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간택해준 친구
아마 이 시리즈를 작성하면서 가장 할 말이 많은 친구 중에 한 명은 H가 아닐까. 그만큼 추억도 많고 고마운 것도 너무 많은 친구다.
“저기 미안한데 치마 좀 갖다 줄래? “
교복을 맞추던 강당에서 그녀가 내게 처음 했던 말이다. 이 한마디로 우리는 얼떨결에 친구가 되었다. 그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H가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소중한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철 없이 하하호호 웃기만 하던 우리는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무수히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실패를 밥 먹듯이 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나와 같은 친구는 모두가 만나기 어려워한다. 그것은 나를 무시해서라기보단 내가 상처받을 까봐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던 그들의 배려심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자에게도 친구가 필요한 타이밍이 있다. H는 그때마다 내게 나타나 준 구세주였으며, 그 어떤 말도 다 들어주는 대나무 숲이었다. 아마도 아니 분명 H는 우리 엄마보다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나를 다독이기만 한 게 아니라 때로는 날카롭게 지적도 해주며 나를 밝은 곳으로 이끌었던 그녀. 이상하게도 남들이 했으면 아팠을 말들을 H가 하면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게 구세주이며 대나무 숲이었던 그녀는 나의 길잡이까지 되어주었다.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완전히 옳은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H는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친구였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있으며, 나의 최악의 모습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인 그녀. 그리고 얼마 전에 만난 H는 말했다
“너 지금 좋아 보여”
약간의 술기운의 탓도 있었겠지만 이내 눈물이 쏟아졌다. 항상 내 힘든 모습만 보았던 그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큰 기쁨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용기를 주고, 나를 사랑해 준 H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20년의 시간 동안 나를 항상 지켜봐 준 소중한 친구에게 더 이상은 걱정거리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네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언제나 따뜻하게 곁에 있을 거야. 그 어떤 순간이 와도.
세상에 영원이라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지만 나는 감히 H에게만은 영원히 너를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할 수 있다. 그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