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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hongmin Dec 29. 2021

내가 옷에 143만 원을 쓸 줄이야

예복 맞추다 뒤통수 맞은 썰

내가 옷에 143만 원을 쓸 줄이야


20대 때부터 내가 입을 옷을 직접 사서 입기 시작하긴 했지만 옷에 돈을 많이 쓰지는 않았다.


패션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그냥 인터넷 쇼핑몰이나 지오다노 같은 SPA 브랜드 매장에 가서 괜찮다 싶은 옷을 골라서 사다 입고 그랬다.


가장 비싸게 주고 샀던 옷이 에잇 세컨즈에서 샀던 10만 원 조금 넘는 코트였나..?


그러다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나고 옷을 입는 게 좀 바뀌기 시작했다.


내 옷이 마땅치 않다며 기념일 때나 아니면 중간중간 괜찮은 옷을 선물해줘서 좀 더 옷을 잘 입게 되었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옷들에 눈을 돌리게 됐는데 그래도 좀 비싸다 싶은 것들은 잘 살 순 없었다.


그러다가 예복을 맞춰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


예복은커녕 옷을 제대로 맞춰 입어본 적도 없었던지라 일단 정보를 찾아봤다.


업체들의 소개 페이지들을 보니 국산 원단으로 하면 70~80만 원 정도가 될 것 같고,

영국이나 이태리 원단으로 하면 90~110만 원 정도는 생각해야 될 것 같았다.


평소에 옷에 돈을 안 써 본 입장에서 처음 마주한 저 백만 원에 달하는 가격들이 좀 후덜덜하긴 했다.


옷에 이 정도 돈을 써도 되나 하는 걱정.


그래서 합리화 회로를 열심히 돌렸다.


일단 저 가격은 양복 한 벌 가격이 아니라 패키지 가격이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양복 한 벌, 셔츠 두 벌, 맞춤 구두 한 켤레, 스튜디오 촬영용 양복 대여 두 벌 등이 포함된 패키지였다.


어차피 셔츠, 구두, 촬영용 옷 대여도 해야 되는 것들이라 이 가격에 해결할 수 있으니 괜찮다는 합리화.


그리고 평소에 정장을 입을 일이 없어서 정장이 딱히 없었는데 이참에 제대로 된 정장 한 벌 마련해 보겠다는 합리화.


이런저런 합리화를 장착한 나는 예복을 맞출 때 이 정도 가격은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웨딩박람회 같은 곳에서 예복 상담(호객)을 받았다.


처음에는 있는 거 없는 거 다 빼줄 것처럼 우릴 데려가시더니 알고 보니 참된 영업사원이셨다.


내가 미리 조사해간 게 있는데 같은 가격에 이것저것 다 뺀 거를 패키지라고 들이미시네.


그래서 알고 있는 정보를 조금씩 흘리고 고민하는 모습을 취하니 조금씩 구성품을 추가해주신다.


정말 할 것 같으니까 더 추가해주는 거야~
이건 정말 안 해주는 건데 오늘 마지막 고객님이니까 더 드리는 거야~

뭐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더해주시면서 계약서를 완성했다.


애초에 정장을 맞춰본 적도 없고 원단도 잘 몰라서 다른 설명들은 잘 이해를 못 했고, 패키지 구성이랑 가격 정도만 집중해서 확인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숨어있던 상술을 발견하지 못했다.


바로 반수제와 수제라는 급 나누기.


애초에 맞춤 전문 비스포크 정장 가게들이고, 저 백만 원정도 되는 가격에 수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건가.(나만 그런 건가)


영업사원의 설명이나 계약서 그 어디에서도 정장 제작 방식이 반수제와 수제로 나뉘고, 견적을 받은 가격은 반수제라는 내용은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전체 수제 맞춤이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예복을 맞추러 방문했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박람회 안내 가격은 반수제란다.


그 와중에 우리가 기분이 나쁜 지점을 잘못 이해하시고 반수제와 수제의 차이점을 아주 상세히 알려주시면서 반수제가 더 안좋아보이게 만드셨다.


계속 우리는 따졌(?)고 나중에 말씀하시길 수제 가격으로 호객을 하면 비싸다고 사람들이 인식해서 방문을 덜 하기 때문에 반수제를 기준으로 호객을 한다고 하셨다.


인터넷 쇼핑몰도 아니고 미끼 가격으로 유인해서 더 비싼 걸 고르게 하다니...


조금 비싼 것도 아니고 33만 원을 더 달라고 해서 말 그대로 어이가 없었다... 기껏 연차까지 내고 찾아갔더니 사기당한 느낌.


애초에 수제에 추가금이 붙은 최종 견적가를 받았다면 가격이 과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곳도 좀 더 비교해보며 더 알맞은 곳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을 텐데,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어서 계약 후 방문할 때까지 두 달간의 시간을 그냥 날려버렸다.


결국에는 비용을 좀 깎아주시기로 하고 우리도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당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결혼 준비는 추가금 파티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뒤통수를 칠 줄이야.


그래도 이제 결제는 끝냈으니 옷은 잘 만들어주시겠지.


처음 예산으로 생각했던 110만 원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옷에 143만 원을 쓸 줄이야.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더니 돈을 많이 쓰게 돼서 그랬던 걸까...


이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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