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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색한사람 Nov 28. 2019

사라지기 전에

짧았지만 아쉬워 남기는 코스모스의 기록


지난 글에 이어 써보자면(7월 이후)

손씨가 합류했다. 손씨는 1월에 무중력상영장에 놀러왔다가 알게 됐는데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코스모스에서 단편영화도 촬영하고 드로잉모임으로 많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강씨는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코스모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8월 말 백수가 되면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11월말 코스모스를 접기로 했다.


철거 이틀 전 상권씨가 와서 '왜 없어지는지' 를 시작으로 나에게 이것저것 인터뷰를 해갔다. 운영하면서 여기저기서 받았던 질문들의 총집합이었고 대답을 종종 하다보니 대답이 술술 나왔다. 

(내가 생각만 있으면 말이 많다는 걸 느꼈다.)

가장 재밌는 게 무엇이었는지, 언제 즐거웠는지 등 물어보면 어떤 컨텐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와있을 때면 즐거웠다고 대답했다. 2시간의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사람들 만나는 게 재밌었어요." 라고 같은 대답만 하고 있어 민망할 정도였다. 그리고 남겨놓은 기록을 보면 운영진들에 대해집착같은 게 느껴질 정도다.

코스모스는 성씨, 윤씨, 권씨, 김씨, 고씨, 박씨, 강씨, 손씨, 장씨 이렇게 9명이 스쳐가며 운영을 했었다. 

다른 분께 공간을 넘기는 계약서를 쓰고 코스모스로 걸어오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들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었다. 왜 모두에게 미안한 공간이 되었을까?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모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헤어졌을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운영진들의 얘기를 쓰는 나를 보며 이들에게 바라는 게 굉장히 많았구나. 욕심쟁이)


접기까지 함께했던 손씨, 강씨 얘기로 마무리를 하자면, 6월에 코스모스 운영에 힘이 빠져서 고민 중일 때 손씨가 합류하게 됐는데 사실 손씨의 합류가 없었으면 그 때 코스모스를 접었을 듯 싶다. 강씨 왈 "너희 그만둬도 내 사무실로 쓸거야" 라고 하긴 했지만 내 생각은 그랬다. 영화, 그림, 글 많은 부분에 관심이 많고 취미로 해오던 손씨가 드로잉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시켰다. 강씨는 토요일 오전마다 데이터 사이언스(?) 스터디 모임으로 공간을 잘 이용하다가 하반기에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매일 야근하는 생활으로 이용은 커녕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종종 혼자 나가 놀곤 했는데 9월에 백수가 되면서 '완전한' 집돌이가 되어 머릿속에서 코스모스를 피하고 있었다.

뭔가 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신경쓰이는 코스모스를 차라리 빨리 없애버리고 다른 재밌는 걸 찾아서 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고 있을 때, 우리 셋은 헤어지게 되었다.

사실 식물들이 인간을 조종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공간이 사라지는 아쉬움에 다음엔 10명 정도 모아서 공간을 운영하면 잘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여기저기 얘기해보고 있다. 그래도 한 번 해봤으니까 조금 낫지 않을까? 하지만 주도적으로 하고 싶진 않다. 그냥 발만 걸치는 정도로.(10명.. 불가능한 숫자 같기도 하다.)

공간을 양도하기로 결정된 뒤 주변 2~3명이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코스모스를 양도받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모아보고 있었다." "친구들과 작업실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코스모스도 고민 중이었다." 등

그러게 양도되기 전에 연락이 왔더라면 코스모스는 사라지지 않고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끝나면 뭐든 안 아쉽겠냐만은 많이 아쉬웠다. 


독립영화상영회 하던 '무중력상영장' 은 계속 할 생각이고 12월에도 계획 중인데 그래서 그런지 바로 공간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더 빨리 느껴지는 것 같다. 일단은 내던 월세 정도를 한달에 대관비로 쓰면서 뭔가 계속 해보면 오히려 공간에 메이지 않아 자유롭겠지 싶다. 그래도 공간 알아보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긴 하다.

근데 코스모스고, 연애고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전에는 "잘못하는데 꾸준히 한다."가 긍정에서 부정의 느낌으로 바뀌는 듯) 당분간 일하고 게임이나 하고 그러고 살까 싶다. 휴 생각만 해도 재미없다. 

코스모스

코스모스를 접는 동안 많은 생각들과 큰 허전함을 느끼고 기록을 길~게 남겨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하반기 동안 딱히 한 게 없으니 머리에도 남은 게 없다. 이게 사실인거지. 코스모스에 대한 나의 마음? 무언가?

그래도 상권씨가 인터뷰를 길~게 코스모스에 대한 많은 걸 물어봐주셔서 위안이 된다. 그걸로 영상 하나 남기면 충분하겠지. 

운영진들은 오다가다 볼 것이고 새로운 만남을 가질 자리를 또 찾아다녀봐야겠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의 이유 중 50%는 연애를 하기 위함이니까.(워낙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어디가서 할 얘기가 없을 때 공간 운영하고 있어요. 하면서 말트는 게 꽤 쏠쏠했는데 아쉬워졌다.) 


다음주부터는 육아휴직 땜빵 계약직으로 이화여대에서 1년간 조경관리를 시작하고(힘들 것 같아서 좀 무섭다.) 12월 14일에 작은물에서 무중력상영장(instagram.com/0g.cinema/) 상영회가 열릴 예정이고, 집에서 게임이나 할 예정이다. 보증금 400 나온 걸로 비싼 뭔가를 또 사볼까?(역시 소비는 재밌다.)

곧 코스모스에 대한 인터뷰 영상을 올릴 '어색한 사람 장조옿'(shorturl.at/jsCIK)을 많이 봐주고 이것저것 하자고 많이 제안도 해주면 좋겠다.(배그할 사람 카카오배그 handkerchief_ 친추)


코스모스를 떠올려주었던 친구들, 와주었던 친구들, 도와주었던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인터뷰 일부분 인스타용

짧았지만 아쉬워 남기는 코스모스의 기록

instagram.com/cosmos14195/


을지로 14길 19-5, 402호(남원추어탕 건물)

보증금 400, 월세 40, 관리비 3, 부가세 4


2018. 1.xx 성씨,윤씨,권씨,김씨,장씨 모임

2018. 8.31 을지로3가 어딘가 공간 계약

2018. 9.xx 계약 파기(윤씨/권씨 나감)

2018.10.30 을지로 14길 19-5, 402호 공간 계약

2018.11.23 가오픈

2019.1.1 정식오픈(성씨/김씨 나감, 고씨 영입)

2019.5.xx 박씨/강씨 영입

2019.6.xx 박씨 나감

2019.7.1 고씨 나감, 손씨 영입

2019.11.25 공간 인계

2019.11.28 철거

2019.12.2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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