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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Oct 21. 2023

강원도의 산, 호수... 그리고 나의 증명

증명해 내는 일에 열심이었던 내가 있었다. 누군가에 기대어 편하게 사는 삶이 불가능해졌음이 명확해진 순간, 그러니까 부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불이 났고, 엄마가 가족 몰래 빚을 지고 있음이 드러나고, 부모님 사이가 순식간에 틀어지고,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 하는.... 어리광 부릴 대상이 없어지고 타인의 어리광도 받아줄 여유가 없어졌던 순간. 모든 것이 순식간에 나빠졌었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살아야 할 그 순간에 힘을 냈다. 쥐어짜듯, 절벽을 오르듯, 나는 스스로를 절박하게 쥐어짜고 박박 긁어내 용기를 냈다. 하나의 작은 성공의 경험은 오랫동안 내가 천성처럼 가지고 있었던 자기 불신을 잠재웠다. 기적과 같이, 각본과 같이.

내가 바라던 삶의 모습대로 살기 위해 크고 작은 증명을 해내며 성취를 쌓아갔다. 딱 하나만 빼고. 


마음속, 가장 강렬한 출세욕이자 인정욕구는 '글'에 있었다. 오랜 시간 작가가 꿈이었던 나는 좋아하는 작가도, 글도 출판사도 많았지만 그것들에 나의 존재를 알리기에는 너무나 미약했다. 내가 쓴 글은, 글쎄.... 흔하다고나 할까. 나는 '글'로서 인정받고 싶었고 꿈을 이룬 자, 이루어가는 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먼저 믿어봐야지. 나의 소망을 단절로 끝내지 않고 일단 믿어봐야지. '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역시 삶의 유한성을 한몫을 했다. 마흔이 되면 글을 쓰는 사람을 살겠다는 다짐은 마흔이 되는 순간 나를 흔들어 놓았다. 이러다 글도 못쓰고  죽겠네. 그렇다면 나의 다짐은 허세가 되고마는 거네.

해놓은 것 없이, 강렬하게 원하지만 오히려 재능이 없다는 외면을 받을까 봐 두려웠던 나는 매번 긁적이다 말았다. 긁적이다만 글은 내 삶의 호흡과 일치해 그만두기 일쑤였다. 어떤 끈기도 가능성도 없이 쓰이고 읽는 이 없이 잊혀졌다.


주위에서 하나 둘 출간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 생기자 나는 다시한번 용기를 쥐어짜보기로 하며 이렇게 다짐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작가가 싶었는데  했다는 구질구질한 변명도 필요 없어. 지금 사라지지 않고 강렬히 존재하는 이 간절한 마음에 기대에 희망하고 노력해서  증명해 보이고 싶어. 나 스스로에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은 늘 나에게 시작을 독려하잖아. 시작하자. 한 줄 쓰자.'


나의 가장 오랜 희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써서 투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판사로부터 회신이 왔다. 글을 수정하면, 혹은 이런 컨셉으로 다시 쓰면 생각은 해보겠다는 내용이 주였다. 그 중 한 출판사로부터 40대 여자의 에세이가 아니라 육아서로 바꿔서 쓸 생각이 있다면 재고해보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나는 그러겠다고, 잘 할 수 있다고 답을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수신함에 읽음으로 표시되었으나 답이 없는 상태로 초조해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짐을 꾸렸다.

시댁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 나는 강원도로 남편과 번갈아 운전해가면서도 계속 '내가 책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골몰했다. 가능성이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내 시선이 담긴 책을 써낼 저력이 있을까 같은 의문은 의심이 되었고 어딘지 우울하고 위축된 상태로 강원도 시댁에 당도했다.


시댁에 짐을 부리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부러 나와 걸었다. 시댁 , 영랑호가 하늘을 반추하고 있었다. 하늘을 닮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득히 담고 찰랑이는 호수에 어둠이 내려앉아 마침내 밤하늘보다 더 빛나는 물결이 일렁일 때까지 나는 걸었다. 걸으면서 오직 하나의 생각, '내가 책을 쓰는 일, 할 수 있을까'에 골몰했다. 될 것도 같고, 안 될 것도 같고 마침내 알 수 없는 마음이 들어 울고 싶어졌다가 이윽고 바닥을 치고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훽 생각이 틀어지기도 했다.


'될 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내 바로 앞에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반짝.

'정말? 내가 할 수 있다고?'

