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right here part2
아이돌이나 노래에 관심이 생기면 뮤직비디오 무대 보다는 안무 영상을 찾아보는 편이다. 동작은 물론 동선과 대형까지 보려면 무대보다는 안무 영상이 좋다. 잘 빠진 음악에 맞춰 오래 고민하고 연습한 춤을 한 호흡으로 보고 있자면 뭔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나와 같은 사람인데 그들의 몸은 저만큼이나 섬세한 동시에 파워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아름답다. 현란한 스킬을 보며 거기에 쏟은 그들의 시간을 생각한다. 소위 춤선이라 불리는 춤의 ‘태’를 위해 식단 조절과 운동까지 합쳐진 노력을 보고 있자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동경의 마음이 일어난다. (춤을 추고 싶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싶다는 의미다) 그래서 김연아 선수의 올림픽 프로그램을 반복해 보듯 BTS와 여자친구와 트와이스의 안무 영상을 보곤 했다.
3)유튜브의 알고리즘 일지
2021년 6월 말
어디선가 세븐틴의 컴백 소식을 접하고 의무처럼 안무 영상을 찾아봤다. 안무 구성이나 동선이나 스토리 면에서 다인원 그룹의 장점을 십분 살렸다는 인상을 받았다. 군무와 동선을 볼 수 있는 직캠을 몇 개 더 찾아보았다.
몇 주 뒤, 7월 19일
불현듯 ‘아 세븐틴 안무 멋있었는데 한 번 더 찾아볼까?’하고 안무 영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7월 21일
추천 영상에 세븐틴의 줌 화면 썸네일이 떴다. 팬데믹 이후로 재택근무를 오래 해오고 있던 터라 ‘어머 요즘 아이돌들은 재택 콘셉트 콘텐츠도 하나봐?’ 하는 친근함+호기심으로 클릭을 했다. 재택 콘셉트가 아니라 진짜 재택이었다. 컴백 2일 만에 확진자 접촉으로 2주간 자가격리를 당한 것이었다. 당사자도 아니고 팬도 아닌데 마음이 조금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돌 앨범 활동 기간이 길어야 3주인데 그중에 2주를 날렸으니 이번 앨범은 어떻게 된 걸까? 그 와중에 이렇게라도 활동하겠다고 13명이 각각 다른 공간에 갇혀 줌으로 자체 예능 콘텐츠를 만들었구나.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아니 저러니 정글 같은 아이돌판에서 이제껏 살아남았나?’
그들의 생존력과 생활력에 감탄하며 자가격리 예능 세 편을 내리 봤다. 큰 재미는 없었다. 그 영상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자가격리가 해제된 뒤라서 이후 출연한 음악방송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몇 개 더 찾아봤다. 그런데 멤버가 많은데도 누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리더인 에스쿱스가 부상으로 참여를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다시 마음이 짠해졌다.
7월 22일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의 피드에 세븐틴 영상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세븐틴 데뷔 초부터 무대를 모아놓은 영상을 봤다. “아주 나이스”이후부터 “Reft&Right” 전까지 4년 여의 세븐틴 노래 중에 아는 게 거의 없었다.
7월 23일
인스타그램에서 우지가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를 리코더로 부는 짤은 봤다. 유튜브 추천 영상 썸네일에 세븐틴 멤버가 리코더 부는 모습이 나오기에 그건가 봐! 하고 눌렀다. 룰렛 인생 2편이었고, 그렇다면 1편이 있다는 이야기네 하고 1편부터 차례로 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잉 세븐틴이라는 세븐틴 자체 예능이었지만 이때까지는 인지가 없었다) 짤로 만났던 조슈아의 ‘줄리엔 강’ 출처도 이 영상이라는 걸 알았다.
