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묵자 Sep 07. 2018

Episode 3. 자전거, 치앙마이, 그리고 야시장

<치앙마이> 둘째 날 오후부터 밤까지 이야기

오랜만에 푹 잤다. 여유롭게 다녀야겠다 생각한 바로 다음 날 이야기이다.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지난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밤새고, 해 뜨면 자취방 가서 잠깐 자다가, 벌떡 일어나 곧바로 학교로 오는, 그런 생활 패턴에 익숙해졌던지라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1일 트래킹 투어를 갔어야 한다. 혼자서는 가기 힘든 외각 지역은 보통 현지 여행사를 끼고 가고는 한다. 숙소에 돌아오는 그 피곤한 와중에 여행사를 찾아가 무리하게 예약했고, 도착해서 침대에 눕자마자 하루 미뤘다. 차량 픽업 시간인 오전 8시 30분이었는데, 일어날 수는 있어도 상태가 말이 아닐 것 같아서 그냥 푹 잤다. 7시부터 10시 사이에 제공되는 호스텔 조식을 놓칠 생각은 없었지만, 늦잠 잔 게 뭐 그리 기쁘던지.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 배고파서 후딱 씻고 밥 먹으러 갔다.

‘Solao’라는 현지 식당에 가서 해산물 쏨땀, 오리 고기 볶음 요리, 새우볶음밥, 밀크티 총 4개를 주문했다. 한 접시로만 놓고 보면 약 4-50바트로, 한화로 2천원도 안되는 가격이라 굉장히 저렴하다고 볼 수 있다. 싸다는 이유로 이렇게 한 접시, 두 접시, 음료까지 시키다보니 한국에서 한 끼 먹는 값이 훌쩍 넘더라. 가격보고 돈 막 쓰다가 금방 파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여행 4일차에 정말 파산해서 추가 환전 했다고 한다.)


어제 생선 요리와 함께 먹은 쏨땀이 그렇게 입맛에 맛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김치 먹는다는 느낌으로 하나 시켰다. 시원하고 약간 칼칼해서 기름진 음식에 먹기 깔끔하기는 하다. 다음 음식은 오리 볶음 요리. 한국과 중국에서 먹은 그 맛을 떠올리며 ‘Duck’이라 써있는 메뉴 중 아무거나 시켰는데, 최악이었다. 향신료가 너무 강해서 입에 넣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래서 밥이랑 해서 다 먹긴 먹었다. 새우 볶음밥은 최고였다. 평소에도 베트남이나 , 태국, 대만 음식점에 가면 무조건 볶음밥을 시킬 정도로 동남아 쌀 요리를 좋아해서 만족스러웠다. 밀크티는 쫄깃쫄깃한 버블을 먹고 싶어서 시켰는데 위에 너무 달달한 젤리가 있어서 별로였다.


식사를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투어가 예정된 날이었어서 따로 계획을 세우지 않기도 했고, 밀린 글을 쓸 시간도 필요했기 때문. 묵고 있던 호스텔 1층에는 ‘Nimman Social’이라는 카페 겸 식당 겸 펍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낮에는 거의 투숙객들이 코워킹 스페이스처럼 사용되는 곳이었다.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트북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태국은 무슨 커피가 유명한지 몰라서 분위기 내기 좋은 카푸치노 한 잔 시키고, 여행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아마 프롤로그를 이 때 썼을 것이다. 프롤로그는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쓰는 맛이 있는데, 이번 비행에서는 너무 잘 자버려서 그러지는 못했다. 햇빛 잘 드는 오픈형 라운지(이 공간을 라운지라고 지칭한다.)에 앉아 있으니 글도 잘 써지더라. 평소에 학교 다니며 글 안써진다는게 핑계가 아니다. 좋은 글은 좋은 환경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글 쓰는 도중, 틈틈히 뭐할지 찾아보며 정한 여행 컨셉은 자전거 투어. 태국에서는 Mobike라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활성화 되어있었다. 서울의 따릉이와 비슷하게 사용할 시간에 따라 요금을 충전하는 방식이었는데, 따릉이와 달리 아무데나 주차해도 된다. Mobike 어플을 실행하면 지도가 나오면서 근처에 있는 자전거 위치가 나오고, QR코드 찍으면 자전거의 잠금장치가 풀린다. 실컷 탄 다음 정해진 주차 구역이 아니라도 아무데나 잘 잠궈두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마침 숙소 바로 앞에 한 대가 있었다. 90분을 결제하고 QR코드를 찍었는데, ‘잠금장치가 망가졌네요. 무료로 사용하세요!’라는 알림이 떴다. 아싸리 기분좋게 꽁짜 자전거 타고 출발했다. 오후 4시 쯤이었다.