그 다음 가로등이 내 물음에 응답하듯 불이 들어왔다. 반짝.

'할 수 있다고 응답한 거야? 내가 책을 쓸 수 있다고? 그럴 능력과 인내력이 있다고?'

마음 속 물음에 그 다음, 다음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반짝.

그 다음, 다음, 다음의 가로등도 차례차례 불이 들어올 때마다 나는 희열이 차올랐다. 된대, 된대, 될 거야, 내가 그렇게 하도록 노력할 거야. 나는 영랑호 주변을 둥글게 끌어안은 가로등이 차례로 불이 들어오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것 같은 순간 답을 찾은 사람처럼, 확답 받은 사람처럼 환희에 차 올랐다. 그 희열을 감당 못해 호수변을 달렸다. 돌아와 확인한 메일함에 <작가님과 계약하고 싶습니다>라는 출판사의 응답이 있었다.


나는 <시골육아>를 낸 후, <사랑해서 미워하고>라는 에세이를 연달아 썼다. 그리고 두 번째 책 출간이 지연되었는데 그사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글을 쓰고자하는 그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글을 쓴 직후여서 그렇다고 자위하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쓰지 않고, 희망하지 않고, 그렇다고 성취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써야할 것 같은데...나같은 초짜이자 무명 작가가 그래도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계속 써야하는데'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또다시 강원도로 갔다. 강원도는.... 내게 묵묵한 힘이 필요할 때 요령없이 살고 싶을 때 본능적으로 가 곳이다.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를 걷고, 백담 계곡에서 수영을 하고,  고성에서 금강산 신선대를 오르고, 속초에서 설악산 울산바위를 올랐다. 무지하게 더운 여름이어서 내 진득한 땀냄새가 났다. 같이 간 남편에게서는 참을 수 없는 쉰내가 났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나의 무기력과 체념과 권태를 떨궈내기 적합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에게서 나는 쉰내, 그러니까 땀냄새를 맡는 순간 과거의 어느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첫 책 <시골육아>를 탈고하고 동시에 <사랑해서 미워하고> 초고를 써내면서 작년 여름, 꼼짝 없이 앉아 하루 종일 글을 썼다. 생각이 고여있고 표현되지 못하는 어떤 생각과 감각을 쥐어잡고 이것이 무엇인지 까고 까고 또 까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언어화에 실패했다. 그 답답함에 글을 쓰다 가슴만 마구 쳐대는 날들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엉덩이만은 의자에서 떼지 않고 이것이 아니지만 일단 이것이라도 써보자라는 마음으로 계속 썼다. 엉덩이에 종기가 났다가 땀띠가 날 때까지. 티셔츠와 반바지에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내, 쉰내가 베일 때까지.



때론 글을 쓰는 동안 내 증명의 결과가 너무 미미해서 무력감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여기서 그만둘 것이냐고 물을 때, 어떻게 살 거냐고 나 스스로를 닥달했으나 별소득이 없을  때, 조용히 차를 몰고 나와 바닷가에 섰다. 고성에서 속초, 양양, 강릉의 해안도로를 달리며 시시때때로 바뀌는 물색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때론 무섭게 잔잔하고, 때론 무섭게 포악해지는 바다를 보면 스스로를 닥달하는 것을 그만두고 편안함을 찾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보다 더 거대한 감정덩어리를 가진 바다가 발악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나의 소란스러움이 그것에 압도되어 잠재워진다는 것이.


나는 이런저런 생각하는 시간에 한 줄이라도 써보자라는 현실적이고 당연한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내 글이 타인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내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위로하며. 유명한 작가가 되려는 욕심보다 나다운 글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다짐을 하며. 돌아와 앉아 쓴다. 틈만 나면 쓴다. 나는 누구에게 나를 증명하는 글 쓰기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나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 딱 내가 살아낸 만큼 쓰는 사람이 되자고, 그렇게 나 스스로를 부끄럼없이 증명하자고 다짐하며 조용히 글 쓸 자리를 물색한다. 일단 앉으면 쓰므로. 일단 쓰면 생각이 언어화되고 싶어서 나를 닥달하므로.  참으로 이상하다. 강원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요령부리지 말고 해내라는 격려를 참 잘한다. 호수와 산과 바다를 이용해서. 사람앞도 부끄럽고, 스스로도 쑥스러워  나의 속되고 낯부끄런 마음을 내비치지 못할 때 그런 마음도 아무렇지 반 않게 끌어안는 나의...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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