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유명인의 강연, 사랑하는 이의 위로.... 도 구제하지 못하는 내 일상의 무기력함을 몰아낸 것은
바로, 세차.
'세차를 해야지' 라고 생각한 건 차 사고가 난 직후였다. 접촉사고 후 나의 차와 같은 기종의 렌트카를 빌리게 되었는데, 아... 그 렌트카는 너무나 깨끗하고 잘 관리받아서 반짝반짝 귀티가 흐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후로 '세차할테다. 세차할거야. 나도 잘 관리할거야'.. 그런 다짐을 몇번이나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무기력함으로 내 마음은 켜켜이 먼지가 쌓인채로 마음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의 새벽 5시에 깨어나. '세차!!' 라고 다이어리에 첫 번째 항목으로 적었다. 아침을 먹고서 흐리거나 말거나 세차장으로 달려가게 된 것이다.
몇 년 만의 세차였다. 돈을 주고 맡길까 하다가. '검소하게 살자'가 올해의 목표임이 생각나 몸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비가 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 하늘 덕분에 한가한 세차장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무려 두 시간에 걸쳐 꼼꼼히 차를 닦았다. 진공청소기만 2000원을 썼다. 트렁크의 짐을 모두 드러내고 먼지를 빨아드렸으며, 시트 바느질 틈의 먼지도 뽀족한 가위의 날 끝으로 하나하나 긁어내었다. 통풍구, 손잡이 속 포켓, 발 매트, 의자 아래. 사이사이 틈틈이 켜켜이 묵은 때를 닦고 또 닦고 광 내주었다. 그 렌트카처럼 만들어주겠어! 라는 의지가 어느새 내 깊은 곳에서 의욕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말라버린 우물의 바닥까지 내려간 단 한 양동이의 물이 나를 작동시켰다.
세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먼지없는 유리창과 데쉬보드와 계기판을 보면서 운전하는 기분이란! 새날이 시작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겨울 동안 왠지 모르게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글 하나 제대로 올리지도 못했는데, 세차는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하고, 스마트폰을 잊게 하고, 브런치에 로그인하고서 타닥 타닥 글을 쓰게 만들었다. 이제 매일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어쩌면 내일은 또 무기력해질지모르지만 그땐 다른 구석 진 곳을 정리하고 닦아보리라. 그럼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