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휴가갑니다.
작년 이맘때, 기후정의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공항으로 그리고 치앙마이 숙소에 도착했다. 가방엔 기후정의행진 포스터와 기자회견문을 그대로 넣은 채.
바깥으로 동터오르며 붉어진 사찰과 아침 녘 우는 닭소리, 아래층에 맛있게 지어진 비건음식 냄새. 곧이어 이용할 작지만 예쁜 수영장을 보니 드기어 휴가다! 싶었다.
다만, 이동하려면 차가 없으니 볼트를 불러야 하고 점심 저녁 뭘 먹을까 사다 나르고 빨래하러 갔다 거스름돈이 없는 세탁기에 뒷손님에게 진땀 내 설명하기도 했다. 세탁 시간만큼 기다리는 것도 즐거워야 할 텐데... 언제든 나만이 돌리고 꺼내 건조기 돌린 우리 집을 그리워한 것이 사실이다.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읽고 여행마다 매번 공감하며 떠올린다.
외국의 간판은 보는 그 순간부터 우린 해석과 이동 방법과 비용을 머릿속을 내내 재야 한다. 이를 잘 나누거나 공감하는 여행메이트가 없는 이상. 그저 조르고 즐기는 아이가 있는 이상. 나만의 몫이다.
일 년 뒤. 오늘. 포항이다. 짐 쌀 때부터 만족스럽다. 일주일 넘게 비울 집이기에 냉장고에 말라가는 채소를 아이스가방에 대강 넣었다. 다음날 재료들은 정갈이 정리되어 잡채가 되었다. 고맙게도 엄마가. 가방에 아무렇게 넣어온 옷들은 여기 와서야 제대로 갈곳 나눌 곳 정리되고, 하루 만에 햇살에 비가 올지라도 뽀송이 싹 접혀 돌아왔다. 바닷가에 놀러 간다 하니, 토마토주스 수박 한 통 옥수수 간식이 금세 마련되었고 돌아와 모래 바시락 거리니 따라오며 아빠가 쓸어준다. 우리가 늘 찾는 바닷가도 있고 책방도 영화관도 도서관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심심할 새 없이 아이는 할아버지 찾아 거실로 나서면 모처럼 늦잠을 자고 스케줄에 쫓길 필요 없이 쉰다.
그렇다고, 갈 곳이 없느냐. 초등학교 때부터 살 던 집 앞에 영일대 해상누각이 서더니 명소가 되었더라. 큰 길만 건너면 축제이고 잠엔 폭죽에 길러리 버스킹이다. 산책길엔 유명해진 베이커리에 물회집에 요트장에... 아이는 잠옷바람에 킥보드 끌고 나왔다 여기도 맛있겠네! 새로 생겼네! 노을은 내일 그림 그릴까? 하며 일상 얘길 한다.
아침해에 조깅한 적 없이 늘어지게 잘 뿐이지만, 하루이틀 숙소에 머물다 떠나야 하는 여행지도 아니고 마음 편히 있다 슈퍼 가며 바다냄새 맡음 그만이다. 그 길로 도서관도 나였고 학원도 오갔고 스쿨버스도 탔었다. 오래전엔.
우리 집으로 휴가를 올 수 있는 건, 이토록 편한 건 부모의 돌봄이 보살핌이 여전해서라는 걸. 벌써부터 아쉬워하며 알고 있다. 바다 보이는, 위치가 너무 좋은 포항집을 나중에라도 별장처럼 두고 싶어도 아려서라도 다시 안 찾을 수 있겠다고도 싶다.
늦은 휴가철, 시원한 바닷바람에 원두막에 앉아 요트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본다. 휴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