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여보가 되었어도
학창 시절의 여학생들은 친구들에게 이상한 호칭을 붙이곤 한다. 엄마라든지 형이라든지(?) 가족놀이는 기본이고, 이 호칭들의 정점이 있는데 바로 자기 혹은 여보. 나에게도 고등학교 시절에 여보가 있었다. 대체 왜 C가 나의 여보가 되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아직도 우리는 가끔 서로를 여보라고 부른다. 비록 C는 이제 다른 이의 여보가 되었지만.
C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C가 아니라 C의 부모님이다. 약간은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C의 아버님의 달달함.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다정함을 지닌 아버님은 우리들에게도 참 다정하게 잘해주셨다. 나는 아직도 가끔 C에게 부모님의 안부를 묻곤 한다.
C는 부모님의 그 다정함을 물려받았다. 아마 그래서 내가 C를 여보로 점찍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같은 반이 아닐 때도 복도에서 마주치기만 하면 여보 하고 달려가 안겼던 그 시절. 키도 나보다 한 뼘이나 컸던 C의 따뜻한 품과 다정한 말투.
그 외에도 C와는 참 잘 통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우리 둘 다 징그럽게도 공부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3이 되고 나서 도저히 이렇게는 안될 것 같았는지 같이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조용한 곳에서 집중하며 만화책 읽고, 자유롭게 컵라면을 먹는 장소로 이용했을 뿐이었지만. 그렇지만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언제든 떠올리면 그때 진짜 즐거웠지 하고 웃을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게 훨씬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