 

노을 명당 찾기와 더불어 여행 올 때마다 항상 하는게 자전거 타기이다. 베네치아 리도섬에 갔을 때 자전거타고 해변을 따라 섬을 돌았던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 그 뒤로 여행지 갈 때마다 자전거 대여소를 꼭 찾는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귓가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제일이고, 걸어다닐 때 보다는 많은 풍경을, 차 타고 다닐 때보다는 디테일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넓은 지역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가성비 있는 수단이랄까. 당장 한강에 가서 자전거를 타도 행복하지 않은가.


겨울에 후쿠오카 갔을 때도 먹는 것 제외 가장 좋았던 것이 자전거 타고 돌아다닌 것이었고, 이번 여름에도 원래 제주도 자전거 트래킹을 가려했다가 무산됐다. 같이 가려던 친구들이 바로 거절했는데, 자전거 타고 다니는게 체력 소모가 심하기는 하다. 리도섬에서는 작은 섬 내부를 한 바퀴 돌아다닌 거라 괜찮았지만, 후쿠오카에서는 대여소로부터 꽤나 멀었던 모모치 해변까지 가서 어떻게 돌아가나 막막했었다. 정해진 시간까지 반납은 해야하니 어찌어찌 돌아가기는 했는데, Mobike를 사용하면 그런 걱정이 없었다. 자전거 타다 힘들면 막말로 길가에 버리고 택시타면 될 노릇이었다.


그래서 정말 길 가다 중간에 버릴 뻔 했다. 몸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차도로 다니니까 매연이 너무 심했다. 빠르게 달리면 시원한 바람이 불다가도 옆에 쌩 하고 바이크나 썽태우가 지나가면 엄청난 매연이 호흡기를 습격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있지. 자전거 감성 재충전하며 목적지까지 꿋꿋하게 갔다. 운좋게 얻은 무료 자전거인데 버리고 아깝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치앙마이를 관통하며 흐르는 핑 강이었다. '노을 명당 가기', '자전거 타기'와 함께 내 여행의 필수3요소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물가에서 산책하기'이다. 숨통이 탁 트이는 맑은 강물을 기대한 것과 달리 핑 강은 그리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다. 여행 기간 내내 간헐적으로 오던 비 때문에 주변 산에서 흙탕물이 떠내려와서 그런지, 원래 그런 것인지 물이 참 탁했다. 건너편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오래 곁에 두고 싶은 풍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 몇 장만 찍고, 다시 출발했다.

치앙마이 여행의 꽃인 야시장을 구경하러!

치앙마이에서는 현지 문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야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된다. 제일 큰 것이 주말에 열리는 일요마켓과 토요마켓이고, 상시적으로 열리는 야시장 중에서는 '와로롯 마켓'과 '나이트 바자'가 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나이트 바자였지만, 가는 길에 있었 던 와로롯 마켓에 먼저 들렸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라서 주차된 바이크들 사이에 잘 숨겨두고, 시장 구경을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목을 축일 음료 한 병을 사서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화려한 롤&스시 가게가 눈에 띄었다. 고급 스시마냥 맛있어 보였는데, 한 피스에 한화로 170원, 330원 정도의 가격이라 사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가가 싼 국가를 여행하면 이게 문제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무조건 싸니까 필요하지 않은 혹은 과한 소비를 무비판적으로 하게 된다. 뷔페에서도 가장 멀리해야 할 것이 탄수화물 덩어리인 스시인데 야시장 투어 시작부터 스시를 먹다니. 좋다고 6피스를 골라 담았는데, 먹자마자 포만감이 밀려와 후회됐다.


