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자 창작자로 살아간다는 것③] 서지형*맹현 작가의 한판 수다
엄마이자 창작자로서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임신 6개월 차, 1인 출판사 대표인 나는 매일 뭔가를 하나씩 포기하고 있다. 임신 초기 극심한 입덧으로, 올해는 책 출간을 접었다. 외주 작업도 거의 받지 않는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육아 경험자들은 말한다. 뱃속에 있을 때가 그나마 편할 때라고.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는 더 큰 관문이 차례로 기다리고 있다고. 앞으로 나는 잠을, 이동의 자유를,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점차 잃어갈 것이다. 과연 나는 작가로서, 출판사대표로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까.
그때 작업실의 옆자리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아이 둘의 엄마이자 여성 작가 두 분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서지형 작가, 맹현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두 분은 아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첫 책으로 내놓았다. 서지형 작가의 첫 책 <의자와 낙서>는 육아하는 7년간 아이들의 그림을 아카이빙 한 것을 토대로 내놓은 예술 교육 안내서다. 맹현 작가가 운영하는 출판사 핌의 첫 책 <어쩌면 너의 이야기>은 공동육아를 해온 여성작가 6인의 동화 에세이다. 두 작가는 어떻게 아이를 돌보는 동시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엄마 창작자들의 수다 속에 그 실마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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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형 작가 인터뷰] 큐레이터의 정점에서 작가로 돌아오기까지
https://brunch.co.kr/@orogio/41
[맹현 작가 인터뷰] 타고난 이야기꾼, 작가이자 출판사대표가 되기까지
https://brunch.co.kr/@orogio/42
아이를 낳고 달라진 세계에 대하여
김은화: 맹현 작가님과 서지형 작가님의 공통점은 수용하는 자세인 것 같아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능력이요.
서지형: 저는 경험으로 알게 됐어요.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잖아요. 하루는 열심히 살되, 물이 쓱 들어올 때를 기다려야 해요. 제가 아는 교수님이 카약 동호회를 하면서 해준 말씀이 있어요. 서해에서 카약을 타다 보면 썰물 때 물이 쫙 빠지잖아요. 카약이 멈출 거 아니에요. 그때 봉지를 꺼낸대요. 갯벌에서 낙지를 실컷 잡다보면 다시 물이 들어오잖아요? 그럼 카약 타고 돌아와서 낙지 넣고 라면 끓여 먹는다는 거예요.
애를 키우면서 느낀 게,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예를 들면, 애랑 밖에 나가려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어요. 근데 나가기 직전에 애가 딱 설사를 해. 장염이네? 그럼 못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내려놔야 해요. 땡볕에 노 저어봐야 나만 힘드니까, 물때에 맞춰서 환경에 맞춰서 움직이는 거죠.
맹현: 상황에 맞춰 즐기는 힘은 저도 애 낳고 생긴 것 같아요. 애기가 없을 때는 작업할 때 워밍업 시간이 굉장히 길었어요. 낮에는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집에서 워밍업 한답시고 전전긍긍하다가, 어두워져야 비로소 책상 앞에 앉아서 좀 쓰고 그랬거든요. 시간이 널널했던 거죠, 인생에서.
애 낳고 나니까 시간을 통제할 수 없잖아요. 첫째 때는 애기를 밤 9시에 재우고 새벽 3시까지 작업을 했어요. 애가 크니까 그것도 안 되더라고요. 그 후로는 워밍업 시간을 줄이는 훈련이 자동으로 되더라고요. 애가 어린이집 가면, 불안증과 강박증이 겹친 환자처럼 집 안 여기저기를 종종종종 걸어 다녀요. 그렇게 시동을 걸려고 애쓰다가 책상에 앉으면 바로 쓰는 거예요. 정말 빨리 써야 하니까. 이제 애가 둘이잖아요. 글 써야 된다 그러면 책상에 앉자마자 작업해요.
서지형: 저도 부팅 시간이 없어요. 음악 켜고 차 놔두고 이런 거 없어요. 그쵸? 작업실에 앉으면 우리는 앉자마자 다다다다다 타자 소리만 나잖아요.(웃음)
맹현: 좋은 게 뭔지 알아요? 시간이 없으니까 집중력이 엄청 좋아져요. 역설적으로 삶이 더 윤택해진다? 짧은 시간에 일도 다 해치우지, 옆에서 애는 잘 크지, (서지형: 잘 크고 있나? 하하.) 시간은 부족한데 해내는 일이 더 많아져요.
김은화: 애를 낳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작품을 둘러싼 세계관이 바뀌는지 궁금해요.
맹현: 새로운 우주가 생기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요.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힘드네요.
김은화: 이번에 맹현 작가님이 쓴 책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詩>(출간 예정)에서 그런 얘기를 하셨잖아요. 김용택 시인이 시골 살면서 주워들은 말을 담아 시를 썼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나는 왜 서울에서 태어났나 한탄하셨다면서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하는 말이 예뻐서 매일 밤 그 말들을 주워 담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됐다고요. 아름다운 시절을 기억하려고 글을 쓰셨다는 말이 참 좋더라고요. 새로운 세계가 이런 걸까, 살짝 엿본 느낌이었어요.
