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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28. 2023

 고부(姑婦) 사이에 남편이 껴서 좋을 일 없다

추석 연휴 시작일 바로 전이 어머님 생신이시다. 올해는 칠순. 9월 시어머니 칠순을 앞두고 나는 여름부터 고심하고 계획했다. 워낙 몸이 안 좋으셔서  뭐 하나 누리고 살지 못한 어머니께 대단하지 않아도 두고두고 남길 추억 하나는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70여 년을 살아내신다고 고생 많으셨다. 덕분에 우리도 성실히 잘 살아가고 있다. 다 어머님 덕분이다.'라고.


지난 시댁 방문 때 다가올 추석은 남편이 승선 중이라 한국에 없어도 아이들과 시댁에 반드시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살짝 피곤한 낯빛으로 뭐 하러 그러냐고, 친정에서 식구들과 보내고 남편 오면 같이 오라고 하셨다. 나는 완강했다. 그래도 오겠다고, 다른 날 같으면 편도 300킬로미터 이상을 운전해 오기 힘들지만 그래도 칠순이 아니냐고, 며느리가 차려주는 생신상은 한 번 받아보셔야 되지 않겠냐고, 아니면 어디 좋은 곳에 가서 식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어머니는 병색 짙은 파리한 낯빛으로 말씀하셨다. "나도 친정 가고 싶어서 그래. 동해에 가서 동생들도 얼굴 보고 오고 싶어서 그래. 몸이 괜찮으면 동해에 가고 싶어서 그래."


이때까지 이야기는 좀 훈훈하다. 문제는 추석 바로 전 주부터다. 아가씨가 어머님 몸이 안 좋으셔서 동해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우리들이 오면 부모님께서도 좋으실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충분히 이해 된다.  삶의 낙이라고는 손자들 보는 것밖에 없는 시댁 부모님들은 직접 오라고 말씀 하지 않으시니 아가씨가 분위기 봐서 나에게 슬쩍 언지를 준  것이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래도 당일까지 기다려보고 몸이 좋으면 동해 친정에 갈 거라고 오지 말라고 하셨다.


안 가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상황을 보니 어머님은 몸이 안 좋으셔서 결국 동해 친정집에 못 가실 듯하고 만약 우리가 시댁에 가려면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고,,,, 혼자 생각만 하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어머님은 오지 말라고 하시고, 아가씨는 오라고 하고, 나도 가는 게 마음이 편한데 자꾸 오지 말라하시니 어떻게 해야 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 답답해.


인도양 어디를 항해 중일 남편에게 답장이 왔다. 짜증 내지 말라고.

자기가 본가에 연락해 보겠다고 하더니 이내 이렇게 답이 왔다. 그냥 가지 말라고. 그냥 평소처럼 고구마나 사과나 보내주다가 본인이 한국에 휴가오면 한 번씩 가라고.


피가 얼굴에 몰렸다. 화병이 도질 것 같았다. 화내는 것은 분명 남편인 것 같은데 문자에는 표정이 없다. 그래도 행간에는 나에 대한 못마땅함, 동시에 어머님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 있다. 면 남편은 내 문자에서 시댁 식구에게 도리를 하려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답답한 마음을 읽어 낸 듯하다. 그는 급발진하며 이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됐다고 이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다.


 또 시작이군, 와이프는 뭔가 하려고 하고 어머니는 하지 말라고 하는 일에 나를 끌어들이는군 하는 생각을 하며 반복되는 고부갈등에 대한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그 피로감을 숨기지 않았고, 그저 의논하려는 나의 마음을 왜곡하고 무조건 해결 지으려고 했다. 어머니께는 뭐 해준다고 해도 받질 못한다고 타박을. 나에게는 우리 어머니는 건강도 안 좋고, 마음도 여려서 주는 것 부담스러워하니 강제로 뭐 하지 말던가, 짜증 내지 말고 해 주던가 라는 타박을 던졌다.


그의 해결은 이렇다.

 ' 자기는 해주려 해도 어머니는 몸이 안 따라주니 못 받아주고, 자기는 또 서운해하니 서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지내라."'


나는 남편에게 따졌다.

- 또 나만 나쁜 며느리지? 어머니는 마음이 여리고 착하셔서 다 며느리 편하게 해주시려고 하는 건데, 당신이 보기에 내가 욕심 많아서 이런다는 거지? 뭐 어머님에 대한  말만 하면 나보고 짜증 내지 말래. 내가 짜증 내는 것도 아닌데 다자 고자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인식이 기본값으로 짜여서 그런 거겠지? 당신 어머니만 좋은 분이시고 나만 나쁜 며느리지.


그 후로, 남편은 몇 번 미안하다고 말했고, 답답하게 어머니는 계속 오지 말라고 하시고, 아가씨는 계속 얼굴이라도 보게 오라고 하고....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문자에서 자꾸 서운함과 오해는 쌓이고.


항상 반복되는 문제다.

남편과 아가씨는 계속 나와 어머니 사이에 끼여 그들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하려 하고, 나는 그 전달 과정이 불편할 뿐이고.  오해도 쌓이고. 뭐 일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여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히 의논할 겸, 푸념할 겸 꺼낸 말에 싸운다고 진이 다 빠졌다. 가기도 전에 몸살이 났다.


나는 결국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오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더 깊게 생각 안 하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당신 집안이니까 이게 진짜 오지 말라는 건지, 오라는 건지 알 수 없다고 결정해 달라고 묻지도 상의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련다. 가서 내 할 도리하고 오면 된다. 나도 마음 여리고 몸은 더 약한 어머님 볼 수 있을 때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오는 게 더 좋다. 마음이 피곤한 것보다 몸이 피곤한 게 낫다.

 

어쨌거나 짐 싸서 시댁으로 가면서 나는 여전히 남편은 밉다. 언제나 우리 어머니는 마음이 여리고 착하셔서...라고 하는 그의 화법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럼 나는?" 나는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묻고 싶다. "그냥 해결하려고 하지를 말아! 중간에서 이야기만 듣고 말라고. 자꾸 쓸데없이 해결하려고 하니까 어머님이랑 내가 더 불편해 진다고!" 라고 혼내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는 지금 항해 중이네.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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