와로롯 마켓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일단 이틀 동안 여행하면서 본 각가지 길거리 음식들이 총집합되어 있었고, 이외에도 옷, 신발, 과일, 악세사리, 기념품 등을 파는 상인들로 가득했다. 한국에도 야시장 열풍이 열어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을 가도 야시장이 열리고는 하는데,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한국의 야시장은 말만 '시장'이지 지역 상인의 가게가 아니라 값비싼 푸드트럭들로 가득한, 자본주의적으로 조성된 인위적인 공간이다. 치앙마이의 야시장은 사람들도 많이 찾으면서도 시장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특유의 속성이 잘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관광객들로 가득한 것은 매한가지지만 그 속에서 나는 향이 많이 달랐달까. 말로 형용하기는 어렵지만,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시장 구경을 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구름이 껴서 오늘도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해가 지자마자 구름이 걷혀 푸르른 저녁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명도 한 둘 켜지니 시장의 분위기도 깊어갔고 코끝에 아른거리는 음식 냄새도 더욱 풍성해졌다. 바로 다음 목적지인 나이트 바자로 향하려다가, 무언가 아쉬웠다. 특히 핑 강. 한 껏 기대하고 온 몇 없는 오늘의 행선지였는데 이대로 떠나보내기 아쉬웠다. 구글맵스를 켜서 찾아보니 핑 강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 하나가 금방 나오더라. 자전거를 타고서도 잠깐 고민했지만, 핸들을 돌려 강 건너로 향했다.


강 건너편으로 가는 길. 처음 본 자전거 전용 도로였다.
The Good View

상호부터 노골적인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이라고 하기에 식사도 팔고, 술 종류도 엄청 많이 팔고, 안주 요리도 많고, 라이브 공연도 하고, 일정 시간 이후에는 클럽 음악이 나오는 곳이라 애매하지만 태국 음식점은 다 이런가보다. 분위기는 끝내줬다. 식당 내부의 조명도 괜찮았고, 강 방향으로 반 쯤 오픈이 되어있어 바람도 잘 들어오고 운치도 있었다. 핑 강도 어두워지니 탁한 강물이 보이지 않아서 나름 괜찮았다. 야경이나 제대로 즐길까 하고 패기롭게 야외석에 앉았다가, 벌레에 다리를 10분 정도 뜯기고 시킨 술 나오자마자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드디어 마셨다. 태국의 소주(?)라고 불리는 태국의 술 쌩솜. 그동안 다닌 음식점에는 맥주밖에 팔지 않았어서 약간 아쉬웠는데, 이 곳은 바가 같이 있어서 그런지 술 종류도 다양하게 있었다. 마시고야 싶었지만 지갑 사정상 가장 저렴한, 그리고 태국의 로컬 럼주인 쌩솜을 주문했다. 300ml짜리 작은 병이 280바트로 한화로 1만원도 하지 않는 가격이었다. 와로롯 마켓에서 먹은 음식이 아직 소화가 안돼서 안주는 간단하게 스프링롤을 시켰다. 가장 싼 스프링롤임에도 안에 고기도 들어있어서 생각보다 라이트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별기대 안하고 양이 적당하면서도 싼 음식을 시킨 것인데 끝내줬다. 치앙마이가 점점 사랑스러워졌다.


처음 마셔본 쌩솜도 나쁘지 않았다. 평소에 럼을 즐겨마시지는 않는데 향이랑 첫맛은 괜찮았고, 끝맛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1/3병 쯤 마시다가 콜라를 한 병 시켰다. 칵테일바 알바한 경험으로 아주 맛있는 비율로 희석해 럼콕을 마시다, 원액을 마시다 번갈아 마셨다. 작은 병이라도 도수가 있는 술이라 취기가 금방 올라왔다. 분위기도 전 날의 바와는 달리 왁자지껄한 느낌이라 나도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어졌다.

물론 뜬금없이 옆 테이블에 끼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소리는 아니다. 바에 앉은 것도 아니었고. 고독은 전 날에 충분히 즐겨서 그런가 친구들 몇 명과 영상 통화를 했다. 인스타 라이브를 켜려다 딱히 컨텐츠가 없어 접고, 나처럼 해외에 여행에 가 있는 친구 두 명, 한국에 있는 친구 두 명과 통화했다.


