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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Feb 19. 2024

책방 해보실래요?

카페에 팝업 책방 만들기

책방 해보실래요? 근데.. 혹시 이름이 뭐예요?


카페 안쪽 오피스로 쓰이던 빈 공간으로 돌아 들어가 책장이 놓인 모습을 상상하며, 우린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다. 시작은 카페 계정에 올라온 책 사진이었다. 책을 편하게 읽다 가시라며 올린 책 사진들. 아직은 조금밖에 없다는 그 포스팅에서 가능성을 봤다. WE EAT BOOK 이 무언가 함께 해볼 수 있는 공간이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월에 한 번 책에 대한 큐레이션을 연재하고 있으니, 우리가 가진 책을 그곳에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서 전시하는 것을 제안했다. 내가 얻는 건.. 수익적인 건 없다. 그저 WE EAT BOOK의 가능성 테스트. 그리고 재미. 그리고 언젠가 하게 될 팝업과 전시와 책방의 연습.


사실 시작은 노니님의 '좋아하는 서점'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상주에서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이 빈 공간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는 내용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가 났던 것 같다. 앞으로의 공간 비즈니스는 무조건 '콘텐츠와 커뮤니티에 대한 니즈가 있을 것'이고, 이것만큼은 내가 잘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제안이 분명 매력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점심시간에 언니에게 말했다. 

"동네 카페에 말해보려고. 우리 추천한 거 한 달에 한 번씩 입점시키겠다고. 그리고 입점처를 늘리는 거야. 카페/스테이에 B2B로 확장해서 입점시키고 싶어."


나의 관점으로 큐레이션 한 책 패키지를. 한두 권씩 구매할 수 있게 할 수도 있겠다. '서점'이라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말하자면 '팝업 서점'이 되고 싶었다. 나와 결이 잘 맞는 공간에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덧대어주는 작업.


그날 저녁, DM을 보냈다. "저 we eat book club이라는 걸 운영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올리신 사진을 봤어요. 한 달에 한 번 가볍게 한 두 권 정도 책을 전달드리고 싶은데 어떠신지".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다음날 답장 오겠지 싶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너무 좋다고. 사장님도 책방을 하고 싶으셨는데, 여러 가지 바쁜 프로젝트들로 시작을 못했다고 하셨다. 시간 될 때 한 번 놀러 와서 얘기해 보자고.


사실 카페의 영업시간이 11시-5시라서 직장인인 나는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영업시간이었다. 늘 출근할 때, 퇴근할 때 곁눈질로 불이 켜진 블라인드 안을 응원할 뿐. 다음날은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이어서 바로 찾아갔다. 평일 오후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빈 속이어 뜨끈한 커피와 함께 아몬드 크로와상을 시켰다. 사장님이 곧장 알아보시곤, "아내가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식사 전이라는 말에 미니 양배추와 닭가슴살을 볶아낸 음식까지 건네주셨다.



큰 테이블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궁금했던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와다다 풀어놓았다. 우리의 대화는 정말 '와다다'였다. 서로 어떤 히스토리를 가지고 이곳에서 우리가 만나게 된 건지, 어떤 사람들인지.


부부가 운영하는 이 카페는 많은 경험이 융합된 공간이었다. 건축을 전공한 남편분은 카페와 샐러드가게 창업, 그 과정에서 인력 리소스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아쉬웠던 점을 해결하기 위해 생활코딩에서 개발을 배우곤 개발자를 꾸려 여러 가지 IT 프로덕트도 개발하고 계셨고, 결혼 이후에는 건축사무소를 차린 아내분과 함께 이곳에 터를 잡아 카페 운영과 인테리어를 도맡아 하고 계셨다. 아내분은 건축 전공을 하신 후,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후 건축 설계소에서 일하시다가 지금의 독립을 하게 되신 거라 했다. 서초구에 작업하러 오셨다가 공실이 있는 공간을 보고 당일 바로 계약하셨다고. 나도 청계산에 왔다가 이 동네가 맘에 들어 점심시간에 바로 계약했는데 말이다. 우리 모두 한 눈에 이 동네에 반한게 틀림없다. 


이곳이 단순히 카페가 아닌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서 큰 테이블을 중간에 두셨다고 하셨다. ‘친구들이 자주 놀러오는 부엌같은 개념’ 오피스로 쓰던 공간을 활용해 책을 읽고, 책을 파는 공간으로 쓰면 좋겠다 싶은데 큰 건축 프로젝트로 손이 안 남는다고 하셨다. 그 공간을 내가 써주면 좋을 것 같다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큰 허먼밀러 테이블 하나, 그리고 여러 짐들이 놓여있지만 책장이 짜이면 어엿한 공간이 나올 것 같았다. 책 한 두권 놓을 작은 공간 하나만 쓰려했다가 갑자기 '책방 하실래요?'라는 말을 들은 나는 이미 꿈에 마음이 부풀어 하늘로 날아갔다. 마음이 쿵쾅대고, 설레는 마음에 진정되지 않았다.


