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반을 보내며
2019년도 벌써 반이 지났다.
슬프게도 난 연초에 세운 계획들 중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첫 단추인 '청년희망단'부터 잘못 끼워지더니, 어느 순간 공황과 불안이 나를 공격했다. 그것은 죽음의 환상이 나를 공격하는 것과도 같았다. 오만가지 살인사건의 장면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나의 에너지는 이런 끔찍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투입되어야 했다. 다른 곳에 돌릴 여력이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점점 공격의 강도는 약해져 갔고, 에너지도 다시 돌아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황과 불안이 도움이 된 면도 있다. 나는 내 아픈 면을 가족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모순적이게도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야기를 잘하면서 정작 가족들에게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설 연휴 날 저녁, 부모님께 내 상태를 고백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나의 힘듦을 부모님께 털어놓는다면 부모님은 내게 적절한 도움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얻었다.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여동생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날도 올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죽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했다. 나의 생명은 지구에서 시작하여 내 부모님을 거쳐 내게 온 것이다. 내 부모님은 내게 지구에서 받은 생명을 다시 나눠주신 분이시다. 내 여동생도 나와 같은 생명의 계보를 지니고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지구에 있다. 결국 모든 생명은 하나이다...... 이런 식이다.
생명을 알게 되자 세상에 대한 시선도 새로워졌다. 이 세상에는 어째서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그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감각을 잃게 하는 것은 분노, 증오, 시기, 질투, 광기, 잔혹, 탐욕,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해하고 공감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여러 가지 깨달음을 겪어보니 지난 상반기 동안 내가 겪은 공황과 불안은 어쩌면 내가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도록 내게 내려진 시련이 아니었나 한다. 그리고 나는 내 나름의 방법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더욱 자란 새로운 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