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신입입니다만? - 첫번째 에피소드
“그 과는 커트라인이 높아서
네 점수로는 어려워.
국문학과로 입학해서
전과하는 건 어떠니?”
지방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수능보다는 내신에 더 힘썼던 학생이었다. 대학교 간판이 중요한 건 알고 있었고 몇 개의 학교는 선생님 말씀에 따랐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비싼 학비를 내고 수업을 들을 텐데 학교만 보고 원서를 넣었다가 4년 동안 억지로 공부하긴 싫었다. 그래서 하나쯤은 내가 원했던 관광학부로 원서를 넣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왔는데 그다음이 다시 딜레마였다.
전공은 좋아했지만, 전공을 살려 무언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 나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인데 그 당시 제일 친했던 친구는 이미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계획대로 진행 중이었다. 그런 친구를 보며 나도 무언갈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은 물론 도서관에서 직업에 관련된 책, 꿈에 관련된 책을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무언갈 찾아볼 땐 마지막 페이지가 나올 때까지 다 찾아봤다. 그러다 우연하게 ‘국제회의 기획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마침 평창올림픽 유치로 김연아 님과 나승연 님의 영어 프레젠테이션에 관한 관심이 뜨거울 때였다. 언뜻 어렸을 때 컨벤션 센터 입구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무전기를 차고 일하던 분들의 모습이 스켜지나갔다. ‘국제’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분위기가 대단해 보였고 영어로 유창하게 외국인들과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다! 싶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영어 포기자였고 극복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않고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이때 제주에서 열리는 큰 국제 행사가 있었다. 경험이 없어서 당연히 불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합격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규모가 큰 행사라 사람이 많이 필요했을 테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행사 당일. 내 업무는 국내분들이 많이 오는 전시장일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롯데호텔로 배정받은 게 아닌가? 느낌이 쎄... 했다. 분명 이력서에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기재해 두었는데 행사 당일 확인해 보니 영어를 쓰는 업무로 배정되었다.
업무 첫날.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잠시 생각했었다. 바보 같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외국인 참가자의 쉬운 질문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그분은 몇 번 더 대화를 시도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행사는 4일이나 더 남아있었고 덜컥 겁이 나 이곳을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 자기 전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보면서 내가 오늘 말하지 못했던 문장을 한글로 써두고, 나에게 물어봤던 질문, 나에게 할 법한 질문을 영어로 번역해 달달 외웠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다음날부터는 조금씩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고 3일 차부터 일이 편해지고 마지막 날에는 참가자들에게 수고했다는 박수를 받으며 짜릿함을 느꼈다. 영어로 대화가 된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구나!
확실한 목표와 동기가 생기니 영어 공부에 박차를 가했고 그러다 종로에 있는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