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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di Apr 14. 2016

아가들의 투쟁13

과거로부터 온 편지



숙이의 편지 from 2002

*** 의사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숙이(가명)에요.


 잘 모르는데 편지를 스내요. 그동안 참 재미있서요. 벌써 일주일 너무

 좋았서요. 다음에는 좋아져서요, **이에게 편지(도) 편지 보내드릴께요.

나는 아쉬워요. 잘 지내세요. 이제는 좋은 의사 되쓰면 좋

겠서요. 어디가서도 부끄러워 의사되지않고 훌륭한 의사

되세요. 건강하세요. 다음에는  **만나면은 좋은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네가요 요리를 잘하귿은요, 김밥 맛

있는가지고 병원으로 놀러가겠야요. 벌써 내일이면

가는 날이나요. 늘 기도해드릴께요. 잘보내시고요.


편지를 잘 못서도 읽어주세요. 안녕히계세요.  2004년 11월 11일 목요일   숙 올림.


갑자기 숙이의 편지를 발견하자 , 콧잔등이 찡해졌다.

인턴쉽을 마치고 미국가있던 봄에도그랬다. 봄이라서 그랬는지, 억지로 얼려놓은 기억들이 풀려나서그랬는지,


   오랫동안 못움직이게 되어 엉덩이에 고름이 가득차  내 주먹 반이 들어갈정도로 구멍이 뚫려있는 욕창을 소독하고 거즈 팩킹을 해주고 다시 빼줄때마다 이미 치매가 와서 어린아이처럼 보이던 할머니의 동그마니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이라던가,  첫 호흡기 병동 환자를 볼때 단아하고 창백하던 30세 가량의 여자환자가, 내가 ABGA를 할때마다 (아마 그땐 초짜라 많이 아팠겟지) 핏기없는 입술을 꼬옥 깨물면서 참던 모습이라던가, 중환자실에서 기관삽관을 하다 좋아져 빼고 난 후에는 친하게 말도 섞고 농도 던지던 아저씨환자가 갑자기 흙빛으로 얼굴이 변하며 나빠졌던 때라던가... 방금까지 농을 걸던 응급실에 내원한 "김사장" 이 위암이 진단되었을때 변하던 얼굴이라던가...

다 지나간, 이미 1년이 넘은 그런때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 눈물이 줄줄 나왔다.


"알러지 비염때문이야 " 하고 누군가 내 눈시울이 붉어져있는 것을 눈치채면, 변명을 했다.

<빅터프랭클> 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en's searching for meaning> 에서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어있던 빅터프랭클 박사는 극한고통속에서  심리적인 둔화를 스스로 겪게 되고 그것을 기록하는데, 나도 그에 동감한다. 육체적 극한 상황에서는 감정은 어쩌면 생존에는 불필요한 것이니까, 그렇게 무의식, 의식적으로  감정과 기억을 동결시켜두었다가, 일을 그만두자, 마치 냉동고에서 풀려나온 것처럼 심장이 벌떡거리고, 한 장면 한장면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심지어는 환자가 어느 병동 어느 위치에 어떤 자세로 있었는지까지 너무도 생생하여 다시 그곳에 돌아간것 처럼 느껴진다. 냉동시켜두었던 감정은 나는 죽지않는다고 아우성쳤다.  


숙이의 편지는 2004년도의 것이다. 그아이의 편지는 한동안 내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두었는데,

그러고나서 한동안 어디에 두고 잊고있었다.

지금 읽어보니, 2004년도 과거의 숙이가 2016년도의 내게 편지를 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숙이를 만난것은 경기도 외곽의 복음정신병원에서였다.

의과대학생들의 정신과 실습은 폐쇄병동을 도는 스케쥴을 포함하는데 , 우리 대학병원의 경우 본원의 폐쇄병동 을 몇주 돌은 다음 시립정신병원의 환자병동까지 도는 커리큘럼이었기 때문이다. 복음병원에는 알콜릭들과 정신지체 장애자, 정신분열병등으로 가족들에게서 외따로 떨어져나와 시의 도움을 받는 환자들이 주로 많이 모여있었다.


과장인 의사선생님과 말씀을 나눠보니, 알콜릭들의 경우 커텐을 모두 찢어 밧줄을 만들어 타고 내려가 술을 마시고 오거나, 외출을 갔다온 사람이 술병을 산중 어딘가에 숨겨두면 다음에 외출 나오는 사람이 정보를 얻어 그곳에서 술을 캐다(?) 마시거나,  길고 긴 호스등을 연결하여 빨대처럼 술을 빨아먹는 등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술을 마신다고 하였다.  

정신분열병이거나 심한 조현병 환자들도 있었다. 가족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의 환자들이 많았고, 따라서  집에서 금치산자로  붙들려 들어오는 경우도 꽤 많았다.


말이 통하지않을만큼 하게 심한 상태의 환자들도 있었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화는 놀랍고도 재미있기도 했다. 40대 중후반을 달리고 있던 한 여자환자는 내 옆의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남편도 아이들도 자신을 믿어주어 그 신뢰를 저버리기가 힘들어 술을 마시지않고 6개월을 버텼다고했다.

그런데 자꾸 신내림이 오려고 하는것을  거부하는 것이 너무 고단하고 괴로워,

정신을 차려보면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더라고 했다.  새벽녘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중학생 딸이 자신을 바라보며 울고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러고 나서 여자는 제발로 다시 알콜릭 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어왔다고 했다.

