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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트 Feb 11. 2024

눈보라를 뚫고 간 ASI, 따뜻함에 대한 기록. 01

2023년 마지막 여행, 대설주의보에 뜻밖의 부부 팀워크 다지기.

한 해를 마무리하며 차분히 시간을 보내려 간 ASI HOUSE.

차분함을 위한 값인 듯 가는 길은 폭설로 꽤나 험난했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와 바퀴가 헛돌 만큼 미끄러운 바닥, 손가락 세 마디보다 더 수북하게 쌓인 눈. 무서울 만큼 긴장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우리는 꽤나 용기 있고 즐겁게 왔다. (오빠는 다를 수도…)

중간중간 차를 세워 바퀴 위에 쌓인 눈을 우산으로 파내고, 언덕에 눈으로 덮인 길을 직접 파내며 올라갈 때 사실 나는 ‘인생 참 시트콤이다’ 라며 속으로는 웃음이 났다.(실제로는 웃을 겨를 없이 급박했음) 


얼마 전 내가 성은이에게 추천받은 영상에서 머리를 띵 하고 맞은 듯 한 자극을 받았는데, 건강한 그룹을 유지하려면 ‘한 명의 실수에 다 같이 웃어넘겨보는 것’이었다. 아주 같은 포인트는 아니었지만 사실 마음먹고 의도적으로 실수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실수’라는 말 자체가 의도성이 없다. 그리고 조금만 입장을 바꿔보면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찰나에 이루어진다. 


무튼 그 깨달음의 영향이었는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오빠에게 약간은 코믹한 영웅이 되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은 실제도 오르막에서 차를 밀기도 했는데 정말 내가 밀어서 쉽게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 내 정강이만큼 쌓인 눈을 발로 휘휘 저어 걷어내기도 했다. 그것도 웃으면서! 


매서운 눈보라에 덜덜 떨면서도 나는 여기서 썰매 타고싶다는 생각도 했다.

힘겹게 올라간 오르막의 중간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중간 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고, 감사하게도 호스트가 픽업을 와주셨다. 두 분께서 오는 중간중간 걱정과 초조함이 묻은 연락을 해주셨는데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그 배려가 너무 감사했다. 동시에 우리만큼이나 눈과의 싸움을 해오며 발 동동 하셨을 모습이 상상되어 괜히 죄송하기도 했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등장씬
반갑고도 아름다운 아시하우스의 입구

한겨울에 땀이 날 정도로 힘겹게 도착해 보니 이곳이 천국인가? 할 정도로 아름답고 포근한 숙소가 반겼다.

프라이빗 한 듯 따뜻한 리셉션에서 반가운 인사와 함께 따뜻한 티를 마시니 괜히 웃음이 났다. 

그 와중에 반해버린 리셉션 공간... 이 공간에서 오래 숨을 고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정도였다. 

아름다웠던 리셉션의 모습



눈이 온 덕분에 더 아름다운 대비를 자랑했던 붉은 대문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우리의 A룸.

통창으로 시원하게 탁 트인 거실이 창밖에서 보였고, 수북하게 쌓인 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입구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마당에 보이는 썬베드를 보며 '계절마다 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늘 우리가 생일마다, 혹은 계절 휴가마다 정기적으로 오는 스테이나 단골 레스토랑이 있으면 좋겠다 하며 우리만의 장소를 찾아가곤 하는데 그중 우리 마음속 1등으로 자리 잡게 된 순간이었다. 


숙소의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으로 아시하우스에서 올려주시는 피드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예약을 하고 나서는 올려주시는 후기들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공간을 만든 사람들의 감성과 시각으로 포착한 장면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내 소감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좋은 향과 따뜻한 온도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난가을에 다녀온 코펜하겐의 외곽에 있는 한 가정집을 방문한 듯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는데, 창밖의 하얀 눈이 한몫하기도 했다. (절대 못 잊을 등장씬)



ASI 컬렉션 
"Everything has Beauty, but not everyone sees it"

들어서면 있는 복도 한편 선반에는 숙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웨어와 스피커 등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 '컬렉션'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재미, 만져보고 써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행복했다. 

당일 아침에 그라인딩 해두신 원두, 커피와 티를 마실 수 있는 도구들, 투명하거나 하얀 잔들, 어떤 의도로 어디에서 가져오신 책과 소품들 일지 상상하기도 했다. 

그 상상에 부스터를 달아준 건 다름 아닌 아시하우스의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남편은 방문 이후 스포티파이를 구독하고 있고, 우리 집에는 아시하우스 플레이리스트가 무한반복 중이다)

룸 키 하나로 감동을 줄 수 있으려면 이정도는 되어야한다는 것... 내 핸드폰 배경사진이 되었다.

공간 곳곳에 자리 잡은 물건들을 보며 나의 신조인 공자의 말 'Everything has Beauty, but not everyone sees it'이 절로 생각났다. 다시 한번 느끼는 어떤 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의 중요성.

많이 보고 또 많이 걸러봐야 하는 것 같다. 




오후에 체크인을 하면 늘 저녁까지 조바심이 나는 법. 나는 늘 그랬다. 

고립되기 위해 찾아간 곳이니 더욱 그 공간에서 비현실적임을 만끽하고 싶었다. 앞마당에 쌓인 눈에 푹 파묻혀보기도 하고, 넓은 마당을 누비며 눈 녹은 계절에 다시 찾아올 날을 상상하기도 했다. 


차가워진 손발을 녹이는 목욕은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새하얀 눈을 보며 즐기는 고요한 목욕시간은 마음속까지 녹여주는 것 같았다. '이러려고 올 겨울이 혹독했구나!' 하며 긴장이 풀렸다. 

이곳에 와서 끝없이 추가되는 나의 집 로망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욕실.



눈 내린 아시하우스의 밤하늘은 푸른색이었다.

저녁이 되면서 주변은 푸르스름한 하늘에서 점점 까만 완전한 밤하늘이 되었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에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쉬웠다. 

저녁을 먹고 한 해 동안 수고한 우리를 회고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책을 읽었다가 일기를 썼다가, 멍하니 밖을 보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골의 밤은 유독 빨리 찾아왔고, 그래서인지 와인을 오래도록 마셨다. 

눈이 정말 많이 내린 덕분에 얼음 대신 마당에 쌓인 눈으로 와인을 칠링 할 수 있었고, 살짝 내리는 비에 눈 녹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다시 봐도 북유럽 같은 사진이다.
룸타입을 고를 때 큰 작용을 했던 침대공간. 정말 아늑했다.

우리가 머문 A룸의 침대는 마치 방 같았다. 사진에서 보면 정말 하나의 방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납장과 옷장, 키친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체 공간을 사각형 하나를 네 등분 해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4방을 만든 구성이었는데 처음 경험하는 구조라 신기하고 경험해 보니 너무 좋았다. 가장 신기한 건 정말 공간 분리가 잘 된다는 것. 그리고 내가 머물던 대부분의 시간에 함께한 저 뢰로스 담요는 나름 양모 마니아인 나의 '인생담요'였다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사소함에 감탄하며, 아침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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