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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Sep 30. 2023

#1. 가난한 여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혜마저 인정해 버리면 그는 정말 나쁜 놈으로 낙인찍혀 외톨이가 되어버릴까 봐 그녀는 숨을 죽인 채 살았다. 게다가 남편을 헐뜯는 건 제 얼굴에 침 뱉기니까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지혜는 결혼한 지 3년 차 되는 새댁으로 아직 아이가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이를 원치 않았다. 결혼의 목적이 아이는 아니었기에 별다른 트러블은 없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조금 허전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싶을 때면, 딩크족으로도 즐겁게 잘 사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며 위안을 삼았다. 대부분 잘 사는 사람들은 아이가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없는 삶을 비웃기나 하듯이, 그게 마치 정상인들의 삶인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모든 것을 가질 순 없었다. 그녀는 결혼을 한 것만으로도 안정된 삶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혜의 집은 가난했다. 그녀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그래도 어머니는 여장부 같은 스타일로 뭐든 선두에 서서 이끌어 갔다. 시원시원한 추진력에 한 때는 돈도 많이 벌었지만, 잘못된 투자로 가세가 기울었다. 그때부터는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세상이 두렵고 생각부터 소심해졌다. 가난의 초라함은 머릿속까지 갉아먹어 그녀를 더 위축되게 했다. 타지생활을 하던 지혜도 모아놓은 돈이 얼마 없었다. 그녀의 직업은 상업적인 글을 쓰는 작가로 남들 보기에는 번듯한 직업이었지만, 금전적 보상은 얼마 없는 명예직이었다. 일중독자처럼 일을 해도 어쩐 일인지 통장 잔고는 늘 그대로였다. 월세에 생활비에 일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로 사고 싶었던 물건을 한 두 개 사고 나면 늘 빠듯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한 해 두 해 늙어가는데, 이대로 살다가는 독거노인이 되어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점점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다. 가장 위험한 생각에 빠져있을 시기였다. 좋은 남자를 찾아 헤매면서 신데렐라를 데리고 가 줄 왕자님을 꿈꿨다. 친절하고, 매너 있고, 때론 세심하게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거기에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남자라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요즘 사내들답지 않게 여자에게 돈을 쓰게 하지 않았다. 뭐든 본인이 내고, 좋은 것을 보면 지혜에게 선물했다. 그녀는 드디어 비빌 수 있는 언덕을 찾았구나 싶었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이었다. 어리숙한 아가씨는 한겨울을 찬물을 얻어맞은 듯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퍼줄 것 같았던 남자는 세상 치졸한 좀생이가 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본전 생각이 난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품어 줄 순 없단 이야기다. 본인이 해 준만큼 그녀에게도 똑같이 되돌아오기를 바랐다. 사랑조차 값을 매기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에 모든 부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경제적으로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는다. 가난은 죄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의 호의를 받는 것 또한 죄다. 평온한 삶을 위해서는 비교적 비슷하게 주고받는 인간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절대 그냥 받으려고 하지 마라,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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