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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의 식탁 이효진 Mar 09. 2019

모호한 경계 안에서 '아싸'가 되어가는 이 시대 우리들

영화 [그린북]을 보고


‘인싸’는 뭐고, ‘아싸’는 뭐야?

처음 인싸와 아싸, 두 단어를 들었을 때의 나의 반응이다.

‘인싸’의 뜻을 찾아봤다. ‘인싸’는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다시 말해 조직과 같은 무리 안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나가는 이들을 일컫는다. ‘아싸’는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이다.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과연 인싸인가? 아싸인가?’

     

‘아싸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아싸는 왜 인싸를 거부하고 있는 걸까?’

     

영화 <그린북>을 보고 나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주인공 돈 셜리 박사가 그랬다. 흑인들에게도 백인들에게도 그 어느 곳으로 향해도 속해있지 못하는 모호한 경계 위에 항상 서 있는 인물.

     

<그린북>은 ‘편견’과 ‘경계’의 무언가를 이야기해준다.

     

돈 셜리 박사는 흑인 뮤지션이다. 흑인 음악가 하면 보통 연상되는 게 재즈 뮤지션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돈 셜리는  재즈 뮤지션이 아닌 클래식 피아니스트이다. 어쩜 영화에서는 이 또한 편견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듯하다.

  

극 중 주인공으로 또 다른 인물이 한 명 더 나온다.

그는 바로 이탈리아 이민계 백인 토니 발레롱가.

 그는 술집에서 일을 하고 난동 취객이 생기면 늘 해결사 역할을 아주 훌륭히 수행해 낸다. 하지만 늘 힘겹게 돈을 벌고 살아가는 신세. 당장 집세 걱정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가장이다. 그런 그에게 돈이 되는 일거리 제안이 들어온다. 흑인 셜리 박사가 자신의 운전기사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셜리 박사는 왜 하필  토니라는 운전기사가 필요했던 것일까?

     

영화는 흑인 차별이 심각했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절은 흑인들에게 있어 [그린북]이라는 여행서가 필요했던 시기였으니.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북]은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에 흑인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숙소나 식당 등의 전용업소 정보를 모아놓은 책이다. 빅터 후고 그린에 의해 발간됐다해서 [그린북]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그렇게 이 두 사람은 그린북과 함께 투어를 떠나게 된다.

     

사실 영화 제목의 상징성만큼 그린북이 영화 안에 큰 비중을 차지해 나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토니라는 인물이 ‘그린북’에 가까운 역할을 해 나간다고나 할까? 사실은 셜리 박사가 토니를 운전기사로 고용한 이유가 그것이다. 흑인 차별이 특히 더 심했던 지역인 미국 남부지역으로 공연을 하러 가야 하는 셜리 박사에게는 단순히 운전을 해줄  운전기사가 필요했다기보다 자신을 지켜 줄  보디가드에 가까운 토니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토니라고 흑인에게 관대했던 사람은 아니다. 흑인 인부들이 마신 컵조차도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로 흑인을 싫어했던 토니. 하지만 당장 집세를 걱정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결국 싫어하는 흑인과 함께 8주 동안의 투어를 결심하게 한다. 그렇게 두사람의 불안한 투어가 시작된다.

  

전혀 성격도 안 맞고, 취향도 다른 두 사람.

투어를 떠나는 초반에는 그 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불안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둘은 서로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토니는 현실안에서 셜리가 겪는 흑인 차별의 고통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고. 또한 이전에 흑인을 대했던 자기 자신도 반성하게 된다.  

둘은 서로에게 품었던 경계심을 허물고 비로소 기꺼이 친구가 되었다.

     

아웃사이더란 누구인가.

     

영화 안에서 셜리란 인물을 보면 딱 아웃사이더, ‘아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인들의 삶을 꽤 동경하고 있다. 자신은 후라이드 치킨을 뜯어먹기보다는 스테이크가 더 잘 어울린다고 믿고 있다. 재즈보다는 클래식이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말한다. 자신의 삶은 백인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무언의 외침을 하는 듯. 하지만 백인들은 그를 자신의 세계 안에서 늘 배제시킨다. 그의 공연을 찾아 듣고 박수 치고 즐기더라도 그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부색이 다른 그가 자신들이 이용하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것은 절대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면 흑인들에게는 어떤가.

흑인들에게도 그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인물이다. 흑인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셜리는 그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셜리를  흑인들 또한 받아들일 수가 없다. 흑인도 될 수 없고, 백인도 될 수 없는 셜리의 삶. 모호한 경계 안에서 늘 외톨이처럼 살아가는 아웃사이더 셜리.

     

영화가 끝이 나고 스크롤이 올라오고 있다. 중 인물과 비슷한 인물들의 사진이 하나하나 올라온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야기임을 말해주고 있다. 어쩜 중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임을 간접적으로나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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