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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omin Apr 24. 2018

드로잉 에세이 34

마른 꽃




내 친구들은 마른 꽃 같다

럭비를 했던 역도를 했던 축구를 했던 공부를 월등하게 잘 했던

이제는 모두 바스락 대는 마른 꽃 같다

나 역시도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동기모임에서 삼삼오오 오랜만의 만남에 할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느 동년배들의 만남과 다름없이 모두 지난 것들이다

유효기간이 이제 막 사십 년을 지나 색 바래고 바싹 말라버린

답답하고 허황되기 그지없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우리들 누구에게도 오늘 이후의 이야기는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아마도 예측하기도 쉽지 않고 

장담하기는 더더욱 난감한 불확실한 삶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이야기란 것이 듣고 보면 예전에 들었던 것의 반복이다

이들과 공유하는 것은 추억이고 어제이다

내일은 온전한 나의 몫이다

그래서 이들과는 추억만을 공유할 뿐이다


마른 꽃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생명이 있어서가 아니다

추억할 것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른 꽃에게는 저마다 마르기 이전의 발랄했던 추억과 공기의 아련함을

간직하고 있다


남은 인생을 엮어가는 우리들에게 생기의 공급은 아마도 최소의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단지 지켜야 마땅한 약간의 품위와 조금의 여유를 

가족을 비롯한 누군가에게 부여받는다면 고마울 것 같다

이제는 그런 향기 나는 감성은 스스로 생산해 낼 수 있는 형편이 못 되기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제공받을 수밖에 없다

마냥 비관만 할 수도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비록 향기도 생기도 없어 바스러지기 십상인 마른 꽃 같을 지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미미하나마 그림자를 드리우는 행운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다면

내 친구들 모두가 아마도 생긴 것처럼 무뚝뚝하고 멋 대가리 없을지라도

가족에게 동료에게 그리고 지나온 모든 세월에게 고맙고 감사할 것이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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