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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규 Feb 07. 2023

이야기 요괴와 나

<4>

 다음 날 설은 고모와 함께 인근 중학교를 찾았다. 한 참 수업 중인 학교 운동장은 마치 썰물 후의 텅 빈 바닷가처럼 고요했다. 그 고요함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고모가 입을 열었다.

 “공부는 좀 하니?”

 “보통이요.”

하루 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고모의 한 첫 질문은 매우 앙상했다. 그리고 설의 대답도 매우 짧고 야위었다. 두 사람은 그 이후 학교 현관에 다다를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 전학 온 학교는 예전 시골 학교보다 더 컸다. 학교 현관에 진열된 화려한 상장과 트로피들은 윤설에게 소리를 치는 것 같았다. 

 ‘수다쟁이들….’

설은 트로피와 상장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 붙이기’는 설의 학교생활 중 유일한 취미였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그 취미를 자랑하거나 뭔가 큰소리로 외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름 붙이기’는 그냥 지나가던 길고양이나 거리에 멍하니 서 있는 전봇대에게 자신만의 이름을 붙여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설에게 이름을 받은 녀석들은 항상 설에게 항상 감사해했다. 그래서 설이 녀석들을 다시 만날 때면, 녀석들은 모두 미소를 지으며 윤설에게 인사를 건넸다. 길고양이 ‘순둥이 씨’도 읍내 마을의 전봇대 ‘쓸쓸해 씨’도 “설아, 학교 가니?”라고 말이다.

 “이름은 윤설이고…. 어머님…?”

 새로 온 학교의 담임은 살집이 좀 있는 몸매에 기분 좋아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은 선생님에겐 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것은 고모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에게 이름 붙이기를 해 본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 설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겉모습만으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설이 간신히 사람들의 겉모습 뒤에 감춰진 본래의 색깔이 번져 나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 때는 설이 그들에게 상처받았을 때뿐이었다. 

 “아니요 고모입니다.”

 담임의 질문에 고모가 가정환경 조사서에 시선을 보내며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고모님…. 특별히 제가 설이 관련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나요?”

 고모가 이번엔 설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좀 있으면 2교시 쉬는 시간이니…. 3교시부터 교실에 들어가자.”

 담임의 말에 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색한 인사를 한 뒤 고모는 담임에게 설은 맡기고 학교를 떠났다. 

 “윤설이라…. 이름 예쁘네! 누가 지어준 거야? 고모가 잘 대해 주시니?”

 담임의 질문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설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담임이 고모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설도 고모가 낯설기 때문이었다. 고모는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그저 그런 사람일까? 어쩌면 고모는 뭔가 음모를 꾸미며 추하고 더러운 일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고모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담임은 질문을 한 뒤 설의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무언가 답변을 해야 한다. 설은 한숨을 쉰 뒤 천천히 말했다.

 “모르겠어요….”

 설의 답변이 매우 바보같이 보인다는 것은 설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새삼 설은 고모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사람에게 맡겨져 버린 자신의 처지를 피부 깊숙이 느꼈다. 

 “전에 학교에서는 공부 꽤 했네. 장래 희망은 뭐야?”

설은 담임의 질문이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집요하게 느껴졌다. 설은 마른침을 삼키며 가방을 여전히 잡고 있던 가방끈을 더욱 힘을 주어 잡았다. 그리고….

“모르겠어요….”

 갑자기 설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얘 왜? 진짜 무슨 일 있는 거니? 응?”

 담임이 당황해서 설을 바라보았다. 설도 눈물을 그치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마치 잔에 가득 차서 흘러내리는 물처럼 설의 슬픔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수요일에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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