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생각하고 일하고 살아가면 세상은 굴러가지 않아. 어떤 사람에겐 세상이 이만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이 이만하고. 각자의 세상은 다 다르니까."
남편과 나는 참 다른 사람이다. 약간 이상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나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생각을 할 때도 많은데 늘 끓고 있는 남편의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때로 그 다름에 화가 치밀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 둘이 결혼해서 다행이라 여기는 편이다. 나는 남편이 있어 이 급변하는 세상에 대처하며 살아간다는 걸 알고, 남편은 내가 있어 우리 가정에 정서적 밸런스가 맞춰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의 모습이 남편의 치열한 삶에는 너무 느긋하게 보이기도 하고 같이 일로 엮일 때면 화마저 나게 만든다. 왜 거기까지만 하려고 하지? 이렇게 해볼 생각은 왜 안 하는 거지? 참으로 열심인 그에게 가끔 나는 솔직한 생각을 뱉어놓는다. 중요한 일이더라도 모두가 당신이 하는 생각까지 다다르고 절박하게 내달리지는 않는다고. 당신의 적당함이 누군가에게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지점일 수 있고, 어디까지 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른 능력이자 선택이라고 말이다. 그의 장점 중 하나는 그런 내 말이 납득되면 잘 수긍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을 상상하기로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 충분히 그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달콤한 경제적 자유를 맛보았거나 몸과 마음이 지나온 길이 순적하지만은 않았지만 이 정도면 부모의 품에서 곱게 자랐다고 생각하기에 더 그러하다. 상상은 내가 나를 넓히는 방법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병실에 누워 사느냐 죽느냐를 묵상했겠지?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어쩌나, 병원비는 누가 충당하나, 그런 걱정들도 했을 거야. 나는 여기가 딱히 병원비가 들지도 않으니 다행인데..."
어린이병원에서 큰 아이에 속했던 고등학생 소녀에게 병원 측은 가끔 병실을 혼자 쓸 수 있게 배려해 주곤 했는데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에서 자유로운 건 좋았지만 혼자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으면 참 쓸데없는 생각이 반복됐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의 심리를 짐작해 보거나 내게 상태를 물으러 찾아온 의사에게 숙제로 하던 화학 문제를 물어보는 상상을 한다거나 엄마가 사 오신 비빔냉면을 대부분 백인인 병원 스태프들이 맛보면 어떤 반응일까 그려보는 것.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컨디션이 떨어질 때 꼼짝하지 않은 채 기분을 환기하는 방법은 뒤죽박죽 상상하기였다.
상상은 때로 새드엔딩으로 흘러가 내 기분을 더 최악으로 만들기도 했고 그 방향이 해피엔딩 쪽일 땐 몸이 좀 낫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병문안 온 사람의 진심에 의문을 던지는 삐뚤어진 상상을 한 적도 있고 내일이면 나의 모든 일상을 다 되찾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상상 또한 했었다. 나는 그 병동에서 가장 건강한 환자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밝게 이겨내는 듯 보였고 그렇게 보이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거기서 일종의 위로를 얻었다. 솔직히 나의 뒤죽박죽 상상이 모두가 볼 수 있게 머리 밖에 튀어나와 있었다면 결코 없었을 평가라 생각한다. 이 환자는 일단 정신이 건강치 않다고 하지는 않았을까?
상상은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삶을 산 사람은 없다. 각자 주어진 여건과 기질이 조합된 결과, 그 모습이 되어 오늘을 산다. 내가 때로 누군가와 충돌하고 힘든 것은 어떤 말 몇 마디, 어떤 행동 하나에 대한 어려움일 뿐, 내게 누군가의 삶 전체를 평가할 자격은 없다.
나는 성경 속에서 긍휼히 여긴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내 심보는 예수님을 통 닮지 못했지만, 범죄와 사기의 영역이 아닌 이상에야 일상 속 우리는 서로에게 긍휼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 상상 속에서는 잘 아는 혹은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