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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Sep 03. 2021

하이퍼 리얼리즘? 한국 군대의 숨겨진 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8월의 끝자락에서, 남편이 수줍게 내게 말을 건넸다. 넷플릭스 드라마 한 편을 같이 보자고 말이다.


사실 남편과 나는 영화나 드라마 취향이 극과 극으로 영 맞지가 않아 같이 보는 경우가 드물다. 액션과 스릴러를 좋아하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한다. 나는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을 보면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내가 직접 겪은 일인 양 고통을 느낄 때가 많아서 청불영화는 아예 쳐다도 안 본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웃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관에서 액션이나 스릴러를 보면 피가 난무하거나 잔인한 장면에선 남편이 꼭 내 두 눈을 손으로 가려준다. 안 그러면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그런 장면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으~" 하며 주인공과 함께 고통을 느끼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자극적인 장면이 가득한 요즘 영화는 웬만하면 거르고 보니 남편이 내게 하는 불평 중 하나도 종종 보고 싶은 영화를 혼자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편이 뭔가 보고 싶다고 하면 나는 먼저 내 두 귀를 닫는다. 보기가 싫다. 그래도 남편의 간절한 부탁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TV를 켜고 넷플릭스를 함께 시청했다.


(출처: 넷플릭스)


<D.P.>


제목부터가 낯설다. 무슨 뜻인지 감도 안 오는 이 약자를 내 남편은 보자마자 알아보았다. 바로 탈영병을 체포하는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조를 뜻한단다. 사전을 찾아보니 D.P. 는 Deserter Pursuit의 약자였다. 탈영병을 추격한다는 뜻. 드라마는 주인공인 안준호(정해인)가 군에 입대하여 D.P. 에 합류하면서 탈영한 탈영병들을 잡는 내용이다.


남편은 플레이 버튼을 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30~40대 군필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밤잠을 설쳤대. 누구는 PTSD를 호소했다나?"


"엥?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겠다고?"


남자들....... 군대라면 치를 떨지 않나? 그런데 군대 드라마를 보겠다고?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군대는 싫다면서도 군대 얘기만 나오면 항상 눈을 반짝이며 말이 많아진다.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다. 군대를 욕하면서도 군대 얘기만 나오면 항상 무슨 무용담을 늘어놓듯 말이 길어진다. 아무리 사랑하는 내 남편이라 해도 군대 얘기는 들어주기가 참 힘들다.


<D.P.>는 총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드라마의 배경은 2014년이다. 1화가 시작되면서 "진정한 군의 기강은 전우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라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나오는 TV 화면 앞으로 폭력이 난무한 내무반 풍경이 보였다. 서로 상이한 내용에 나는 보자마자 소름이 끼쳤다.


(출처: 넷플릭스)


드라마에는 군대 내 폭력과 성추행 등의 가혹행위, 강압적인 상명하복 문화와 더불어 각종 부조리 등이 나온다. 나는 첫 장면부터 남편을 쳐다보며 "정말? 군대가 정말 이래? 말이 되나?"를 계속 연발했다. 남편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그렇다고 했다. 여자들은 알 수 없었던 군대의 숨은 이면을, 이날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모든 내용이 충격적이었고,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드라마 <D.P.>가 이토록 내게 큰 충격을 준 이유는 탈영병을 소재로 군대 내 검은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TV에서 누군가 탈영했다는 뉴스를 볼 때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구나 다 가는 군대.. 왜 혼자 적응 못하고 탈영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라며 이해를 못하곤 했었다. 그런데 드라마 속 탈영병들이 겪었던 끔찍한 가혹행위의 실체와 치매 할머니를 두고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던 한 탈영병의 이야기 등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단 한 번도... 뉴스에 나왔던 그들이 왜 탈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에도 자살을 한 탈영병의 누나가 동생에게 남들 다 가는 군대 생활이 왜 너만 어렵냐라고 얘기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후회하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가슴 한편이 시큰거렸다. 나와 그녀는 남자들의 군대 생활에 대해 너무 무지했었고, 무관심했었다.


1편만 보고 잠들려던 나는 6편의 에피소드를 모두 다 보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극도로 사실적인 폭력 묘사와 욕설은 조금 보기 힘들었지만, 한국적인 군대 문화를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군 복무환경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폐쇄적인 곳에서의 생활은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것이다.


드라마가 더욱 무겁게 다가왔던 이유는 모범이 되어야 할 윗사람들은 외부로 드러나는 실적에만 목을 매고 책임은 회피하는 등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군대 내에서는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부분은 이를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한국 남자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군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그리고 그 힘든 군 생활을 다 견디고 전역할 때의 기분은 어떨지 상상이 갔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남편이 군대 얘기를 할 땐 잘 들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군필자들, 지금 현재 군대에 복무 중인 모든 군인들, 그리고 앞으로 군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모든 한국 남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다시 군대 가는 꿈을 꾼 내 남편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토닥토닥......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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