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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유리 Jan 04. 2024

영포자, 미국 이민자가 되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영포자 미국 정착기'

얼마 전 한국의 친구와 안부 연락을 주고받다가,

"너처럼 영어를 싫어해야 오히려 미국에서 살게 되는 건가?"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내 업보지 뭐..." 

그렇다. 나는 한국에서 영어 포기한 사람, 영포자였다.


요즘은 영유니 뭐니 어릴 적부터 영어 교육이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영어를 배웠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첫 수업, 선생님은 무작위로 번호를 불러 간단한 영어 단어를 칠판에 써보게 했다. A, B, C, D 도 제대로 몰랐던 나는 지지리 운이 없게도 제일 먼저 호명되었고 내가 써야 할 단어는 숫자 five였다. 당연히 정확한 스펠링은 몰랐고 소리 나는 대로 대충 써볼까도 했지만 결국 시도도 못해보고 한동안 칠판 앞에 서있다 들어왔다. 그 후 호명된 대부분의 아이들은 곧잘 단어를 써내려 갔다. 아마도 그 정도의 선행학습은 미리 다 하고 오는 모양이다. 어쨌든 그전에는 영어가 뭔지도 몰랐기에 싫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영어가 죽도록 싫어졌다.


그렇게 나의 영어 회피 여정은 시작되었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대학입시에서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다른 과목에 비해 공부한 만큼 성적도 오르지 않고 무엇보다 그냥 싫었다. 어린 날의 수치심은 꽤 오래갔다. 어릴 적부터 잔꾀가 많았던 나는 정면돌파보다 우회를 택했다. 목표 대학들의 입시요강을 샅샅이 뒤져보니 '예체능은 수학 안 해도 돼'라 말하는 숱한 미술학원 광고들과는 다르게 많은 대학에서 수학이 선택과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내가 미대를 준비하면서도 수학책을 가장 오래 펴고 있던 이유다. 다행히 내 입시전략은 통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나? 그 무렵 나는 전공에 영 흥미가 없었다. 아마도 늦게 진로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던 같은 과 언니가 "너도 나처럼 타과 전공을 들어보고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라고 했다. '오, 맞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그렇게 몇몇 타 전공과목을 듣기 시작했고 다행히 경제 수업에 흥미를 느꼈다. 복수전공 아니 부전공이라도 해보자는 심산으로 경제학과의 커리큘럼을 찾아보는데 이런, 전공기초 과목만 넘어가면 거의 모든 수업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창피해서 말은 못 했지만 복수전공을 시도조차 안 해보고 포기해 버린 이유 중 하나, 아니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또 영어였다. 


학교 수업이 재미없던 나는 공모전, 인턴 등 닥치는 대로 지원하며 교외 활동에 집착했다. 그러던 중 기적 같은 행운으로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면접운이 굉장히 좋았다. 한국어 인터뷰에서 나를 좋게 보았던 인사 담당자가 나의 허접한 영어 실력은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독이든 성배와도 같았다. 인턴 근무는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업무는 우리말로 진행되지만 각종 문서, 본사와의 이메일은 영어로 쓰였고, 무엇보다 고역인 것은 홍콩, 유럽, 미국에서 걸려오는 전화였다. 다행히 인턴에게 다른 자리 전화를 당겨 받는 것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옆자리에서 세 번 이상 전화벨이 울리면 식은땀이 났다.


여담이지만 그 무렵 대학에서는 전공 여하 불문 전면적 영어강의 전환이 일종의 트렌드였고 영어 잘하는 사람은 입시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같이 마케팅 인턴을 하던 친구 중 하나는 특이하게도 카이스트에서 공학을 전공하는 이과생이었다. 그 친구가 말하길 자기는 남들이 카이스트생 하면 의례 생각하는 것처럼 수학, 과학을 잘하지는 않는다고, 영어 특기자 같은 것으로 입학한 것이라고 했다. 영어, 영어, 영어. 대한민국에서 영어란 무엇일까?


아무튼 그 후론 외국계 기업은 처다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 미국에서 살고 있냐고?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지. 모임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같이 유학을 떠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요즘에 미국이라고 무조건 좋다고 쫓아갈 여자가 어디 있나요?"라고 막말을 했단다. 그 정신 나간 여자가 여기 있다. 진정한 업보다. 몇 년을 그냥 알고 지내다가 좋은 감정이 생기고 그렇게 미국에 넘아와서 같이 이민 1세대가 되려 하고 있다.


여기서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이라면 피나는 노력 끝에 영어를 극복하고 대표 영어 강사가 되었다거나, 미국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거나 해야 하지만 영어는 아직까지 나에게 어렵고, 여전히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아마도 평생의 숙제가 될지 모르겠다. 


이상 자기 고백을 시작으로 영포자의 고군분투, 좌충우돌 미국 정착기를 조금씩 공유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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