아마도, 희망은 없을 것같다고 말하면서 여자는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내 손목엔 사촌언니가 사주었던 스와치시계가  있었는데, 예쁘다며 차보겠다고 한다.

밴드를 오르간처럼  편하게 늘어나는 흰색팔찌형으로 바꿔두어 자주 차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맘에 들었나보다.  그러라고  했더니 얼른 자기 팔목에 껴보더니 " 이거 나줘요~! " 하며  내시계 팔을 뒤로숨긴다.

시계를 그냥 줘버렸다.

나중에 그러면 안된다고 사람들이 혀를 찼다.  정신과 환자들이 얼마나 교활한지 아냐고. 의사가 그렇게 말리면 안된다고. 나도 알고있었다. 적절치못하다. 하지만 손목시계를 차자, 그 여자 손목의 칼로 그어 생긴 무수한 주저흔들을 가리기에 꼭 알맞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버린걸, 눈에 뜨인것을 어쩌랴.


  알콜릭환자들은 술에 취해있지않을때는, 대부분이 소심하고 ,자존심이 아주 셌고,자주 성을 내었다. 구강기에 고착된 성격들이 상처를 입을 때 구강적인것 - 술을 마시는것, 담배를 피는 것,등에 의존한다고 하였던가.

전역한 군인 아저씨도 있었던것 같은데 평소때는 예의바르다가 탁구를 지면 굉장히 화를 내었다.


 숙이는 내 전담 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폐쇄병동에 있는 동안 정신과 환자들과 PK들(의과대학 실습학생들)은 대화를 나누고 레크레이션에 참여하면서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숙이는 그런 시간을 "즐겁게" 여겼다.


   숙이는 내 전 조원인 동료(편지에 언급되어있는 이름) 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우리 어렸을 때는 학교에 특수반,이라는게 있기도했고, 같은 반에 한명씩 '바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기도 했는데,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이른바 정신지체아였다. 20대 중반에 들어서서 만난 당시에도 , 숙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정도의 지능을 갖추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혹은 여러번) 의 임신을 경험한 노숙한 여인이기도 했다.  정신지체여아의 경우에는 그런 일들이 비일 비재하다. 동네 쓰레기들의 쓰레기통이 되기 쉬워지는 것이다.

 숙이는 부모가 있었지만   부모가 감당할 수 없었기에  시립정신병원으로 보내어졌다 .

   숙이는 뺑뺑이 안경을 쓰고있었고, 키가 160cm 정도에 불과했고, 해맑았다. 나와 동갑의 그 아이는 늘 아기같았다. 내 꼬마조카처럼 ,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쫓아다니는 아기처럼, PK(의과대학 실습학생)들을 좋아했다. 어른들이 많이 모인 명절날을 좋아하는 어린애들이 많은 것처럼, 우리가 와있는것을 좋아했던것 같다.  우리가 실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숙이는 봉투에 넣은 편지를 수줍게 내게 내밀었다.


<'김밥을 사가지고 병원에 놀러오고싶어요..' >

숙이가 꾸는 꿈엔 스쳐지나가는 PK인 나도 있었나, 싶어 마음이 찡하다.

누구라도 숙이의 꿈에 등장할수가 있다.

숙이의 꿈은 아량이 있고, 모두를 포괄할 수 가 있으니까.


  

 산 속에 있는 병원이라 교통편이 많지않아, 병원내에서 역까지 데려다 주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고있는데,

흰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할머니가 다빠진 이를 드러내고 벙싯 미소지으면서 다가왔다.

얼굴은 노인이지만 , 마음은 아직 아홉살,열살,열두살...이렇게 소녀인가보다.

그 늙은 소녀가 털썩, 내옆에 앉더니 내게 스프링 노트를 내민다.


  "이게 뭐에요?"

<애기다 주소 적어주세요.. 선생님>

 "주소는 알려주지 못하게 되어있는데요...왜 그러세요"

<친구가 되고싶어서요>

 "아..그렇구나.. ^ ^ 그럼 친구해요"

<또 금방 떠날거잖아요...>

"..아니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친구하면 되잖아요.."

<어떻게요?>

" 이렇게,서로 안녕하세요,인사하고, 좋아하는것에 대해서 서로 뭐 좋아하냐고 묻고..

일단 여기 옆에 앉아서요...그리고 밥은 잘 먹었는지 물어보고..그러면서 친구하는거에요..."


<떠날거잖아요?>

"  ...떠나더라도 다시 만나게 될거에요.친구는 언젠가 다시 꼭 만나게 되어있어요"

<...정말요?>

"그럼요..."



*


이미 12년이 지났으니, 기억이 희미해진다.

그렇지만 15년이 지나면, 더 희미해질테고,

20년이 지나면, 내가 치매가 와있을지도 모르니까,  기억이 사라지기전에 적어본다.


<나는 아쉬워요. 잘 지내세요.좋은 의사 되쓰면 좋겠서요. 어디가서도 부끄러워 의사되지않고 훌륭한 의사

되세요>


훌륭한 의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디가도 부끄러운 의사는 아니었어요.

숙이가 기도해줘서 그런가봐요.

  

....숙아, 나는 네가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너를 오늘 많이- 생각했어요.네가 싸준 김밥을 상상했어요. 삐뚤빼뚤하고 속이 좀 튀어나와있는데 아주 맛있을것같은 그 김밥은 오늘 내가 꼭 먹은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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