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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Jun 06. 2024

시골육아 쓴 선생님이 이렇게 헤매고 있다는 걸 알까?

< 시골육아 그 후, 도시로 >

'살던 곳으로 돌아왔을 뿐인데 뭐 그렇게 힘들겠어. 사는 곳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건 자신 있어.'

라고 자신만만해했지만 사실은 힘들었다.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 상경하는 동시에 다발적으로 생겼는데 다른 건 둘째치고 나는 첫째의 학업이 제일 신경 쓰였다. 글쓰기와 독서는 꾸준히 해왔다고 쳐도 그건  모든 가정에서 하는 기본값일 정도일 것이다. 아이는 헤맬 것이 없는 문제에도 미로에 갇힌 아이처럼 쩔쩔맸다. 숭숭 구멍이 나있었다. 지금 잡아놓지 않으면 난선형 교육과정에서 나가떨어져 갈 것이 뻔히 보였다. 

 

학교에서 하는 보충학습 신청을 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전학 와서 낯선 환경에 잔뜩 긴장해 혼자 앉아만 있는데, 보충을 하면 이중으로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지켜보고 부족한 점은 그때그때 보완하겠습니다. "라고 배려해 주셨다.  아이는 징대비가 내린 각종 시험지를 받아 왔으며, 창의수학 선생님에게 수업시간보다 더 일찍 와서 문제를 풀고 있으면 선생님이 좀 봐주겠다는 말도 들었다. 쉽게 말해 저학년 아이들과 같은 수업을 듣어도 무방할 실력이란 것이다. 아이를 만난 선생님들은 아들이 성실하고 순진하고 바른 학생이라 정말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다.  부족한 점이 있어도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이런 성실을 지닌 아이라면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나는 선생님들의 전화가 올 때마다 화들짝 놀랐다. 아이의 실력을 허상 없이 직시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핸드폰 보기가 겁났다.

sns에 올라오는 아이들은 선행도 하고 알아서 척척 숙제도 해내는데... 그런 영상을 보고 난 후 아이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났다.   아이가 건강하게 생활을 하고 있는 예쁜 점은 기본값이고 현행 수업을 제대로 못 따라가는 점만 자꾸 마음에 남았다.


 나는 남편에게 줄곧 이렇게 중얼거렸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매일 생각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내가 애를 너무 안 시켜서 아이가 수업을 못 따라간다는 말을 들으니..... 나는 안 시킨 건 아니었는데. 기본은 중요하니 나도 나름 열심히 같이 공부했는데, 결과만 보고 그렇게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너무나 무력해져.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이렇게 답했다. 

"아직 어리잖아. 아직 기초를 배우고 있는데.."

"지금 이렇게 쉬운 것도 못 하는데! 이해를 못 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되겠어!!" 

그러면 남편도 나랑 같이 침울한 얼굴로 침묵하고 만다.



때론 남편은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책 <시골육아>까지 쓰신 선생님이 이렇게 헤매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 그러면 남편에게 정색하고 베개를 던진다. 

"시끄러워! 네 유전자가 때문일걸?"

"아들머리는 엄마 유전자래."

남편이 정색하고 답한다.



도리가 없었다. 

다른 어떤 영역보다 제일 먼저 티가 나는 학업 수준이 학교 생활에 두드러져 보인다. 또래 아이보다 성숙한 아이, 어떤 영역에서 뛰어난 아이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다. 수업시간에 잘 몰라서 주눅 들고, 매사 자신이 없는 아이는 또래 아이들도 귀신같이 알아보는 법이다. '별 볼 일 없구나?! 별로 너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아.' 그것은 어찌 보면 이해되,는 누구나에게 있는 마음이다. 아이는 도시의 손꼽히는 과밀학교, 별로 학구열이 높지도 않은 신도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공부를 잘 못해도 티 나지 않고, 다른 장점을 정겹게 봐주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시골학교를 매일 그리워했다. 매일 학교 가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던 시골학교와 달리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학교가 너무 어렵고 불편하다고 말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불안했고 절망했다.

