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네요
생일이었다.
생일이라 남편이 백만 년 만에 처음으로 식당을 예약해서 같이 나가서 먹자고 했다. 살갗이 따가워 같이 나가 외식하기 힘든 그가 어렵사리 예약을 했다. 다정하게 시간을 보낼 계획으로 말이다. 나는 연차를 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평화로운 월차를 즐기려는 차에, 2층에서 남편의 고음이 들렸다. 아뿔싸
시어머니가 약속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보따리를 들고 버스정류장에 있으니, 자신을 데려와 달라는 전화였다. 나는 남편을 달래고 시어머니를 모시러 나갔다. 시어머니는 미안한 기색 없이 남편이 소리 지른 것에 기분 나빠하고 계셨다. '아들을 위해 반찬을 들고 버스를 타고 온 여기까지 왔는데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모시고 왔다. 남편은 감정조절이 힘든 스타일이라 점심을 우리와 같이 먹지 못한다며 나랑 시어머니랑 먹으라 했다.
그렇게 원하지 않은 상대와 나는 남편이 예약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시어머니는 밥이 맛있다며 좋아하셨지만 나는 음식 맛이 그다지 느껴지진 않았다. 어머니가 무안해하실까 봐 그냥 기분을 대충 맞춰드리고 다시 버스정류장에 태워다 드리고 왔다. 예전 같았다면 내가 댁까지 모셔다 드렸을 테지만 정말 그럴 마음까지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이 상황을 동여매고 기분이 나빴다.
시어머니는 내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 따위 하지 않았다. 자기 아들 반찬 하러 우리 집에 온 거다. 내가 굶겨 죽이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나라는 억측도 해보고, 아니 자기 아들이 아프니깐 챙겨주고 싶어 그랬겠지 부모마음이 오죽하겠나 싶기도 했다가도 분노와 진정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주말엔 친정식구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주셨다. 참으로 감사했다.
그래 지금 가장 힘든 건 남편일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내 화와 분노는 스스로 삭여야 한다.
시어머니께서는 시야가 굉장히 좁으시다. 딱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식밖에 보이질 않으신다. 그 대단한 사랑이 자식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사랑을 넘어선 그 집착이 아들을 더 아프게 하고 밤마다 가위에 눌려 '제발 날 내버려 둬'라는 비명도 모르신다.
어머니의 그 집착이 우리 가족까지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모르시지만, 나는 이 또한 지나가야 한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참회'기도를 했다.
내가 겪은 이 일련의 에피소드가 평온하고 감사한 내 일상, 내 삶을 뒤덮지 않기를,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이더냐,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오빠 새언니 감사합니다. 아들 남편 감사합니다.
내가 우울해하고 힘들어해야 할 단 하나의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그 작은 티끌은 물에 씻어 흘려보내고 오늘 하루 이번주도 웃으며 파이팅 하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