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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묵자 Aug 29. 2018

Prologue. 또 다시 무작정, 치앙마이

공항에서부터 첫 날 아침까지


인천국제공항1터미널 111번 게이트. 1터미널에서 트레인을 타야 갈 수 있다.

종강하자마자 찾아오는 여행병이 또 도졌다. 계절학기 수업 듣다가 있는돈 없는돈 끌어모아 35만원짜리 치앙마이행 티켓을 샀다. 항공편과 함께 수영장 딸린 끝내주는 에어비앤비 아파트도 예약했었는데, 8월에 돈이 하도 없어 숙소비 환불하고 생활비로 썼다. 호스텔 도미토리룸으로 숙소를 다운그레이드했지만 그래도 당장 결제할 돈이 없어 후지불로 예약했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었다. 작년에 이탈리아 갈 때도 진짜 준비 안했었는데, 그 때는 걱정이라도 많았다. 여행 짬 좀 차간다고 이번에는 걱정이 하나도 안되더라. 비행기 타고, 가서 잘 곳만 있으면 되는거지. 출발하기 직전까지 일하다가 와서 따로 여행 계획 짤 시간이 없기도 했다. 그냥 쉬다오고 싶었기에 별로 욕심 있는 여행도 아니었고. 지하철에서 블로그 리뷰 몇 개 보며 치앙마이에 대한 추상적인 느낌만 좀 익히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공항으로 향했다.


처음 타 본 에어 아시아. 기내는 역시나 불편했지만 피곤한 나머지 금방 잠 들었다.

태국, 그 중에 치앙마이를 선택한 것은 별다른 이유는 없다. 마음 같아서는 이탈리아나 스웨덴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상황상 유럽은 무리였고, 딱 일주일정도 동남아 갈 정도의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 남들 다 가는 싱가포르, 홍콩, 방콕이나 방콕이나 쿠알라룸푸르같은 대도시는 싫었다. 도쿄나 밀라노도 내 최악의 여행지였고. (무엇보다 서울이 최악ㅎ) 도시를 떠나 말레이시아 량카위나 태국 팟타야같은 휴양지에 가려다가, 아무리 혼자 쉬러 가는 여행이라지만 커플들로 가득한 예쁜 섬에 혼자 있기 쓸쓸할 것 같았다. 덜 도시스럽고, 덜 휴양지스러운 곳 중 볼만한 관광지도 조금은 있는, 그런 여행지를 원했다. 사람들이 ‘한 달 살기’로도 많이 찾는 슬로우시티 치앙마이에 가기로 결정했다. 뭐 쓰다보니까 선정 기준이 꽤나 까다롭네. 근데 결정적인 이유는 비행기 티켓이 비싸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5시간의 비행을 거쳐 방콕 돈므앙 공항에서 국내선 환승했다.

비행기 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이륙할 때 몸이 붕 뜨는 느낌, 창 밖으로 멀어지는 복잡한 도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참 좋다. 생각해보면 다른 교통수단도 다 좋아하는 것 같다. 배를 타고 가는 느낌이 너무 좋아 굳이 부산까지 내려가서 열두시간이나 걸리는 배를 타고 후쿠오카에 다녀왔고, 또래 나이대는 잘 안가는 울릉도와 독도도 힘들게 다녀왔다. 기차도 좋아한다. 기차만큼 여행지로 가는 길이 낭만적으로 스치는 수단도 없다. 도착해서도 외각에 있는 공항과 달리 기차역은 거의 중심부에서 있어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하는 생경한 풍경이 주는 설렘도 말이 안된다. 베로나에서 베네치아로 갈 때 떠나는 풍경, 가는 길목, 도착해서 보이는 바다가 정말 끝내줬었는데. 비단 해외만이 아니라 ITX타고 청량리와 춘천을 왔다갔다 할 때도 왠만큼 피곤하지 않으면 창 밖의 풍경에 집중한다. 버스는 모르겠다. 최근에 탄 버스의 도착지가 다 농활이나 학캠 따위라 그런가.


다시 비행기 얘기로 돌아와, 이번에는 그토록 좋아하는 비행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골아 떨어지고, 착륙 다 해서야 잠에서 깼기 때문. 전 날에도 밤새 밀린 일 처리하고, 낮에도 춘천에서 여행 가방 가져오랴 청량리 시장가서 영수증 떼오랴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그런가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기는 했다. 출발 시간이 화요일 새벽 1시라 월요일 저녁에 공항에 가 있어야 했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급하게 이것저것 찾아보느라 지하철에서도 한 숨도 못잤다. 공항 도착도 생각보다 늦어져 스카이허브 라운지에서도 1시간 밖에 쉬지를 못하고,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환승도 해서 도합 4번의 이착륙이 있었는데 모두 다 자느랴 놓치다니 너무 자괴감 들었다. 환승할 때 잠깐 본 방콕의 풍경도 참 별로였고, 치앙마이에 도착해서 보이는 바깥도 날씨가 흐려 그리 기분 좋은 시작은 아니었다. 일단 너무 피곤했다.


1층에서 카페&바를 운영하는 ALEXA HOSTEL

공항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 유심을 갈아끼고,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수차례 여행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것이지만, 아무리 이동성이 좋은 배낭일지라도 무거우면 말짱꽝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숙소에 짐을 맡겨 둘 것.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숙소 내부는 둘러보지 못하고 창고에 배낭만 두고 금방 나왔다. 숙소 1층에서는 Nimman Social이라는 카페겸 바가 운영되고 있어 앉아서 글쓰기 좋겠더라.


