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과 비교해보는 <몽타주> 영화읽기
영화 <극한직업>이 놀라운 흥행속도를 이어가며 화제다.
그 흥행비결을 가리켜 최근의 불경기 탓으로 인한 웃음치유가 거론되고 있다.
그냥 다른 거 필요 없이 요즘같은 힘든 세상사, 영화를 통해 실컷 웃고 위안 받고 싶은 우리네 평범한 소시민들의 바람. 그게 시기적으로 통했다면 통했다 하겠다.
영화 <극한직업>의 또다른 매력이라면,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의 형사물이라는 거다.
마약조직범을 잡기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알려지며 벌어지는 이야기. 이같은 스토리 설정 자체가 이미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는 거다.
최근에 개봉했던 또다른 영화로, <뺑반> 이란 영화 역시 조금은 독특하게 다가오는게, 뺑소니범만을 잡는 전담반을 줄여서, ‘뺑반’이라고 한단다. 그동안 보여줘 왔던 형사들과는 확실히 다르 모습의 형사들...
어쩜 기존과는 다른 독특함, 신선함들에 찾아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영화속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형사하면, 범인을 쫓고 잡는 강력계 형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형사는, 유괴범을 쫓는 오청호 형사.
오형사는 공소시효가 끝나가는 그 순간까지, 범인 추적에 매달린다.
오로지 서진이 유괴사건, 이 한 사건에만 집착하고 매달린다.
하지만 공소시효 앞에 더 이상 범인추적이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실제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는 어떨까?
오형사는 수사를 멈추지만, 엄마만큼은 범인추적을 포기할 수가 없다.
아무리 공소시효가 끝이 났을지라도.
딸을 죽인 범인을 그 어느 엄마가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범인을 끝까지 추적해 잡고, 그 범인에게 법적인 응당한 처벌이 내려지길 바라는 마음.
이 영화의 핵심은 첫째 공소시효.
그리고 둘째, 엄마라는 존재,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뭔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게 바로 영화말미 반전 안에 담긴 우리네 엄마의 모습은 아닐는지.
딸을 잃어버리고, 공소시효가 지나고, 15년이 흘러 지난 어느날.
다시 예전 서진이 유괴사건과 닮은꼴의 유괴사건이 발생한다.
15년 전과 너무나도 흡사한 방식의 사건.
도대체 범인은 누구며, 왜 15년 전과 똑같은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것일까?
굉장히 치밀하고 모든게 너무나도 계획적으로 돌아가는 듯한 이 사건의 움직임.
과연 범인은 누굴까?
어쩜 그래서 제목이 <몽타주>인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에게 마치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범인이 누가 될지...관객들인 너희들이 직접 한번 그려서 그림을 완성해 볼래?”
관객들에게 직접 범인을 추리해 보라는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다.
반전의 스릴이 있어 더욱 통쾌했던 영화!
그 반전의 스릴을 직접 느껴보시길!
그 답은, 어쩜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가릴 수 없는 우리네 ‘엄마’들이야말로 ‘극한직업’이 아닐런지.
<몽타주>란 영화를 보고난 후...
형사라는 직업 이전에 엄마란 존재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그리고 다시 영화 들여다보기.
15년 이후
이번에는 봄이라는 여자아이가 누군가에게 유괴된다.
그리고 서진이 유괴사건처럼 똑같이 범인은 아이엄마에게 용산역에 돈을 두고 갈 것을 지시한다.
서진이 사건때, 범인을 놓친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결국 추격 끝에 범인을 잡는데, 놀랍게도 아이의 할아버지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든 정황이 범인은 아이의 할아버지라고 가리켜주고 있다.
마치 미리 범인을 설정해 잡아가라고 유도한 느낌이었으니.
그렇다면 도대체 범인은 왜?
놀랍게도 이 영화의 범인은 '서진이 엄마'였다.
오랜 추적 끝에 서진이 사건의 범인이 봄이 할아버지임을 알아낸 그녀는,자신과는 달리 손녀와 딸과 행복한 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에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에 빠진다.
그리고 똑같이 복수해주겠다는 생각에 똑같은 방식의 범행을 저질렀던 것.
그동안 서진이 사건을 통해 수집해온 증거들을 하나 하나 활용해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던 것.
공소시효로 인해 범인을 처벌할 수 없음에, 그녀는 이같은 방식으로 범인을 형벌하려 했던 것이다.
'봄이 유괴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이 할아버지에게 지난 서진이유괴사건을 담당했던 오형사가 찾아가 도대체 왜 15년 전에 그랬냐고 따져 묻는다.
사실, 이 할아버지 역시 아파 죽어가는 딸을 위해 저질러서는 안될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것.
“형사님, 형사님은 결혼 하셨나요? 딸 키워보셨어요? 딸 가진 사람입장으로....딸이 다 죽어가는데”
이 대사가 한편으론 참 아프게 들려오더라는.
그렇게 엄마란 존재, 부모란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물음표를 갖고 들여다 보게된 영화라는 것.
그리고 오형사와 아이 할아버지인 한철과의 또다른 거래가 이어진다.
“어 강형사. 나 오형산데, 한철이 결국 자기 죄를 스스로 인정했고 내게 모든것을 자백했어!”
통쾌하기도 하지만, 웬지 모르게 씁쓸해지는 영화이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