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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른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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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Sep 07. 2019

그의 영화를 보지 않는다

싫어하면서 좋아합니다

중3 때의 일이다. <집에 가는 길>이라는 SBS의 단막 드라마를 보고 2주를 울었다. 부모님을 여의고 일찍 철이 든 중학생과 그의 어린 동생의 이야기였다. 세상의 무관심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씩씩한 주인공은 감기라고 생각했던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동생의 위험을 알아채지 못한 어린아이에 불과한 주인공이 안쓰러웠다. 약자를 돌보는 제도의 미흡함에 화가 났고 원망스럽고 무엇보다 속상해서 몇 주를 틈만 나면 울었다.

웹툰 <신과 함께>의 이승 편을 봤을 때도 비슷했다.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뒤늦게 저승 편부터 정주행하고 자연스럽게 이승 편으로 넘어갔는데 집안을 관장하는 귀신들과 조손가정의 어린아이가 나왔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한 집안의 귀신들의 활약에도 불구 결국 할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돌보아줄 사람 없이 혼자 남은 어린아이가 가여워 며칠을 울었다. 슬픔을 직감했을 때 멈출 수 있었다면 좋았을 만큼 우울함이 오래갔다.

결정적으로 어린아이가 불행해지는 이야기에 약하다는 걸 깨달은 건 시놉시스만으로도 마음이 힘들어서 보기를 그만둔 영화 때문이었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다. 이미 한참 전에 개봉한 작품인데도 자꾸 언급이 되길래 검색을 했고, 영화의 소스가 된 실화까지 자세히 정리된 시놉시스를 읽고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몇 년 뒤 페이스북 영화 페이지에서 캡처된 같은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주요 장면을 보고도 마음이 이상해졌다. 여운도 오래갔다. 어떻게 이토록 진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릴 수 있는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섬세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만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피하는 마음을 강화시켰다. 영화나 볼까 하고 가까운 시간에 있는 영화를 고른 참이었다. 아트하우스 영화 중에 예매 순위가 높았고 평점도 괜찮은 걸 골랐는데 그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였다. 줄거리를 찾아보니 형이 죽고 조카의 후견인으로 고향에 돌아간 남자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리고...(약간의 스포가 시작됩니다.) 영화 중반부터 우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었다. 주인공은 불의의 사고로 세 자녀를 잃고 이혼하고 그 사건을 모두 아는 고향을 견딜 수 없어 도시로 떠난다. 몇 년 뒤 형의 죽음으로 어린 조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억지로 덮어 두었던 과거의 불행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자초한 불행이라는 자책, 끝없는 자기혐오, 사는 내내 자신을 벌 주기로 한 것 같은 그의 태도, 무기력함. 그러나 그보다 훨씬 큰 그리움. 나는 주인공의 감정에 끌려 다니며 상영 시간 내내 마음이 무너졌다. 가방에 티슈 한 장이 없어서 소매 끝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며 ‘보지 말걸 그랬어. 잘못 골랐어. 다시는 이런 내용 안 볼 거야.’를 속으로 외쳤다. 영화의 흡입력은 대단했고 결국 얼마 동안 이야기의 여운으로 힘들었다.

이후로 아이가 불행한 이야기 특히 가족의 붕괴에서 비롯된 아이의 불행과 아이의 불행에서 비롯된 가족의 붕괴가 들어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이입이 되어 빠져 버리는 이야기였고 그 정점에 히로카즈 감독이 있었다. 나를 저 아래까지 끌고 내려가 오래도록 슬픔과 원망 죄책감에 잠기게 만드는 그의 영화.

그렇지 않아도 마음 쓸 일이 많은데 영화 볼 때만큼은 좀 느긋하고 좀 편하고 싶다는 핑계를 대면서 “저 그분 영화 안 봅니다.”를 선언했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떻게 피해 간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불행한 이야기는 너무 불쑥 자주 튀어나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포털 뉴스에 단골 코너처럼 등장하니까. 내 마음이 힘들다고 귀를 막기엔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을 던져준 어른 중 하나가 나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작가와 감독은 그런 마음, 그러니까 놀란 마음, 미안한 마음, 아이들의 불행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어서 괴로운 마음, 사죄하는 마음으로 펜과 카메라를 들었을까?

어쩌면 나는 잠깐 보기만 해도 힘든 이야기를 오랜 시간을 걸려 생각하고 곱씹고 세상에 내놓는 히로카즈 감독 같은 사람이 부러운가 보다. 괴로운 시간을 꿋꿋이 버텨 그걸 보는 사람마저 괴롭게 만들 수 있는 작가, 세상을 외면하지도 불행을 피하지도 않는 그런 작가 나는 못하겠지 하고 생각했나 보다.

결국 그의 영화를 보지 않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보기도 전에 너무 내 취향이라서 나를 붙잡고 몇 날 며칠이고 놓아주지 않는 이야기라서다. 보기 싫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내 마음을 후벼 파고 지나간 이야기들만 기억에 남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나만 당할 수 없어 소개하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표지에 속았거나 정보가 없었거나 그래서 차마 피하지 못했던 그러니까 내가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이야기.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 아무도 모른다
케네스 로너건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션 베이커 - 플로리다 프로젝트

<소설>
김영하 - 두 사람이다
김애란 - 두근두근 내 인생
할레드 호세이니 - 연을 쫓는 아이

<웹툰>
신과 함께 2


<드라마>

집에 가는 길


#계간손혜진 #어른의일 #취향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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