님만해민 길거리 풍경 1
님만해민 길거리 풍경 2
님만해민 길거리 풍경 3

체크인을 못 해 쉬지도 못하고 바로 거리로 향했다. 무작정 걸었다. 오는 길에 대강 치앙마이 지도는 눈에 익혀두고, 구글맵스에 맛집 몇개랑 주요 스팟들 표시는 해놨으나 서두르지는 않았다. 일단 현지 분위기를 좀 느껴보고자 무작정 걸어다녔다. 숙소가 위치한 곳은 님만해민이라는 지역이다. 북적북적한 관광지 느낌을 기대한 것과 달리, 여행자는 물론 현지인도 쥐뿔 안보이더라. 검색해보니 님만해민은 예쁜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은, 한국으로 치면 홍대라나. 사람들이 아침 10시부터 홍대거리에 갈 리가 없지, 싶으면서도 조금 심심했다. 큰 도로에 차들은 많이 다니던데 공기가 안좋아 그 쪽으로 가기는 싫었고, 그냥 이리저리 골목길을 산책했다.


작년에 유럽 여행을 갔다오기 전, 유일하게 가봤던 해외 여행지가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중국이랑 일본이라 그런지 아시아 여행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으로 생각했었다. 중국은 베이징만 두 번, 일본은 도쿄랑 시즈오카를 다녀왔었는데 어렸을 때라 많이 기억은 안나지만 큰 감흥이 없었다. 동북아 3국 자체가 공유하는게 많은지라 도시 풍경, 사람들 모습도 별 반 다를 것이 없어보였고 ‘해외’라는 느낌이 별로 안들었었다. 가족들이랑 패키지 여행으로 가서 주요 스팟만 찍고 돌아다닌 것도 실망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된 전환점은 지난 겨울 일본 후쿠오카 여행. 겉으로 보기에는 서울과 다를 것 없는빽빽한 빌딩 숲이었지만, 지난 여행들과 달리 여유롭게골목골목을 걸어다니며 도시를 느끼다보니, 디테일하게 다른 부분들이 보이더라. 마음가짐의 차이인 것 같다. 아시아는 다 똑같겠지라는, 무작정 서양에 가고싶다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안보인다. 여행지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오롯이 그 장소에 몰두해야 색다른 부분이 보이고, 비슷한 부분을 보아도 아름답다.


서쪽으로 큰 산이 있는데 구름에 맞닿아있다. 날이 흐려 그런건지, 원래 그런건지.
해외 오면 현지인 사진 한 장 쯤은.

치앙마이도 비슷했다. 완전 이국적인 느낌을 기대한 것과 다르게 내가 다녔던 아시아 국가들과 별 반 다를게 없어보였다. 올드타운으로 가면 사원도 많고 태국 느낌이 물씬 날테지만, 님만해민은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밤새 비행기타고 멀리까지 와서 이런 거리를 걷는게 서울 변두리 것는 것과 무엇이 다른건가 갑자기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 마음을 놓고 생각을 비우니 도시의 매력적인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무성하게 있는 색다른 나무들. 해발고도 300m가 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 가까이 있는 하늘과 구름. 골목 곳곳에서 보이는 크고 작은 불교 조형물들. 지저분하게 하늘을 가리는 전깃줄과 신호등 하나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도는 정말 마음에 안들었지만, 점차 이 도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먹었던 버거킹이 다 소화됐나보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 산책하던 님만해민 근처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자 근처 음식점에 들어갔다. 닭고기 요리를 하는 KOYI라는 음식점이었는데, 메뉴는 심플했다. 튀긴 닭고기를 먹을지, 백숙을 한 닭고기를 먹을지, 반반을 먹을지였다. 멀리와서 같은 음식점 두 번 오기는 아까우니 내가 시킨 것은 당연히 반반 메뉴. 가격은 40바트로, 30바트가 한화로 1000원정도 하니 1300원 밖에 안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메뉴판을 보고 딱 태국에 온 것을 실감했다. 한 끼를 천 원에 해결할 수 있다니. 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맛은 또 끝내줬다. 식사가 나오기 전 닭백숙 국물을 한 그릇 주셨는데, 우리나라처럼 깊고 진한 맛이 난다기보다 가벼우면서도 풍미가 엄청나더라. 이런 국물에 한 닭고기는 말 할 것도 없고, 밥도 닭 육수에 지은 것이라 진짜 맛있었다. 그 뒤로도 싼 돈, 비싼 돈 주고 여러가지 음식을 먹었지만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 내 태국 최애 음식은 이것이다. 이 집 잘한다.  


싼 가격에 식사를 해결했으니 디저트가 빠질 수 없지. 곧바로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다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바로 앞에 있던 가게에서 키우는 고양이 같던데 정말 이쁘더라. 애교도 많아서 그대로 멈춰 30분은 같이 놀은 것 같다. 우리 키슈도 귀여운 스카프랑 방울 하나 달아줘볼까 잠깐 생각했는데, 일단 목에 두르는 것도 문제고 금방 다 물어 뜯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포기했다. 고양이를 지나 인스타 감성 진하게 느껴지는, 카페거리 다운 아이스크림집에 가서 롤 두개 아이스크림 두 스쿱을 먹었다. 밥은 천 원에 해결하고 디저트에 5배를 투자하는 미련한 소비였지만, 맛있으면 됐지 뭐. 시원한 가게에서 충분히 쉬어가다가, 1시가 다 되어서 치앙마이의 중심부인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아직도 1시 밖에 되지 않은게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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