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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Feb 15. 2022

백가지 화이트

책의 몸을 즐기는 법

- 100가지 화이트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글을 쓰다가, 오늘은 모처럼 동네 카페로 나와 ‘오늘의 커피’를 한 잔 시켜놓고 노트북을 켰다. 글이 끊어지고 생각이 자라는 동안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하다. 사방으로 난 큰 창을 통해 오후의 따뜻한 햇볕이 테이블과 바닥에 길게 드리웠다. 시간이 흐르고 빛이 바뀌는 걸 본다.

모든 색은 빛의 소산이다. 에너지 파장이 망막을 거쳐 시각세포를 통과하여 뇌에 전해진다. 색은 우리 머릿속에서 만드는 자작극이다. 모든 사물은 색이 없다. 하얀색도 마찬가지다. 광원의 모든 파장을 반사하면 백색이다. 모든 파장을 반사하는 사물은 없지만 대략 80% 이상을 반사하면 백색으로 보인다. 에스키모인은 하얀색의 이름이 스무 가지나 있다고 한다. 눈이 많은 환경적 특성이 흰색에 대한 특별한 차이를 발견하게 했으리라. 

에스키모는 아니지만, 디자이너라면 수십 가지 흰색을 감별해낸다. 종이에는 화이트, 울트라 화이트, 내추럴 화이트 등의 종이 색 이름이 있고, 같은 이름의 화이트라도 종이 종류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 종이의 결, 투명도, 표면의 순도에 따라 다르고, 그 종이 위를 비추는 광원에 따라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자연 광원으로는 태양빛, 달빛이 있고 인공광원인 백열등, LED, 형광등, 삼파장 등이 있다. 자연 광원은 시간에 따라, 대기의 상태에 따라 다르고, 인공광원도 전구색, 미색, 형광등, 주광색, 백색 등 색이 다르다. 이렇게 헤아리자면 수백 가지의 백색도 가능하다. 


우리는 책에서 셀 수없는 백색을 만난다. 언제 어디에서 책을 읽느냐에 따라 종이는 새로운 하얀 배경을 선사한다. 사월의 꽃그늘 아래는 어떠한가? 이른 새벽 스탠드 조명 아래는 어떤가? 색은 마음을 흔드는 가장 직관적 요소다. 읽을 때마다 우리는 책에서 다른 것들을 받아들인다. 그날의 흰색이 그날의 마음을 흔들고, 그런 마음이 그날의 구절을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닐까. 

다채롭게 변동하는 빛 속에 그날의 메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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