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망각충과 만나다. (4)
“나……. 벼, 병원에 가봐야겠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현우는 정신없이 수학책을 가방에 주워 담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윤석과 유빈이가 “어? 어!”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서 도착한 곳이 병원이냐고? 당연히 아니었다.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벌레에게 물린 뒤 오늘 머릿속에 있던 수학 공식들을 깡그리 다 까먹었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삼촌 기일을 지내려 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현우가 갈 수 있는 것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신 방이었다.
“멍멍!”
오늘따라 집에 일찍 온 현우를 로미가 반갑게 맞이했다 평상시 같으면 로미에게 간식도 주고 산책도 시키겠지만 정신없이 뛰어온 현우는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후우! 후우!”
현우는 일단 방에 들어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진정해……. 너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미 현우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귀에 쾅쾅 울렸다. 현우는 스러지듯 방바닥에 주저앉아 내려놓은 책가방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수학책을 다시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때였다. 오늘 외운 수학 공식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배운 모든 수학 공식이 생각이 나지 않으면 어쩌지? 그때였다. 귓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보 녀석! 겁나냐?”
맙소사 벌레 녀석…. 그 녀석이 따라온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디 있는 거지?
“너, 넌 뭐야 뭐 하는 녀석이야?”
현우는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오는지도 모른 채 소리를 질렀다.
“난 벌레야. 그러니까 누굴 무는 건 음…. 벌레로서 당연한 일을 나 한 것뿐이라고.”
현우는 벌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이 어디인지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너처럼 말하는 벌레가 어디 있어? 넌 무, 무슨 벌레야?”
“몰라? 아직 사람들이 이름을 정해주지 않았거든.”
벌레가 대답했다. 자기 이름도 모르는 벌레가 사람 말을 하다니…. 현우는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었다. 분명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수학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런 꿈을 꾸는 거야. 현우야 이제 꿈에서 깨나 제발!
하지만 현우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일은 결코 꿈이 아녔다. 현우의 책가방에 지퍼가 천천히 열리고 커다란 눈과 털투성이 몸을 한 벌레가 꾸물꾸물 기어나 오고 있는 것은 눈앞의 생생한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으아아!”
현우가 비명을 지르며 자기 방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방문을 쾅 닫았다. 혹시 벌레가 몸에 붙어 있지 않을까? 현우는 입고 있던 옷도 모두 벌어 탈탈 털었다. 그리고도 안심되지 않는 듯 욕실로 가서 샤워를 마치고 나서야 현우의 마음은 조금 진정되었다.
“어떡하지?”
방 안에 있는 벌레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벌레를 잡으려 했다가 다시 몸 어딘가를 물리고 말지도 모른다. 정말 저 녀석을 내쫓을 방법이 없는 걸까?
“그래! 모기약!”
현우가 고함을 지르며 집 안 구석구석에서 모기약을 찾았다. 하지만 없다. 생각해보니 지난여름 엄마에게 자기는 모기가 싫어하는 피라고 모기 걸릴 걱정은 없다고 너스레를 떨던 자신이 떠올랐다. 멍청한 놈! 이상한 놈! 허세 그만 떨고 모기약을 사달라고 할걸….
별수 없이 현우는 급하게 슬리퍼를 신고 근처 약국으로 내달렸다.
“모기약 하나 주세요. 아주 센 놈으로다가….”
(계속.... 수요일 업데이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