책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詩>는 아이들의 말을 ‘줍줍’ 해서 만든 대화 에세이로, 붙잡고 싶은 순간에 대한 글과 그림으로 가득하다.
서지형: 그것도 애가 세 살 넘어가야 보이지, 육아도 경력직 같아요. 돌쟁이 엄마는 애가 잠들면 그 행복이 다인 것 같거든요. 마음의 여유를 갖기까지 최소 6년은 걸린다고 봐요.
김은화: 6년이요! 너무 긴데요!
서지형: 그럼요. 저는 희망 고문하지 않아요.(웃음) 일도 그렇잖아요. 3년차, 5년차에 다르고. 매해 달라요. 육아도 그렇고.
김은화: 혹시 육아하는 동안 창작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해요.
서지형: 있었죠. 일이 바쁠 때 집안의 모든 행사가 있더라고요. 애가 아플 때도 있고. 한편으로는 내 일을 내세울 수 없는 가족 분위기도 있어요. 남자를 넘어서는 걸 좋아하는 집안이 아니라, 내가 치고 나가는 걸 원치 않아요. 한번은 달려든 적도 있어요. 내가 글을 자꾸 읽다 보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됐더라고요. 예전에는 마음만 있지, 논리 정연하게 설명을 못 했거든요. 옛날에 왜 여자한테 글을 못 읽게 했는지 알겠어요.
가끔 ‘현타’ 오는 순간도 있어요. 남의 작업에는 관대해도 제 작업에는 꼬장꼬장하게 굴 때가 있거든요.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때는 그냥 놀아요. 가족 행사가 많은 달에는 미리 일을 줄여놓기도 하고요. 스케줄이 겹칠 때 일 욕심을 내면 꼭 어디 한 군데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좌절감이 오면 놀든가, 편한 사람을 만난다든가, 일을 하나 접든가 그러면서 극복해나가고 있어요.
김은화: 나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까 일정을 짤 때 노련해지나 봐요.
서지형: 왜 전성기를 ‘리즈 시절’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정신적으로 지금이 리즈 같아요. 물론 좌절할 때도 있지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됐거든요.
맹현: 저는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어요. 계획된 일은 그 시간에 꼭 해야 하는데, 그때 안 하면 기분이 안 좋아져요. 전반적으로 내려놓고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작년에 플랫폼 P에서 꼭 듣고 싶은 교육이 있어서 신청을 했어요. 코로나로 등하교가 불규칙하고 갑자기 학교랑 어린이집에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아이를 데려가라는 문자를 수시로 받던 시절이죠. 한 번은 작업실에 출근하려고 한강대교 건너다가 문자 받고 유턴해서 집에 온 적도 있다니까요, 교육이 있던 날은 작업실에 미리 나와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거예요. 부랴부랴 달려가다가 빨간불에 차를 세웠는데 ‘아! 교육이 있었지!’ 생각이 난 거예요.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도대체 누구에게 화를 내는 거지? 나한테 내는 건가? 방금 전까지 나는 열심히 작업했잖아. 어린이집에 코로나 환자 있다고 해서 애를 빨리 하원시켜야 하는 상황인데, 그럼 내가 애한테 화를 내는 건가, 아님 코로나한테 화를 내는 건가. 아니다. 이게 화를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지금 애도 키워야 돼, 내 일도 해야 돼, 다 해야 되는 상황이니 ‘행복한 조율을 훈련하자’고 생각했어요. 애를 사랑하니까 애를 원망하지 말고, 일을 벌려놓긴 했지만 일에 너무 치이지도 말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조금 내려놓으면 행복한 조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훈련하고 있어요. 그게 뭔지는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지만요.
예비 엄마의 고민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김은화: 두 분 다 수용하는 에너지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항상 거스르려고 하거든요. 주어진 상황에서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으면, 내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불도저처럼 끝까지 밀어 붙이는 스타일이었어요. 근데 임신하고 나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입덧이 심해서 올해 출간 계획도 포기하고, 지금도 뭔가를 계속 포기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너무 불안해요.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게 될까 봐.
맹현: 그렇죠. 그런 시기가 있지. 못 달릴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어요.
서지형: 저도 그 시기에 일 그만뒀잖아요. 그때 제가 청주 공예비엔날레 전시 팀장이 돼서 전 세계에 리서치를 다닐 수 있게 되었거든요. 수 개월간 해외 다니면서 사전 조사할 기회를 주는데, 그때 임신이 떡하니 된 거예요. 둘째도 계획에 없었는데, 남편이 미국 발령 받았을 때 생겼어요. 계산해보니 만삭에 공항에 떨어지는 거예요. 결국 미국 도착해서 아기를 혼자 낳았어요. 항상 내가 최고로 뭔가를 거머쥘 수 있는 순간에 되는 게 임신이더라고요, 저는. 그리고 입덧 지옥까지…. 임신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불안함, 속상함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요. 그건 그것대로 잃었으나 나만의 제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김은화: 서지형 작가님은 불사조 같은 느낌이 있어요. 언제든 다시 부활하고 마는 불사조.
