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
결혼기념일을 기해 남기는 소감
귓불에 피어싱을 하나 더 했다가 염증이 났다. 결국 한쪽은 피어싱을 빼고 약을 먹어야 했다. 역시 나의 피부는 어떤 상처에도 관대하지 않다. 내가 만약 쌍꺼풀이 없었다면 쌍꺼풀 수술을 시도했을지도 모르는데, 내 피부가 그걸 어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흉이 잘 지는 피부라 아예 엄두를 안 냈거나, 모르고 건드렸다가 제대로 탈이 나지 않았을까? 내 피부는 그만큼 친절하지 않은 성질을 가졌다.
갑자기 20년여 만에 피어싱을 왜 했느냐고 물으면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더 뚫고 싶었는데 겁이 많아서 머뭇거리다 이 나이가 되었을 뿐이고, 마침 만났던 친구가 뚫는다길래 같이 해야겠다 생각했고, 연골은 망설여져서 일단 양쪽 귓불에 하나씩 더 뚫었을 뿐이다. 솔직히 한쪽 피어싱은 살아남아서 그래도 하길 잘했지 생각한다. 분명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겁이 많은 나게 아프지 않은 꾸미기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예를 들면, 속눈썹 연장이나 네일 등인데 언젠가부터 안 한다. 못한다는 말이 더 맞을 테지. 나란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나의 삶에서 필수가 아닌 부수적인 것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 꽤 오래 나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음을 배우는 중이다. 나의 셀프 관심 부족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나란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막아온 것을 알았다. 특히 나의 배우자는 눈치가 느린 편이라 내가 스스로에 대해 모호하면 한없이 혼란할 거라는 걸 이젠 안다.
나는 최근에 결혼 11주년을 맞았다. 연애기간을 합쳐 총 13년을 함께한 우리는 10년을 훌쩍 넘어서야 우리 두 사람이 이만큼 다르고 서로 어떤 점이 힘든지 알고 인정하게 되었다. 세상에 거저 깨닫는 것은 없는 법이고, 그 배움을 위한 계기들을 거치느라 10주년도 11주년도 내게는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기간이었다. 어쩌면 아직도 그 어려움의 일부는 진행 중이기도 하다.
각자 열일하다가 주말 저녁에 만나 무한도전을 보며 치킨을 뜯던 신혼은 아득하고, 각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느라 홀로 나가떨어지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난 언젠가부터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간신히 배를 타는 사람처럼 거세게 흔들리는 중이다. 미리 알았다면 키미테라도 붙였을 텐데 후회하면서. 마침 처지는 일상에 맞이한 기념일이라 영 신이 나질 않았다.
"신나본 게 언젠지 모르겠어. 삶에 좋은 일이 좀 생겼으면 좋겠어."
"그 말은 너무 슬픈데..."
같은 배를 타도 사람마다 멀미의 정도가 다르듯이 그와 나의 상태는 다르다. 나는 조금 요란한 단락을 마치고 새로운 단락으로 넘어갔지만 아직 한 문장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느낌이다. 그에 비해 남편은 이성적으로 주제 문장을 뽑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다른 속도로 걷는 두 사람이 걸음을 맞추는 것엔 각각 늦춤과 서두름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기념일은 또 한해 어디까지 왔나, 당도한 곳에 서로가 그럭저럭 근처에 있는가 확인하는 날이다. 더불어 더해지는 시간의 무게를 기억하고 서로에게 잘하고 있다 격려하는 날이겠다. 올해도 10주년 때 기대한 11주년을 보냈다고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12주년엔 좋은 일이 펑펑 신이 날지 누가 아냐고 맘대로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