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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Sep 09. 2023

완행열차 안에서

느림이 있는 시간 속으로







어느새 가을로 가는 길로 접어들고 있나 봅니다. 가기 싫은지 투정하듯 더위가 계속되더니만 오늘은 무서우리만치 세차게 비가 내립니다. 

시골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밖을 내어다 보다가 잠시 졸았던 모양입니다. 기차가 막 낯익은 이름의 동네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발령받은 면소재지의 학교로 가기 위해서 내리곤 했던 곳입니다.


잠시 생각에 듭니다. 등학생 시절,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에 새로 오신 젊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담임이 되신 멋진 선생님은 너희는 지금 우물 안 개구리라며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우리에게 뼈 아픈 충고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처음에는 귓등으로 흘려보내던 말은 자꾸 들으니 슬슬 반감이 생기더군요. 왠지 무시당한 다는 느낌, 서서히 생긴 분을 속으로 삭이며  선생님 말씀을 넘어서겠다며 처음으로 공부에 진심 매진했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씀들이 얼마나 고마웠던지요.

시골 소녀는 그렇게 그곳을 떠나 대학생이 되고, 또 선생님이 되었었지요.


저 또한 앳된 병아리 선생이었습니다. 모르는 것도 많고 열정은 넘치던, 저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었습니다.

직접 등사기(가리방이라고 불렀습니다)를 이용해서 한 장 한 장 학습지를 롤러로 밀어 학습 인쇄물을  만들때였습니다. 판 위에 기름종이를 얹고 철필로 직접 써야 했습니다. 그때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겠지요. 저는 학습지가 끝이 나는 작은 공간에  멋지고 짧은 시, 신부님의 묵상글, 책에서 읽은 좋은 글들을 짧게 적고 작은 그림을 곁들여 주곤 했습니다.

때론 아이들에게 나의 선생님께 들었던 마음 아픈 모진 말도 했습니다. 제 선생님께 들었을 때 저를  분개하게 했던, 공부하게끔 자극이 되었던 바로그 말을... 아이들이 더 큰 세상을 보기를 저 또한 바랐습니다.


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일 년 만에 학교를 떠나던 날 아이들이 가지 말라고 슬퍼하며 찾아왔었습니다. 그중 기억나는 것은 가장 크게 혼이 났던 여학생이었어요. 말썽꾸러기인 데다가 고집 있는 학생이었지만 그림에는 참 소질이 있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 시화전에 제출했던 실을 붙여 그림을 만들고 직접 시를 쓴 판넬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제게 많이 섭섭했을 텐데... 그 아이의 마음에 무언가가 따뜻하게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그 그림을 꽤 오래 지니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꽤 자랄 때까지 말이지요. 오래 살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 때 집을 줄이는 과정에서 그림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교사의 시간을 늘 기억케 하던 물건이었습니다.




시골로 가는 길,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여정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 길에서 기차가 이 작은 동네지날 때 아주 오래전 그때가 생각나더군요.

오늘도 같은 시간대에 이 역을 지납니다. 해가 짧아졌음을 느낍니다. 지난번과 달리 벌써 어스름이 내려앉았군요.

벌써 오십 년을 향해 가다 보니 많은 이름들을 잊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마을, 학교의 모습, 아이들과의 시간들은 조각조각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고3 학생과 당시의 제 나이는 다섯 살 남짓 차이가 났고 시골이라 더 나이가 찬 학생도 있었으니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지요. 사랑의 마음이 때로 호된 꾸중으로 표현되었어서로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느끼고 표현하던 시절이 마음만은 부자인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물질은 더없이 풍부해지지만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의 격차가 더욱더 벌어지고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둘르는 모습들을 여기저기 가까이에서 자주 접하게 됩니다. 돈이 우선이고 많은 것을 경제의 논리로 풀어 나가는 시대에 살다 보니 우린 많은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시외버스를 타지 않는 한 어떤 경로를 택하든지 시골로 가는 마지막 여정은 덜컹거리는 완행열차로 마무리합니다. 이제는 완행열차조차 서지 않는 작은 역들을 지나쳐갑니다. 그럼에도 느린 기차 안에서 덜컹대는 기차의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추억을 소환하는 장치 같습니다. 그 소리에 달게 잠도 자고, 깨어나면 바깥 풍경을 보며 아주 오래전 기억들을 하나둘 깨워봅니다.


기차가 정차한 작은 역에 유모차에 탄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마중 나오신 어른이 있습니다. 기차에서 내린 엄마를 보고 개들이 크게 소리치는듯합니다. 꼬리 치며 반가워하는 녀석들이 안아주는 엄마에게 정신없이 뽀뽀를 하고 있네요. 기뻐하는 소리를 차 안에서 들을 수는 없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차 안의 다른 이들이 웃음 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그 안에서 도시에 살며 늘 긴장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려 애쓰던 저는 어느새 저만치 가버리고 완행열차 안의 저는 이제 곧 도착할 시골 아낙네의 마음을 장착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곧 내려야 할 시간입니다.

느림의 미학. 가끔씩 서서 무료하게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한 듯합니다. 마냥 느린 것은 참아낼 수 없겠지만 서서히 느림에 물들어갑니다.

아마 젊은이가 아니라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낡고 느리고 그래서 편안할 때도 있는,

이제 제 삶도 완행열차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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