공간, 카페, 책방, 출판산업, 관심사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하다가 사장님들은 절판된 책, 북커버가 예쁜 책을 모으는 걸 좋아하신다며 안쪽에서 설레는 모습으로 책을 한 두권 들고 나오셨다. 북커버가 중요한데, 대형 출판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획일화된 디자인만 할 수 있으니 우리가 '북커버 리디자인을 해주는 출판사'를 차리자는 얘기까지 오고 갔다. 요즘의 책은 패션 아이템을 넘어 홈 스타일링 오브제로도 쓰이는 것이 아니냐며. 아니 우리 이제 두 번 만난 손님과 사장님 사이 맞는지..



모든 건 '매력'과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 공간에는 콘텐츠와 커뮤니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생각하면 바로 실행하는 속도가 비슷했기 때문에 정말 순식간에 삶의 경험들과 생각을 나누었다.


앞으로 자주 들르라고,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해 달라고 하셨다. 유휴 시간에 워크숍을 열든, 북토크를 열든, 모임을 열든 사용해 보라고. 공간이 필요한 사람과 콘텐츠/커뮤니티가 필요한 사람의 니즈가 맞았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이게 DM 한 통으로 시작된 연결이라는 점.


어쩐지 이곳의 공사 현장부터 정이 간 이유가 있었던 것 같고, 노니님의 책을 읽는 시기에 책 사진이 올라온 것도, 내가 DM을 보낸 것도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와선 남편에게 '나 책방을 하게 되었어'라고 했더니 또 산책 나가서 사고 치고 돌아온 강아지를 보듯이 절레절레하였다. 얘가 또 이번엔 무슨 사고를 치고, 무슨 상처를 받고 돌아올까 싶어서 걱정하는 얼굴. '나도 내가 뭘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말했잖아. 나 책방 할 운명 같다고. '


그렇지만 나도 곰곰이 앉아서 생각해 보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도매처를 찾는 법과 재고관리, 사업자 등록. 책방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 많은데 내가 쏟을 수 있는 리소스는 굉장히 아주 굉장히 제한적이다. 처음에 생각한 정도까지는 한 달에 한 번 책 가져다주면 신경 쓸 것 없이 끝나는 일이었지만, '책방 운영'은 책 주문, 재고관리, 정산 등등 뭐 할 게 그냥 1초만 생각해도 엄청나다. 그래서 내가 찾아야 하는 방법은


1. 내 리소스로 운영할 수 있는 일인가. (현황파악/깜냥파악)

2. 재고관리, 리소스부담 없이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공간 운영 방향 아이디어 디벨롭)


남편은 걱정이 많았다. 

처음 본 사람들 아니냐며,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겠냐며. 나도 걱정은 되지만, 해보고 싶은 걸 어떡하나.


일단 현황파악.

서점은 배본사, 총판, 온라인서점(도매)을 통해 책을 65-75% 공급률에 구매할 수 있고 위탁판매나 선매입 방식으로 구매할 수 있다. 위탁판매로 하게 되면 재고부담은 덜어낼 수 있지만 신뢰가 있는 공급처에만 해준다고 한다. 나는 돈이 급하진 않고, 현금흐름이 빨리 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 이 방법이 나을 것 같았다. 마진율이 적더라도 공간에 드는 비용이 없으니 그 부분도 괜찮고. 생각보다 도매 구매의 방식은 어렵지 않았다. 마침 주변에 정말 때마침.. 책방을 준비하는 친구 2명이 있어서 함께 우당탕탕 길을 걷게 되었다.


245 00$a 열린 도서관 :$b예비사서와 초보사서를 위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https://blog.naver.com/naesim/222936448444


배본사 : 서점의 주문이 있을 때 책을 배송해 주는 곳

날개, 북플러스, 문화유통북스, 한국도서유통, 행복한 수레, 해피데이, 코업로지스


총판 : 출판사와 계약해서 유통해 주는 곳

웅진북센, 인터파크송인서적, 한국출판협동조합

출판사로부터 정가의 55-65% 매입 > 서점에 65~75%로 공급 (공급률은 출판사마다 다름)


온라인 서점(도매로 가입) : 북센, 알라딘, 문학동네

https://blog.naver.com/naesim/222936448444

https://b2b.booxen.com/


깜냥 파악.

