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만 확인하는 사이
아마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일 듯한 B는 말싸움으로 한 번도 나를 이겨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B의 다정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B를 생각하면 늘 내가 받기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어미새처럼 B는 항상 날 챙겨주곤 했다. 그만 자라. 밥 먹고 자라. 숙제하고 자라. 대부분 그만 자라고 했던 것들이지만 3년이면 지칠 만도 한데 B는 지치지 않았다.
눈이 나빴던 B의 안경알은 엄청 두꺼웠는데 알고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갈 때쯤에야 B의 안경 벗은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B가 눈이 굉장히 큰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항상 그 안경 좀 벗으라고 했지만 지금은 아주 조금은 그때의 B의 모습이 그리운 느낌이 든다.
이제 B는 너무 바빠서 우리는 겨우 서로의 생사만 확인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사이엔 끊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3년간 B가 나를 포기하지 않은 보답으로 나는 끈질기게 300년 정도 B의 생사를 확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