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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트 Feb 13. 2024

지나가는 밤은 아쉽고, 아침은 기다려지던 ASI. 02

구름 걷힌 아시 하우스, 우리는 이곳의 모든 계절을 보러 오기로 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가장 부지런해진다. 아침 조깅과 조식, 일출을 보며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실감하는데, 짧은 여행일수록 내가 보지 못하는 여행지의 모습을 최대한 많이 보고 싶어 더 부지런히 아침을 즐긴다.

다행히 남편도 여행지에서 아침을 즐기는 편이고,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는 시간을 좋아했다.


밤새 눈이 잦아들어 구름이 걷힌 날씨를 기대하면서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아직은 일출 전이라 푸른 어둠이 깔려있었고, 나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가벼운 반신욕으로 몸을 깨웠다. 머리를 비우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말 올해가 마무리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쨍하고 뜨지는 않았지만 하늘은 서서히 밝아졌고, 거실 창을 열고 상쾌한 공기와 아침의 고요함을 만끽하니 몸속까지 개운 해졌다.

아시 하우스에서는 조식을 기본제공 해주셨는데, 우리는 8시 30분으로 예약했다. 그 시간 전까지 티타임을 가지기로 하고, 나는 부지런히 사진도 찍었다.


나는 사진을 카메라, 핸드폰으로 찍는데 도구에 따라 촬영하는 태도도, 결과물도 확연히 다르다.
사진이 업은 아니지만 내가 진심을 다하는 것 중 하나. 그래서 여행지에서 사진 찍을 여유와 관점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일상에서도 마찬가지)


조식 시간에 맞춰 리셉션 공간으로 갔다.

올리브그린 섞인 연두색 프레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장작 타는 소리와 은은한 향,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자연광이 공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시 하우스 인스타그램에서 리셉션 공간에 명패 대신 유리에 직접 ASI를 쓰시는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직접 보니 괜히 아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조식은 계절에 맞게 제철 재료로 직접 요리한 메뉴로 구성해 주시는데, 우리가 갔던 12월의 메뉴는 샤인머스캣 샐러드와 단호박 수프, 프렌치토스트와 커피였다.

결혼 후 테이블웨어에 관심이 많아진 남편은 하나하나 만져보고 뒤집어보며 '예쁘다..'를 연발했고,

그 모습을 흐뭇해하며 '내가 공간을 운영하며 조식을 만든다면...' 하며 언젠간 현실로 만들고픈 장면을 상상했다.


내가 여행지에서 조식을 가능한 꼭 먹는 이유가 있다. 공간 경험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고, 하루의 시작을 제대로 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 외국에서는 그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고, 현지 식사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래서 아시 하우스에서 조식이 기본 제공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공간 경험의 하나로 구성하는 호스트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담백한 맛, 알맞은 양의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조식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서빙을 해주시며 아침인사를 건네시던 호스트께서 감사하게도 B룸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마당 산책하며 엿보기만 했던 공간이라 너무 기뻤다. 역시 카메라는 어디든 챙겨가야 하는 것..!


B룸으로 들어가는 길

A룸과 B룸은 각각 바라보는 정면 방향이 달랐다. 야외에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계절이 오면 더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단 공간 구조.


B룸의 색은 따뜻한 아이보리

B룸은 입구에서 바로 탁 트인 구조라서 A룸과 또 다른 느낌, 감동이 있었다.

A룸이 차분하고 밝은 느낌이었다면, B룸은 조금 더 아기자기한 밝음이었는데, 아마 복도가 없고 침실과 부엌이 거실 창을 향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서 이지 않을까 싶었다.

B룸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정면에 세면대가 보인다. 이국적이면서도 유용한 배치.
욕실의 한 장면들. (르메르 포스터는 너무 탁월한 선택이셨습니다..!)
창을 바라보고 있는 침실, 풍경을 보며 잠들고 깰 수 있을 것 같다.


입구 정면과 우측은 침실, 욕실, 좌측은 부엌과 거실로 구성되어 있다.

환한 자연광에 따뜻한 우드톤이 빛을 발하는 인테리어가 너무 아름다웠다. 사진에서도 보이는 테이블의 나뭇결은 다시 봐도 좋다.

밖에서 보면 부엌이 바로 보이는데, 저녁이 되면 어둠 속 밝게 빛나는 실내가 더 돋보일 것 같다.


거실 공간에는 부클체어 하나가 있는데, 그 뒤로 커피, 차 등을 마실 수 있는 도구와 아름다운 오브제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밝은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유리 선반이 탐나는 포인트. 남편은 부클 체어가 탐난다고 했다. 그래서 남겨준 사진 한 장.


약 20시간 정도 우리의 공간이었던 아시 하우스 A룸, 그리고 잠시 머물렀던 B룸까지.

해가 지고 뜨는 명암에 따라 하루를 보내면서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도시에 살며 도심으로 출퇴근하고, 그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과 부딪히며 크고 작은 경쟁을 해 온 일상. 그 맷집은 이상하게 잘 늘지 않았다.

내가 지친 줄도 모를 만큼 특히나 바쁘고 스트레스 가득한 연말에 다녀온 이 공간은 퇴사를 결정한 내 마음에 용기를 주었고, 우리의 삶의 형태를 더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요즘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오래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 말에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일이 늘 즐겁고 순탄할 수는 없으니 그 일을 하는 내가, 그 일로 인해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오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일지는 하나로 단정할 수 없다. 딱 하나로 떨어지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재미를 찾는 것이 인생 아닐까.


알을 깨는 데에는 시간이 든다.

요즘은 누구나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물론 그런 방법이 어떤 관점에서는 현명하게 보일 수 있다.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언젠가부터 하나씩 이루고 노력하는 현실이 보잘것없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심적 변화와 스트레스가 눈덩이처럼 커질 때 즈음 뭐가 잘못된 걸까 뒤늦게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얻고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든다는 것을 망각한 것.


'시간의 미학'을 그 맥락에 빗대여 보니 찾은 실마리였다. 시간이 드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데미안의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는 말처럼 나에게는 아무도 그 한계를 모르는 알이 겹겹이 있고, 그 알을 하나씩 깨며 내 세계를 넓혀나가는 중이다.

알을 깨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들고, 한 겹 깨고 나온 새로운 세계는 새롭고, 또 다른 나의 일부로 흡수된다. 그게 내가 성장하는 방식일 거라 생각한다.


치유의 시간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짧지만 진한 경험이 지칠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면역이 되고, 새로운 영감을 주어 눈이 트이기도 한다.


하루의 경험으로 모든 계절이 궁금해진 이곳을 다시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에 충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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