서지형: 지나고 보니까 그렇게 포장이 되네요. 그 순간에는 불안했는데 말이에요.
맹현: 불안은 감정이잖아요. 저도 불안한 감정만 없었을 뿐이지 상황은 같았거든요. 아이가 있어서 밖에 못 나갈 때 제 작업하면서 즐거웠다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니까요.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된 사람들은 다 같은 상황에 놓여요. 불안이 있으나 없으나 결과가 같다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김은화: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맘처럼 잘 안 돼요. 입덧 때문에 종일 체한 느낌에, 머리도 아프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몸에 갇힌 기분이 들어요. 애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내 인생을 내 맘대로 살 수가 없고,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도 되고요.
서지형: 에이, 그건 너무 나갔다! 저는 다 지나왔거든요. 똑같이 불안한 시기도 지나왔고, 다 잃어도 봤고, 또 아기로 인해 얻어도 봤거든요. 혼자만 겪는 게 아니고 모두가 그래요.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게 보일 거예요.
맹현: 중요한 건 애가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책정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이니까. 일을 줄였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요. 없어진 걸 보지 말고 지금 내가 가진 걸 봐요. 와우! 우리는 아이를 가졌잖아요. 아기를 낳고 애 때문에 내가 뭘 못하는구나, 하지 말고 아이 예쁜 것을 실컷 들여다보세요. 그 순간이 금방 지나가거든요. 그때를 눈에 무조건 담아놓으세요.
서지형: 제가 애기 1학년 때 맞춰서 일 빼놓은 게 그것도 있어요. 겪어봐서 알거든요. 1학년 특유의, 집에 손잡고 돌아올 때 하는 대화가 있어요. 그때 참 애가 예뻐요. 비엔날레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그 순간에 임신해서 불안하고 화가 나기도 했었어요. 왜 하필 지금 생겨가지고…. 근데 지금 이렇게 지나고 나서 비교하면 이게 더 높아 보이기도 해요. 인간이 다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게, 육아가 기쁨을 줘요, 고통만큼. 그게 다 공평하더라고요.
맹현: 공평하다는 말, 동의해요. 오늘 인터뷰해보니까 서지형 작가님하고 저 사이에 닮은 점이 많네요. 저는 아줌마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열심히 사는 ‘아줌마 창작자’로서 공통점을 많이 발견했어요.
서지형: 우리가 이렇게 비슷하다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애 낳기 전에 불안함은 있게 마련이지만, 결국 우리처럼 될 거예요. 우리처럼 되는 게 싫다면 미안한데, 그리 나쁘지는 않아요. 애 낳고 공유오피스에 나와서 수유할 수는 없겠지만, 마을 안에도 사회가 있어요. 그 엄마들도 다 자기 분야에서 했던 일이 있잖아요. 엄마들과 어울리다 보면 또 다른 인연이 생길 거예요. 저도 마을에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러니까 육아와 단절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맹현: 단절은 언제 생기냐면 내가 안 할 때 생겨요. 뭘 하든 나만 하고 있으면 단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사회적으로는 넓게 보면 2년 정도 공백이 생길 거예요. 저는 수유할 때 책을 못 읽으니까 대신 영화를 엄청 봤어요. 서지형 작가님은 유모차 끌고 미술관 다니면서 카카오스토리에 매일 세 줄씩 썼다잖아요. 뭔가를 그냥 하는 거야. 나랑 관련된, 내가 좋아하는 걸.
인터뷰를 마친 지 두 달이 지났다. 옆자리 짝꿍들은 여전히 작업실에서 만나기 어렵다. 맹현 작가는 하반기에 내놓을 어린이 말 ‘줍줍’ 대화 에세이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詩>, 동화 <쓰레기 위성의 혜나>를 집에서 편집하느라 바쁘다. 서지형 작가는 세 번째 책 <엉망 종이 워크북>을 준비하며 잠시 미국에 머물고 있다. 입덧이 잦아든 나는 컨디션을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다.
우리는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두 선배 작가가 들려준 말을 기억하겠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만 계속 하고 있으면 된다는 맹현 작가의 말, 마을에도 사회가 있으니 걱정 말라는 서지형 작가의 말을. 실은 아이를 돌보며 자기 일을 맹렬하게 해 나가고 있는 ‘아줌마 작가’들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힘이 된다. 두 작가분의 앞날을 응원한다.
덧붙여, 이 글에는 아빠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돌봄에 참여하고 있겠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일과 돌봄의 양립은 부모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머잖아 늙어가는 부모를 돌봐야 할 것이다. 사이보그가 아닌 이상, 나도 언젠가는 돌봄을 받아야 할 테고 말이다. 여성들만큼이나 남성들도 '행복한 조율'에 적극 동참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