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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Jun 27. 2024

여름꽃, 도라지

일생을 품은 파노라마

아침 공기가 서늘하다.

하지가 지난 지 며칠이고, 다음주면 소서지만

해뜨기 전 바람은 나몰라라 능청을 떤다.


밤새 뜨겁게 불태웠던 청춘들의 술골목은

새벽녘에나 한풀 꺾였나 보다.

주점 앞 가로수 메타세콰이어 둥치엔

아직도 아사히캔이 은빛으로 반짝이기에

눈길 하나 힐끗 던져본다.  


지구가 자석이란다.

맨발로 걸으면 자석 표면과 직접 닿아

몸속 피흐름을 재촉한단다.

물기가 있을 때 걸으면

서로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하여

시작한 지 이틀째. 겨우 이틀이지만

첫걸음은 언제나 위대하다.

지구를 들어올릴 기운으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여름꽃, 도라지.

개미 한 마리 잡아넣고

발갛게 각시방 불을 키곤 하던 별꽃이다.

다섯 송이 시선이 제각각으로 끌린다.

다시 보니

피고 지는 시기도

저마다 다 따로따로.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우윳빛 젖먹이,

연보라를 희미하게 머금은 꼬맹이,

세상을 향해 꽃잎을 서서히 열고 있는 청춘,

온몸으로 활짝 펼치고 뽐내는 장년,

뜨겁고 화려했던 순간들을 알알이 씨앗으로

단단하게 익어가는 노년.


도라지꽃대에 일생이 송이송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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