'혹시 내가 선택을 잘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차라리 올라오지 말 것을, 돈을 못 벌더라도 일자리를 버리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그냥 그곳에 머물 것을. 나도 너무나 좋았고, 행복했던 곳에서 살 걸. 나는 도시에 올라와 불면의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나의 혼란과 불안을 눈치챌까 봐, 나는 일부러 잰 체 말했다.

"어떤 문제가 눈앞에 생겼을 때 네가 못하겠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못하는 일이 되는 거야.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거야. 네가 선택하는 거야. 

오늘 학교에 가는 거 할 수 있어? 없어?"

"있어."

"그럼. 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마음먹을 걸 알고 있었어. 왜냐하면 우리가 시골에서 보낸 시간이 그냥 노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거기에는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어."

"어떤 비밀?"

"네가 살면서 하나씩 스스로 느낄 거니까 미리 말해주지 않을게."

"뭔데? 하나만 알려줘."

"근면성."

"근면성이 뭔데?"

"부지런한 품성. 너희가 씨도 뿌리고 더운 날씨에 물도 주고, 잡초도 뽑고 텃밭 채소를 길렀잖아. 너희는 맡은 임무를 포기하지 않았어. 너희가 기르는 것이 생명이니까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잖아. 엄마는 3년 동안 너희가 그렇게 부지런히 맡은 바를 해내는 것을 봤어. 그건 농사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거야. 공부도 마찬가지야. 가랑비에 젖듯, 너희가 매일 해내는 것들이 내공이 되고, 어느 순간 학교에서 하는 공부들이 못 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게 될 거야."


그렇게 3월, 4월, 5월이 지났다. 아이는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라는 선생님의 피드백을 종종 받아 왔으며 20문제 중 4문제 만 맞은 시험지를 가져오기도 했다. 아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주어진 학업량을 채우고 잠들었다. 밤 11시가 넘어도, 12시가 되어도 해야 할 것은 하고 자야 한다는 것을 실천했다. 비록 다음 날 장대비가 내려친 시험지를 받아와도. 


지난 단원평가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20문제 중 1 문제만 틀린 시험지를 받아 왔다. 5월의 마지막 주에. 얼굴에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선생님께 잘했다는 칭찬을 정말 오랜만에 받아 왔다. 


3월부터 시작한 학습지 선생님께서 아이가 정말 요즘 보기 힘든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답률이 엄청난데도. 

"보통 20장이 학습지로 나오거든요. 근데 얘는 스스로 부족하니 학습지를 더 달라고 해서 40장을 넣어줬어요. 근데 밀리지 않고 매일 풀어요. 진짜 귀한 거예요. 이런 인내심을 가진 아이들이 요즘은 정말 없거든요.  아직 문제를 잘 풀지도, 정확하게 풀지도 않지만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아이라면 금방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이는 그날 선생님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고전했다. 단순한 연산 문제다.  선생님은 원래 아이에게 할당된 수업시간이 10분이었지만 열심히 하는 태도에 매번 감동한다며 1시간을 가르쳐주신다. 부러 일찍 오신다. 아이는 문제를 푼다고 애써서 빨개진 얼굴로 "어렵지만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기특하다.


창의수학 평가지가 회신함으로 왔다. 심화 20문제에서 6문제만 맞았다. 아이는 나머지 14문제를 끙끙거리며 다시 고치기 시작했다. 하아. 다시 고치지만 맞는 것이 없다. 입에서 부정의 말이 튀어나와 우리를 망치기 전에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의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자녀교육서와 학습지도서 같은 책을 뒤적인다. 

헤매고 있다. 아이의 속도대로 존중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나는 부족하고 헤맨다. <시골육아>는 나의 헤매는 과정 속에 나온 경험담이다. 앞으로도 헤매는 과정은 나의 삶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이 내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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