러 번 바뀌지만 수로 공사의 기울기는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일정해야 했다. 그래서 산이 가로막고 있으면 터널 공사를 했고, 지대가 낮으면 다리 공사를 해야 했다.
수로의 종착점인 세고비아의 Artilleria 광장이 해발 100M 안 되는 낮은 지대라 수도교는 필수였다.
수도교로부터 16km 떨어진 frio강의 상수원에는 옛 수로 공사의 흔적 그리고 수로의 시작을 의미하는 표지가 이렇게 있다.
세고비아 시내의 수로공사의 흔적은 도시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차도로 때문에 수로의 일부가 이렇게 절단돼 있다. 가운데에 네모단 구멍이 과거 물의 이동 통로였다.
도시로 수로가 들어오면 돌의 집(Casa de piedra)이라 불리는 곳에서 최종적으로 물이 정화된다. 불순물들이 침전되고 정화된 물은 다시 작은 수로를 통해 세고비아의 수도교로 이동이 된다.
모형으로 보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물이 흘러간다. 이곳은 수도교의 종착점이다. 이곳부터 다시 도시로 물이 공급이 된다. 수로는 당시 성주 혹은 왕이 거주하는 세고비아의 Acazar로도 연결이 되어 있었다.
수도교에서 Alcazar로 가는 길에 이런 표시가 보일 것이다. 수도교의 모양인데 이 밑으로 Alcazar로 통하는 수도관이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고비아의 알카사르의 절벽 밑에는 작은 Eresma라고 불리는 강이 세고비아 도시를 감싸고 있다. 수로공사 덕분에 성주 혹은 왕족들은 굳이 노예를 시켜 절벽 밑의 물을 길어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수도교를 가까이서 관찰하면 의문의 구멍 자국이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악마가 수도교를 만들 때 잡았던 손톱자국이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무거운 화강암을 올리기 위한 기계의 집게 자국이었다. 연탄도 집게 구멍 덕분에 쉽게 올릴 수 있듯이 이 많은 돌들도 역시 안정적으로 고정을 시킬 홈 자국이 필요했다.
돌을 집게로 잡았으면 이제 올려야 했다. 그런데 이 무거운 2만 개 이상의 화강암들을 사람이 높은 곳까지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인들은 도르래를 이용한 기계를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쳇바퀴에 사람이 들어가서 도르래를 돌리면 비교적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돌들을 올릴 수 있었다. 돌을 올리는 것은 해결을 했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아슬아슬하게 무너질 것 같으면서 퍼즐의 조각을 끼워 맞춘듯한 아치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먼저 나무로 된 아치형 구조물을 제조한 후 그 틀에 맞춰 돌을 끼워 맞추었다. 이런 아치형 구조물은 로마시대에 개발한 혁명적 건축 양식이다. 아치 덕분에 중력에 의한 강한 하중을 기둥으로 분산시켰다. 이를 응용해서 원형 경기장도 지었던 로마들이다. 아치가 발명되기 전 그리스 시대 건물들은 2층 이상의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시대가 지나면서 아치는 더욱 진화해 높은 첨탑까지 가능케 하는 첨두아치로 발전한다.
마지막으로 수도교의 화강암 돌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또 다른 이상한 점이 있다. 돌과 돌 사이에 어떤 시멘트, 모르타르 혹은 고정을 위한 꺾쇠 자국이 없다. 그대로 돌만 쌓아 중력의 힘으로만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세고비아를 지키고 서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11세기 무어인의 침입 때 파괴가 되어 15세기에 36개의 아치를 복원을 했다. 하지만 일부러 파괴하지 않는 이상 성공적으로 수로의 기능을 충실히 해온 위대한 건축물이다. 로마인의 토목 공사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의 힘으로 만들기 힘들 것 같은 웅장함을 갖춰서인지 흥미로운 전설이 있다.
세고비아에 한 소녀가 살았다. 소녀는 매일 세고비아의 강의 물을 길어 나르는 고된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 일이 너무 고되어 습관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일을 안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진짜 악마가 나타나 소녀에게 제안을 한다. 내일 첫 닭이 울기 전까지 수로를 만들어 주면 자신에게 영혼을 파는 조건이었다. 소녀는 흔쾌히 승낙을 했고 악마는 빠르게 수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소녀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악마와의 거래가 너무나 후회가 된 것이다. 악마는 더욱 속도를 내면서 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두려운 소녀는 성모 마리아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 악마와의 거래가 무효가 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매우 조급한 순간이다. 동이 틀 무렵 이미 악마는 다리의 마지막 돌 한 조각만 밀어 넣으면 됐다. 그런데 기도가 간절했을까? 악마가 돌을 밀어 넣으려는 순간 "꼬끼오!"하는 첫 닭이 우는소리가 났다. 악마는 원통해했고, 이제 소녀는 약속대로 영혼을 바치지 않아도 됐다. 이런 전설 때문일까? 악마가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돌의 위치는 지금 수도교의 성모자 상이 있는 곳이라고 전해진다.
수도교가 끝나는 부분엔 십자가 모양의 돌들이 눈에 띈다. 이곳에 스페인 국기를 두른 하얀 성모자상이 보인다. 그곳이 악마가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퍼즐의 돌이다. 성모 마리아가 수호하는 의미일까? 정통 가톨릭 국가다운 수도교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였다. 정말로 악마가 아니면 사람이 만들기엔 불가능할 것 같은 수도교의 웅장함을 보러 세고비아를 여행을 하면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수많은 세고비아 투어의 경험과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짧게 수도교에 대해 한 이야기를 요약해보았다. 라디오 스케치의 구독자들이 세고비아를 여행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다음 기회엔 백설공주 성으로 불리는 Alcazar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