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기다리던 클래식 공연을 갔다. 1부는 베르디의 운명,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이 이어졌고, 2부에서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이 연주되었다.
난 2부 차이콥스키 음악을 들으며 이유 모를 우울감에 휩싸였다. 특히 마지막 4악장이 끝나고, 지휘자가 의도한 듯 잠깐 이어진 정적 속에서 모든 것이 한순간에 소멸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 압도당한 것도 있었지만, 그 순간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수치심과 자기 비난이 더 크게 고개를 들었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차이콥스키는 이 교향곡을 초연한 지 불과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미 그는 깊은 우울과 시대의 암울함 속에서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 음악은 그의 고백이자 레퀴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알게 되었다. 위대한 작곡가조차 삶의 무게와 비통 속을 헤매며 살았다는 사실에서 역설적인 안도감을 얻었다. 비로소 깨달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동안 나는 내 우울과 수치심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 또한 내가 보듬어야 할 내 모습이라는 것을. 회사에서의 무례함, 시어머니의 존중 없는 태도, 그리고 배우자의 아픔을 겪으면서 나는 모든 원인을 내 탓으로 돌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타인의 불안에서 비롯된 무례는 그 사람의 문제였고,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상대의 공감 능력의 한계였다. 배우자의 병 또한 내 책임이 아니다. 나는 단지 그 상황을 감당하는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는 계속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비창이 끝난 정적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속삭였다.
"괜찮아. 넌 잘못하지 않았어. 넌 이대로 충분해."
때론 그럴 수 있는 일들이 생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결코 내 잘못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마다 자신을 미워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정하게 끌어안아 주는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