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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경삼림'이 알려주는 미니멀라이프의 의미





"세상에 유통기한이 없는 것은 없을까?"



영원할  알았던 사랑도 '기한이 있음' 상처받는 청춘들의 영화, <중경삼림>. 저에게 인생영화를 물어본다면 빼놓지 않고 떠올리는 영화가 바로  <중경삼림>입니다. 어린시절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빠진적이 있었는데요, 어른이 되어서 다시  <중경삼림> 다른 의미로 정말 놀라운 작품이란걸 알았습니다. 주제와 내용도 물론 좋지만, 정리와 비움에 대한 메타포가 난무했기 때문입니다.


중경삼림은 두 가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엮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영화에요. 남자 주인공들이 모두 실연을 당한 경찰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먼저 금성무의 이야기기로 시작됩니다.






그는 만우절날 애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만우절이었기에, 금성무는 그녀의 마음이 진심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 자신의 생일이자, 헤어진지 딱 한 달이 되는 5월 1일까지 기다려보기로 하죠. 그가 기다리면서 했던 일이 있는데요.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하나씩 사모으는 것이었습니다. 파인애플 통조림은 여자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어도 여자친구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습니다. 금성무는 5월 1일이 되기 2시간 전, 마지막 파인애플을 사려고 편의점에 갑니다. 곧 유통기한이 지날 통조림을 모두 빼놓았다는 알바생의 말에 금성무는 다짜고짜 화를 내죠.




"파인애플 한 캔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요? 기르고, 수확하고, 얇게 썰어 넣고. 그런걸 그냥 폐기 처분해요? 통조림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봤어요?"

"난 알바생이라고요. 내가 왜 통조림 기분까지 생각해야 하죠? 난 판매하면 그만이라구요. 기한지난거 좋아해요? 여기 한 상자 다 줄테니 가져가요, 공짜예요."


이렇게 말하면서 기한이 지난 통조림들을 모두 줍니다. 그 상자를 들고 나오는 금성무는 이런 나레이션을 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물건이든 유통기한이 있다. 꽁치도 유통기한이 있고, 미트볼도 유통기한

이 있고, 랩조차도 유통기한이 있다. 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유통 기한이 없는게 이 세상에 있을까?’


금성무에게 감정이입하면서, 안쓰럽기도 했지만 저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대답하게 되더군요.


‘유통기한이 없는 건 세상에 없지.’



통조림이 마치 자신처럼 느껴진 금성무는 서른개의 파인애플을 모두 먹어치워버립니다.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도록 말이죠. 술을 마시면 소화가 잘된다는 핑계로 술집에 간 금성무는 그곳에서 노란 가발을 쓴 여성을 만납니다. 바로 임청하죠. 그녀는 마약밀매를 하던 중 보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한 상황이었습니다. 임청하는 선글라스를 끼고, 레인코트를 입는 모순된 패션을 선보이는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외출할 때면 항상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다. 언제 비가 올지, 태양이 뜰지 모르니까."


그녀가 가진 불안감을 다소 거추장스럽고 아이러니한 차림새로 대변한 것이죠. 이 대사는 마치, 정리하는 우리의 마음 같지 않나요?  미리 쟁여 놓고, 언젠가 쓸 일을 생각해서 버리지 못하는 불안과도 닮아있습니다.


외로움에 사무친 금성무는 임청하를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면서 "파인애플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임청하는 이런 대사를 하죠.


‘사실, 한 사람을 이해한다 해도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람은 변하므로. 오늘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일은 다른 걸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그렇습니다. 파인애플의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더라도 사실 우리의 마음이 변하면 그것을 먹지 않게 되는 법이죠. '사랑'을 물건에 비유해서 그런지, 이 대사가 조금은 씁쓸하고 서글픈 감정이 듭니다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생일을 맞은 금성무는 알 수 없는 여인로부터 생일축하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그는 임청하가 남긴 것임을 직감하죠. 그는 '이 여자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명대사를 합니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영원히 유통 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번역한 사람에 따라 ‘기억’을 ‘사랑’이라고 번역한 대사도 있는데요. 저에게는 사랑보다는 ‘기억’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거 같습니다. 설레는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지만, 사랑했던 순간의 기억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수 있을테니까요.








