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물약
내 이름은 오로라. 직업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으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된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 때 길을 걷다가 노파가 만나게 된다. 그 노파는 나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이 물약을 먹게. 먹지 않으면 결국 자네는 머지않아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야. 하지만 이 물약은 먹으면 먹을수록 소중한 기억들을 잃게 될 걸세.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 잊을 수도 있지. 모든 판단은 자네의 몫이지만, 삶에 있어 아직 해야 할 것이 남아있다고 생각이 된다면 매일매일 이 물약을 먹어야 할 것이야.”
노파는 이 말과 커다란 물약통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나의 고통이 그냥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대로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 물약을 매일 먹고 어떤 기억이 사라질지 모르는 막연함 속에서 버티며 살아야 할지.
허탈해진 나는 물약 통을 든 채로 어두운 가로등 주황색 불빛 밑에 털썩 주저앉는다. 상념에 잠기다 보니 최근에 죽을 듯 답답했던 가슴 통증이 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다시 숨이 멎을 듯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 한다. 어렸을 때 이런 가로등 불빛 밑에서 겨울이면 고구마를 연신 구워냈던 고구마장수 아저씨.. 달큼한 고구마 냄새와 끊임없이 장작을 피워댔던 아저씨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 그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못했던 그야말로 ‘착한 아이’였던 나는 지금 삶의 기로에 서있다.
칭찬받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타인에게 공감하고 자신보다 다른 이를 먼저 생각했던 나 자신은 자의에 의한 것일까? 확실한 것은 타인에게 그렇게 공감을 잘했던 나가 내 자신에게 공감한 적은 많이 없다는 사실이다.
먼발치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나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했던 나를.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 나 약을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왜요?? 어디 아파요? 요즘 안색이 좀 안 좋았던 것 같긴 한데..”
“응.. 근데 이 약을 먹으면 기억들이 하나둘씩 사라질 수 있다는데..”
“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응. 아마도 맞을 거야. 근데 나 그런다고 생각하니까 지금까지 타인에게 공감만 하며 살았던 삶이 너무 후회가 돼. 여보.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내 기억들이 다 사라진다면 난 그 기억 중에 어떤 기억을 가장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싶어 할까? “
“여보.. 으흐흑 “
아내와의 통화를 마치고 난 어쩌면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물약의 뚜껑을 연다.
‘빌어먹을 인생’
무슨 관념에 갇혀하지 못했는지 모를 욕을 한마디 소심하게 내뱉고는 물약을 들이켠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나를 잊는 것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 탓인지 몸과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난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