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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투스 Feb 15. 2020

한결같다는 것...

           기생충팀 뒤풀이 장소 <소반>에 대하여

"기억해라, 

  지금 네가 열고 들어온 문이 한때는 벽이었다는 것을..." 


매년 이맘때면 SAG에서 보내오는 후보 작품들의 DVD를 받아보게 되는데 거기에 Parasite가 있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SAG(Screen Actors Guild)에서 26회 Awards 투표를 위해 이메일을 보내왔을 때도 설마 했었다. 

(영화배우만 SAG 회원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저는 회원자격 미달일 테니까요..)

SAG Awards에서 외국 영화로 시상식 최고상격인 Cast In A Motion Picture를 수상한 적은 

이전에 없었기에 이만큼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1월19일 기생충이 새로운 역사를 쓴다.

미국 영화업계에서 이 상이 주는 상징과 의미는 각별하다. 

Entertainment Weekly가 보도한 것처럼 이 상을 수상한다는 건 

미국 영화계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것과 같으니까.

그 엄청난 상을 모국어로 연기한 한국 배우들이 가져간 것이다.

오스카 시상식 전부터 관련 업계 언론들의 분위기는 기생충으로 몰렸고, 

아무리 아카데미라지만 그래도 1-2개는 수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출처 : Variety.com

92년 아카데미 역사까지 새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월드컵에서 역전골이 들어갈 때나 들렸던, 한인타운 주거지에서의 함성이 2월9일 그렇게 울려 퍼졌다.

극성스러운 미국 언론들과 관계자들이 이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을 텐데

그 다음날 기사를 보니 한인타운에서 뒤풀이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더 놀랐다.

이참에 미국영화계의 유력 인사들과 더 친분도 쌓을 겸, 네트워크도 만들 겸, 

당연히 그들 동네에서 어울릴 거라 짐작했는데 

기생충팀이 선택한 장소는 한인타운의 작은 식당이었던 거다.


LA의 얼마나 많은 호텔과 식당들이 그들을 갈망했을까? 

이 엄청난 마케팅 기회를 놓칠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그 모든 제안과 요청을 뒤로하고

기생충팀은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정말 죽을 만큼 피곤했을 시간에 <소반>을 찾는다.


그렇게나 한식이 먹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신들끼리만 기뻐할 공간이 필요해서였을까?

한인타운이 아니었어도 그런 공간을 마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

아마도 봉준호 감독의 배려였을 거라 짐작한다.

그 수많은 언론과 세인들에게 한인타운을 조명시키고 

이왕이면 한인이 운영하는 공간을 알리고 싶었던 마음.

그 정신없는 와중에 이런 섬세한 배려가 가능했다는게 소름이 끼칠 만큼 존경스럽다.


그들이 찾은 <소반>은 어떤 곳일까?

LA Times의 Food Critic 음식 비평가로 Jonathan Gold라는 전설이 있다.

2018년 췌장암으로 57세 나이에 사망하자 LA의 유수 레스토랑들은 그의 이름을 의미하는 Gold Light을 

켜서 추모했고 LA시에서도 시청 건물을 금색 조명으로 바꿀 정도로 신화적인 인물이다

출처 : Google Image

유난히 한식 사랑이 각별한 인물로 한인사회에서도 덕망이 높았기에 그의 사망은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사랑했던 식당이 <소반>이었다.

그가 선정하는 [Jonathan Gold's 101 Best Restaurants]은 LA 레스토랑들의 서열을 재정비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는데 2017년 <소반>은 35위에 이름을 올린다

그가 <소반>에서 특별히 좋아했던 음식이 '간장게장'이라는데, 

아무리 청국장까지 먹을 줄 아는 인물이었다지만 날것의 맛을 과연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을지 신기했다

살면서 아직도 헷갈리는 숙제가 하나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자신의 저서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자리가 낮았을 때 알았던 사람들부터

정리하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그때 알았던 사람들은 성공한 자신에게 부담만 될 뿐이라는 논리다.

(얼핏 보면 천민자본주의 사상에 함몰된 비열한 조언 같지만 토사구팽의 긍정적인 역사적 사례를 기억해보면

 꼭 그렇게 예단할 일도 아니다. 정권을 거머쥔 사람들이 처신을 적절히 하지 못해 보은인사를 하는 폐단도

 엘빈 토플러 눈에는 그런 정리와 관리가 안되는 인물들로 비춰질테니까...)


살면서 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가 어느 상황에 있던,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던

처음 만났던 그 온도와 숨결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소반>의 사장님 내외는 그 드문 사람들이다.


LA Times가 편애에 가까운 찬사를 보내며 주류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때도

미슐랭이 2019 The Michelin Plate에 선정하며 극찬했을 때도

드디어는 기생충팀으로 인해 전국구 레벨로 격상한 지금에도

두분의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은 

처음 소반을 인수해 식당 문을 열었을 때의 그 표정이다.


기생충팀의 뒤풀이 장소였다는 것이

언론에게는 얼마나 각별한 메뉴였을까?

아마도 오스카 이후, 수도 없이 시달리고 있을 소반을 찾았다.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기생충 질문이라면 죄송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분들 성향을 모르는 바도 아니어서

그냥 밥만 먹고 갈거라고 했다.


그 답변이 또 내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LA Times와의 인터뷰조차 거절하셨던 분들이

결국 어렵게 입을 열었다-참 보잘것없는 나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남들은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이 금쪽같은 마케팅 기회를 왜 활용하지 않으시는지 물어봤다.

그분들의 마음을 짧은 글재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아

아래에 링크한 인터뷰 영상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내가 이분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자신...없..다

분명히

엘빈 토플러의 논리를 들먹이며 변화를 정당화했을 것이다.

우리는 배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니

이제 강을 건넜으면 인연도 여기까지라며...


* 봉준호 감독님, 그리고 기생충팀 관계자 여러분

  일부러 수많은 명소 마다하고

  한인타운을, 한인업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마음으로 그리 하셨을지 짐작하기에

  영화를 봤을 때보다, 그 배려가 더 가슴에 남습니다

  덕분에 그날의 기쁨에서 소외되지 않고

  오히려 중심에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을 감히 대신해,  이렇게라도 마음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응원하겠습니다.

  

 https://youtu.be/BV9v4skyc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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