재고 부담이 없다 해도 '수익화가 되는 공간'이라면 에너지가 엄청나게 쓰일 것... 공간을 매력적으로 꾸리는 것은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쌓인 나만의 관점과 큐레이션 능력. 나의 데이터베이스로 주제별 큐레이션을 한다면 월에 10권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큐레이션 노트를 적어서 배치하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규모가 어느 정도 넘어가면 인풋의 한계가 있겠지만, 꾸준히 채워나가는 과정이 함께되며 플라이휠이 잘 돌아갈 것 같아서 그 부분은 괜찮을 것 같다. 월 10권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큐레이션 능력. 걱정은 유일하게 나의 '에너지와 체력'이다.


운영 방향성. 

-we eat book 온오프라인 서점을 같이 운영해 볼까. 온라인에서도 같은 큐레이션으로 판매한다면? 대신 우리 서점에서 구매할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구매와 동시에 커뮤니티 가입이 되는 구독의 개념'. 한 번 커뮤니티에 들어오면 나의 뉴스레터가 발행된다. 문장 큐레이션 구독서비스. 오프라인 구매자는 일주일에 한 번 취합받아서 추가하는 수동방식이 되려나.


-아니면 대여방식. 넷플릭스가 대여서비스로 시작했던 것처럼 1) 현장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고 2) 대여하고 싶으면 일정금액을 내고 빌려가는 시스템. 반납을 위해 다시 공간을 찾아야 한다. 리스크 : 연체와 분실


-일반적인 서점. 이건 진짜 위탁판매가 안되면 쉽지 않겠는걸.

-


오늘 아침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노니님의 책을 읽으며 안 그래도 부푼 마음에 부스터를 달았다.


책에 나온 문장 수집들 

-어떻게든 되게 하려는 마음을 응원했다. 좋아하는 일이 계속 되게끔한 시도들은. 그조차도 어쩌면 퍽 행복한 일이라는 걸.

-책방 주인 너무 잘한 일이었다. 책방을 또렷하게 살피면 그동안 얼마를 벌었는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기 어렵지만 애초에 제가 계획했던 모습이 무사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라서요.

<월간 채널예스> 커버스토리 요조 인터뷰 2023년 3월호

-그런데 감정과는 별개로 책 읽는 것이 너무 행복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서점 주인이라고 늘 책이 재밌기만 할까. 안 읽혀서 쩔쩔맬 때도 있는데 요즘은 책 읽는 시간이 행복하다. 서점 출근 전 아침 일찍 카페에 가서 책을 읽다가 한 번씩 부르르 떤다. 그때 내 마음의 소리는 '이게 일이라니 행복해 죽겠네'

-나의 큐레이션에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조금 더 매력적인 취향을 갖기 위해서는 시간도 쌓여야 한다. 소개 글을 잘 쓰는 능력도, 좋은 책을 찾는 눈도 필요하다. 지난주 받은 메일의 답장 중 나처럼 혼자 일하는 분이 아침마다 자기 자신과의 회의를 한다는 걸 보고 이번주부터 나도 아침 회의를 시작했다.

-서점도 글 쓰는 일도 내게 무척 중요한 것인데, 자꾸 서점 뒤에 숨는 '쓰는 사람 정체성'을 앞으로 드러내 주곳 싶었다.

-지나가다 들어가면 언제라도 반가운 누군가가 있는 곳, 누구라도 환대받을 수 있는 곳이 되면 좋지 않을까. 이제 내가 잘 못하는 것에도 조금씩 노력해 보고 싶은 기특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들썩이는 마음을 들여다보니 나도 모르게 '신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신 점점 더 구체적으로 '되고 싶은 서점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내게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놓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그러면 일상의 다른 구석구석 채워야 할 것들을 지장 없이 해낼 수 있을 테니까.

-시간이 있으면 해야 할 것이 보인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조금 더 일상을 디테일하게 만드는 것들을 이 시간을 통해 사부작사부작 다듬을 수 있다. 급한 마음을 품고는 도통 깊어질 수는 없는 거니까.

-누군가는 효율과 우선순위를 따지지 않고 살아도 체력이 충분하다는 걸 몰랐다는 말이. 마치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물건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니 뭐든 시도가 어렵지 않았던 거였다. '해보고 아님 말고'는 특별히 용감한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사람이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노션에 'we eat book shop' 페이지가 하나 생겼다. 그곳에는 구체적으로 나의 인덱스와 책장의 큐레이션 방식, 하고 싶은 모습까지 디테일하게 '되고 싶은 서점의 모습'이 기록되고 있다. '신난다.' 그리고 '해보고 아님 말고'를 위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활자 속에서 부스럭거리며, 사부작거리는 사람이고 싶다.



궁금하다. 나는 정말 책방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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