7월 24일
멤버 정한과 나머지 12명의 멤버가 심리게임을 하는 고잉 세븐틴 100만 원을 봤다. 잘은 모르지만 정한이라는 멤버가 새침하고 차가운 겉모습과는 다르게 뻔뻔한 사기꾼 개그 캐릭터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런 캐릭터를 녹인 콘텐츠였다. 이어 정한이 대표이사 캐릭터로 나오는 고잉 컴퍼니 콩트를 봤다. ‘아… 원래 자체 예능 콘텐츠에 열심인 친구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영상 아래 댓글에 자꾸 TTT가 레전드니 돈라이가 레전드니 하는 팬들의 코멘트가 보였다. 세븐틴이 엠티를 가서 먹고, 놀고, 마시는 TTT를 몰아봤더니 콘텐츠 내 멤버들의 캐릭터와 이들 사이의 관계성을 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자체 예능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2019년 초부터 정주행을 해보자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말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건 아이돌 콘텐츠, 아니 예능 콘텐츠의 새 바람이었다. 13명의 상큼한 아이돌이 무한도전처럼 나를 웃겨 주다니. 뭐 이런 이런 애들이 다 있지? 세븐틴과 나,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거웠다.
자 여기 나의 입덕 경로를 재생목록으로 만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올 줄 알았던 이런 일이 나에게도
‘아, 이거 큰일이네.’
월요일에 출근을 했는데 문득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생이 위협받는다는 것이 이거였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던 아이돌에 미친다는 흔한 얘기. 이해 못했다가 한순간에 이해가 돼버렸다. 이건 사고. 그래, 사고였다.
그동안 덕질하는 사람들은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이었단 말인가. 7월 말 나는 세븐틴과 관계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이런 뜨겁고도 진실된 마음을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행동들을 왜 덕‘질’이라고 낮잡아 부르는 건지 조금 화가 났다. ‘대체 먹지도 못하는 거, 내가 만질 수도 없고, 나를 알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왜 자원을 쏟아붓지?’ 하며 이해 못했던 지난 시절이 후회스러웠다. 모자란 내게 그런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큰절로 사과하고 싶을 정도였다.
19년부터 시작해 20년 21년 현재까지의 고잉 세븐틴을 모두 보고(어떤 것은 여러 번 봤다) 역대 컴백 무대와 시상식 무대를 보고, 멤버별 직캠을 보고(세븐틴 멤버는 13명이기 때문에 멤버별 직캠만 봐도 30분이 훌쩍 넘어간다) 그간 출연해 온 예능 클립을 보고, 무대/녹음/뮤비 비하인드를 보고, 각종 인터뷰들과 팬들이 재편집한 영상을 봤다. 알람을 맞춰두고 세븐틴 인 더 숲을 보고, 컴백을 손꼽아 기다렸다. 컴백일인 10월 22일을 타깃으로 하나씩 던져지는 떡밥에 울고 웃었다. 트위터에 세븐틴 전용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이브의 주식을 샀다.
조금 과장하여 나는 다시 태어났다.
세븐틴 이전에는 내게는 결코 없었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이제 겨우 내가 어떤 경로로 세븐틴에 빠졌는지를 이야기했다. 이건 내게 주어진 우연이었다. 어쩌다 그랬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아니었다면, 평소 안무 영상을 즐겨보지 않았다면, 앞서 문명 특급에서 세븐틴 멤버들을 본 적이 없었다면, 재택근무가 친근하지 않았다면, 유튜브 놈들이 알고리즘을 성기게 짰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 우연은 세븐틴만큼이나 성실했다.
세븐틴이 왜 좋은지 어디가 좋은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내 사랑을 듣는 사람이 납득해야지만 믿어주겠다는 것 같아서. 나는 세븐틴이 그냥 좋다. 단점까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내 단점도 싫은데 이 친구들 단점까지 어떻게 좋아하나) 단점을 보며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다. 게다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세븐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마냥 좋기만 한 지점을 지나 불편한 데까지 왔다. 세븐틴을 사랑하게 된 나머지 그들을 둘러싼 산업과 팬 문화까지 생각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할 말이 여전히 많아서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었다. 세븐틴을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서 (이건 사실 핑계지만) 글을 자주 쓰지는 못하지만 세븐틴에 대한 나의 마음, 우리의 시간, 그들의 음악, 성장, 내게 주는 영향, 엔터산업에 대한 내 생각까지 더 얘기하고 싶어졌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은 세븐틴의 Power of Love 콘서트가 막 끝난 밤이다. 콘서트를 보면서 실제로 너무 보고 싶어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만나 본 적도 없는 세븐틴이 너무 그리워서 글을 쓴다. 봤던 유튜브 그만 보고 이젠 정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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