두 번째 이야기는 경찰 663 양조위이야기 입니다. 양조위도 실연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죠. 그는 스튜어디스인 여자 친구를 위해 늘 샐러드 가게에서 샐러드를 사는데요, 어느 날, 이 여자 친구가 샐러드 가게에 편지를 한 통 남깁니다. 편지에는 이별 통보와 함께 그의 집 열쇠가 들어 있었죠. 직감한 양조위는 편지를 받지 않습니다.


실연을 당한 그는 집에 있는 온갖 물건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신기하게 금성무도 그렇고, 양조위도 그렇고, 물건을 잘 못비우는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물건에 감정이입을 참 잘해요. 양조위는 생명까지 불어 넣습니다. 구멍난 수건이 물에 젖어 있는 것을 보고 “그만 울어, 언제까지 슬퍼할 거야”라고 하거나, 거의 다 쓴 비누를 보며 “왜 이렇게 말랐어. 자신감을 가져”라고 말해요. 이 말들은 사실 자신에게 한 말이겠죠. 심지어 수도꼭지를 틀어 놔서 물바다가 된 방을 치우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 대사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 몰랐네. 사람은 휴지로 끝나지만, 방은 한 번 울면 뒷일이 엄청나다.”


 한 편, 샐러드 가게 점원, 페이는 양조위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양조위가 실연의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그녀는 편지 속 열쇠를 가지고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갑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마마스앤 파파스의 히트곡 ‘캘리포니아 드림’을 들으며 집 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어 내고, 걸레질을 하죠. 이 장면, 많은 분들이 기억나실거에요.



그녀는 여자친구와 함께 썼을 침대 시트와 식탁보, 양치 컵을 바꾸고, 흰색 커다란 곰 인형을 고양이 인형으로 교체합니다. 비어있던 어항에는 금붕어를 채워넣고요. 슬퍼하던 수건과 자신감없던 비누도 새것으로 바꿉니다. 전여자친구의 스튜어디스 유니폼도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는 것도 잊지 않고요.


페이는 양조위에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하지만 양조위는 ‘그녀가 돌아온 것 같다’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집 안의 변화에 대해서는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방을 신경쓰지 못하듯, 정리를 잘 안하는 사람이 그렇듯, 주변 환경에 둔감한겁니다.

 

영화는 위기 상황으로 갑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의 집을 몰래 들어와 정리를 해 주고 있는데, 양조위가 불시에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집안의 변화를 그녀가 만들어 놓았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겠죠. 도망치듯 나가버린 그녀를 만나러 샐러드 가게로 찾아간 그는 미소를 띄우며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 와서 그가 한 일은요? 대청소를 해요.


옷장 속에 페이가 숨겨 놨던 전 여친의 제복을 상자에 담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대청소를 했다, 다음 비행을 위해 활주로를 닦듯이”


이제 과거의 연인을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고, 새로운 인연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겠죠. 사실 저는 이 대사를 듣고 소름이 돋았어요. 이 활주로라는 표현은 정리에 대한 개념 중 '클린스팟'을 설명할 때 늘 쓰는 말이거든요. 어떤 활동이 루틴으로 일어나는 공간을 '클린스팟'으로 지정하고, 언제든지 비행기를 띄울 수 있도록 활주로처럼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고 말이죠. 물론, 여기에서는 여자친구가 스튜어디스였기 때문에 나온 대사겠지만요.


아무튼, 양조위와 페이는 데이트를 잘 했을까요?

마지막 스포는 하지 않을게요.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비워야 하는 모든 것 앞에 우리는 금성무, 혹은 임청하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비우고 정리해야 하는 이유? 그건 바로 양조위와 페이의 이야기가 답을 대신 해주죠. 과거의 집착,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리가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킵니다. 어쩌면 행복이란 건 집착을 버리고, 불안으로 자신을 내던질 때 얻을 수 있는 선물(present)이 아닐까요? 살아있는 한 우리가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은 현재(present)임을 알려준 영화, 바로 '중경삼림'이었습니다.









* 브런치의 글을 오디오 버전으로 들으실 수 있어요 : 팟빵, 오디오클립에서 <정리상담소>를 검색해주세요.

* 인스타 : @sim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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