많이 좋더라. 친구들에게 혼자 여행와서 술 마시며 시간보내는게 행복하다고 자랑하면서도, 이를 친구들에게 말해주며 대화하는 과정이 또 행복했다. 혼자 있을 시간도 필요하지만 나는 절대 혼자는 못 사는 놈인 것 같다. 혼자 행복했던 시간이라도, 나눠야 더욱 행복해진달까.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촛대가 반은 줄었더라.
이미 나이트바자를 제대로 구경하기에는 많이 늦은 시간 같았지만,

늦게 시작한 하루 알차게라도 끝내보자는 마음에 다시 길을 나섰다.  
강건너에서 나이트 바자로 가는 길목.

나이트 바자에 도착하자마자 발마사지를 받았다. 술기운에 알딸딸하기도 했고, 반나절 자전거타니 전날만큼은 아니지만 피로가 많이 싸였었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던 발마사지 샵을 지나칠 수 가 없었고, 그대로 30분을 누워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 자체는 그렇게 효과있지는 않았으나 중간에 편히 누워있을 수 있는 휴식이 참 달콤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고, 나이트 바자의 밤은 더욱 깊어갔다.


치앙마이에 와서 처음 먹은 팟타이이다. 이틀 동안 이것 저것 많이 주워먹으면서도 정작 가장 좋아하는 태국 음식인 팟타이를 먹을 기회는 없었다. 점심은 숙소 근처 닭 요리집을 갔고, 낮동안은 미리 찾아둔 음식점과 술집만 가서 팟타이를 파는 곳이 없었다. 드디어 마주한 태국 본토 팟타이. 말그대로 아무데서 사서 한 입 물었는데 순간 말이 안나왔다. 한 평생 먹은 팟타이랑 비교도 안됐다. 진짜 비교도 안된다. 이래서 로컬 푸드, 로컬 푸드 하나보다. 큰 볼에 한 번에 재료를 넣고 조리하는데 3분도 안걸리는 음식인데 어떻게 이렇게 맛이 있을 수 있을까. 반 접시는 그냥 먹고, 반 접시는 매콤한 향신료를 뿌려서 먹으니 꽉 찬 배에도 어찌어찌 다 들어갔다. 첫 날 먹은 닭고기 요리를 먹은 다음으로 가장 감동적인 음식이었다.


야시장 한가운데 앉아 정신없이 팟타이를 먹다보니 시간이 정말 많이 흘러 있었다. 거의 오후 11시가 넘었었나. 이제 시장 구경을 하려고 둘러보기 시작하니 음식점도 다 마감 준비를 하고 상점들도 정리를 하고 있었다. 더 남아 구경을 할까 고민하다가 다음 날로 미뤄둔 투어가 생각났다. 픽업 시간 아침 8시 30분. 알람 맞춰도 일어나기 힘든 시간인데 제 때 일어나 아침까지 먹고 나가려면 금방 숙소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시장 풍경을 뒤로한채, 그랩 하나 호출하여 숙소로 향했다. 전 날보다 물리적으로 돌아다닌 시간은 훨씬 적었지만, 더 알찬 느낌이 들었다. 역시 눈에만 가득히 담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여행보다는, 다양하지 않은 공간이라도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는 여행이 더 좋다.


나 힘들고 넘 지칠때면 가끔 시장을 둘러보죠
많은 사람들과 큰소리들로 사람 사는 냄새 가득한 곳

내 발걸음 좀 느려져도 재촉할 사람 하나없고
잠시 잊었었던 내 지난 추억 마음에 가득 담아 가는 이곳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죠 어디든 웃음이 가득하죠

바쁜 이 세상속에 휴게소처럼 잠시라도 들리고 싶은
작은 희망들이 있는 곳
서로의 정이 묻어나는 곳
너와 내가 닮아가는 곳
사람사는 세상 바로 여기있죠
- 김건모 <시장풍경> -


매거진의 이전글 Episode 2. 여행이 무엇을 위해야 하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