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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14. 2024

귀향

비움을 배워가며

여러 번, 먼저 세상을 떠난 어른들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비워야지... 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암환자인 친지의 집정리를 도울 때에도 그는  물건에 왜 저리 집착을 하시는가 그 모습이 영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내게 비워야 하는 시간이 오기 전 까지는 그랬다.


시골로 완전히 이사를 했다. 긴 망설임의 시간 끝이었다. 더 규모가 커져버린 농사 탓이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노년의 부부에게 함께 할 시간의 단위가 눈에 보이게 짧음을 깨달은 탓이다. 그래 끼니라도 잘 챙겨주리라.


시골집은 좁았다. 일터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그 공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지만 나의 물건들을 어찌할까?


물건에 대한 보존욕심과 편리함에 대한 욕구를 내려놓기가 이리 어려운 줄...

나는 스스로가 잘 정리하고 산다고 생각했었다. 20년을 산 내 아파트에서는 소유한 물건들이 쓰임새 별로 잘 챙겨져 있어 필요할 때면 금세 찾아낼 수 있었고, 한 물건을 버리기 전이면 이것이 다른 어떤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쓸모가 있으면 그 또한  챙겨 두었다 쓰는 편이었다. 비싼 것보다 오래되고 다정한 손길이 묻은 것들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 적게 소유하고 마음 공간 넓히기가 필요할 듯하여도, 가끔 편리함을 이유로 기기들을 샀으며, 새 버전의 같은 류의 물건 들이기도 했다.

잘 정리되어 있으니 몰랐다. 쓸모가 가져온 짐들의 무게를. 젊은 날은 대부분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가게 된 터라  힘으로 벌어 살림이 느는 일이 즐거웠었다. 물욕이 별로 없는 편이었음에도.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 위하여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던 물건들을 꺼내었다.

이건 무슨 일인가?

남보다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적어서 많지 않다던 짐도 꺼내어 보니 너무나 많았다. 사십 년 가까운 묵은 살림이기도 하거니와 한 집에서 움직이지 않고 산 이십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짐의 무게로 드러났다.

이곳저곳 짐들을 풀어내어 버릴 것들을 추려내는 시간 그 모두에는 살아온 시간의 그림자가 짙게 있는 만큼  망설임의 시간은 길었다. 


비우려면 쓸모를 버려야 한다. 최선을 고르고 만한 것들 일지라도 추려 내었다. 결국 쓸모에 대한 나의 마음을 비워내었다.


책은 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늘 곁에서 나를 지켜주는 친구들인 듯 살았다. 가구며 살림이며 옷은 쉽게 포기가 되었다지만 책을 버리는 일은 꽤 여러 날, 여러 번을 고민하며 솎아내어야 했다.

나의 젊은 날을 함께한 책들, 그 시대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했던 이야기 속의 그들은 항상 젊었고 그 속에 젊은 내가 있었다. 오래된 책들을 버리며 가슴은 저리고 아프고 슬펐다. 그렇게 나는 젊은 시간의 기억들을 보냈다.

그리고는 생기를 잃었다. 긴 시간.


아주 오래전, 인터넷상에서 만났던 아주 젊은 친구들과의 이야기 시간이었다. 주제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였고 당시의 나는 하얀 빈 방에 책상 하나 만을 두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이 뜨악해하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방에서 미니멀하게 살고 싶던 나는 생활인이 되어 사는 동안 세월의 때를 덕지덕지 키워내어 이리도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도 지고 살았다.

비교적 넓은 나만의 공간에서 동안 누려왔던 몇 년간의 평온함은 얼마나 모래 위의 누각 같은 것이었는가... 삶의 때를, 추억을,  씩 덜 어내며 깨닫게 된다.

다른 이들이 소중이 지녔던 물건들과 나의 책들이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내 안의 모자람을 나는  보지 못하였음을. 

먼저 곁에서 떠난 이들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소중한 것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할 때 얼마나 아팠을까. 모두 버리고 가야  순간, 이 짐들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의 나는 얼마나 작고도 작은가.

많은 생각에 내 초라함을 직면하고는 전율을 느꼈다. 좁은 공간을 아이처럼 투정하는 내가 싫다.




더 버릴 것. 비워서 행복해질 것.

자의로, 또는 타의로 우울해하며 줄인 짐들을 시골집 좁은 공간에 다시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아직도 버릴 것이 참으로 많이 남아 있음을 다. 버리고 가벼워진 살림살이로 밥을 짓고 하루를 꾸리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배운다.


훌쩍 버스를 타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책방조차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내 버리지 못한 일정 수준의 생활 수준을 채우고 싶은 욕구로부터 나는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도록 기대를 줄이고 끊임없이 나를 격려해 줄 수 있는 작은 것들에의 행복을 볼 수 있는 눈을 기르게 될 수 있을까.


조금씩 조금씩 하루하루 아늑하게 바뀌어가는 소박한 공간에서 하나씩 일상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쓸모에의 집착을 버리고 노년의 시간, 무쓸모의 자유로움을 얻으리라. 조금은 외롭더라도 오롯이 나로 자유로워지리라. 브런치 어느 작가님의 글로 만나 얻은 책 속의 글이 내게 깊숙이 스미어 들었다.


"나는 내 마지막 몇 달을 철없고 앳된 시절의 감동과 사랑으로 장식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 이해 관계없는 순수한 찬탄을 보내고 싶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 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박완서 ,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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