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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hwa Jan 03. 2019

록앤롤

ROCK WILL NEVER DIE

지난 11월 29일부터 12월 25일까지, 명동 예술극장에서는 로큰롤이 울려퍼졌다. ‘역사를 바꾸는 건 정치가 아니라 록앤롤이었다!’라는 발칙한 캐치프라이즈를 내세운 톰 스토파드작, 김재엽 연출의 연극 <록앤롤>이 상연된 것이다. 톰 스토파드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수여하는 권위있는 연극 상, 토니상을 4번이나 수상하고 이브닝 스탠더드 상을 7번이나 수상한 소위 스타 작가이다. 1937년 체코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톰 스탠더드는 나치 점령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 때 겪은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록앤롤>의 주인공인 ‘얀’에게 녹아들어있다. <록앤롤>을 세운 또 다른 기둥 연출가 김재엽은 <알리바이 연대기>,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등의 작품을 통해 역대 대통령, 재독 간호사 등 우리 근현대사의 민낯을 드러내 온 연출가이다. 톰 스토파드의 일생과 삶을 녹여낸 작품이 시대의 민낯을 드러내는 연출가를 만나 30년의 시대를 넘어 시의성을 갖춘 대작이 되어 명동에서 로큰롤이 울려퍼지게 만들었다.


<록앤롤>은 스토파드의 조국 체코의 격정적인 정치사를 잘 녹여냈다. 19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는 스탈린 사후에도 스탈린주의 정권에 의한 보수주의 정책이 지속되고 있었고, 이에 반발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인들은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 결국 1968년 1월 개혁파의 두브체크를 당 제1서기로 하는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게 된다. 이들 개혁파는 ‘사람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즉 민주 자유화 노선을 강령으로 채택하였고, 이후 민주적인 선거법 제도의 창설,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보장, 국외 여행 및 이주의 자유 보장, 사실상의 검열제 폐지 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온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은 이를 ‘프라하의 봄’이라 부르며 변화를 환영했다. <록앤롤>의 주인공 ‘얀’은 이 시기에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신봉하던 공산주의자 막스 밑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프라하에 봄이 찾아왔던 그 해, 겨울은 같이 찾아왔다. 1968년 8월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5개국은 약 20만의 군대를 이끌고 체코를 침공하여 자유화 운동을 저지하고, 개혁파를 숙청하였다. 결국 1969년 4월, 두브체크는 강제해임되고 후임 서기장으로 후사크가 임명된다. 영국에서 로큰롤에 심취했던 ‘얀’은 고국 체코로 돌아와서도 꾸준히 로큰롤을 듣는다. 그의 친구 ‘페르디난드’는 ‘얀’에게 후사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성명서에 서명해달라고 하지만, ‘얀’은 계속 거절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후사크 정권의 문화 탄압은 심해져만 가고, 결국 ‘얀’이 사랑한 밴드 ‘플라스틱 피플 오브 더 유니버스’의 멤버가 구속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에 반대하던 ‘얀’은, 결국 부정한 음악을 만드는 자를 옹호했다는 죄목으로 구속된다. 석방된 뒤에 집에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그가 애지중지 모았던 LP판들이 모두 부셔져서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 때 ‘페르디난드’가 찾아와 ‘얀’에게 다시 한 번 서명을 요청하고 얼마간의 다툼 끝에 ‘얀’은 서명한다. 그리고 비치 보이스의 <Wouldn’t it be nice>가 흘러나온다. 그 후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잡고 체코에서는 바츨라프 하벨이 77헌장을 발표하고 1989년 12월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민주주의 체제를 성립하게 된다.


극은 이 후 약 20년을 조명하며 사랑과 평화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을 말하는 로큰롤은 개인을 세상에 맞서게 하고 조우시키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조망하고, 사랑과 운명이 개인 사이에 어떻게 움트는지 이야기한다.

연극 <록앤롤>의 마지막 커튼콜, 사진 제공 국립극단


<록앤롤>의 이야기를 진행시킴에 있어 ‘얀’ 배역을 맡은 이종무 배우의 역할은 지대했다. 극 초반 히피 문화와 로큰롤을 즐기던 60년대 70년대의 청년에서 감옥에 다녀온 뒤 실의에 빠지고 다시 세상에 맞부딪히는 사람이 되기까지, ‘얀’의 심경 변화를 잘 표현했다. 98년도에 데뷔한 이래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지속해 온 이종무 배우는 올 초 <3월의 눈>에서 황씨 역할을 맡았을 때와 다른 이미지임에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평소 브라운관과 무대를 오가는 강신일 배우의 ‘막스역도 <록앤롤>을 만드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얀’이 존경해 마지않는 스승이면서 영국의 흰 코뿔소,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자, 그리고 그토록 강경했던 모습에서 결국 ‘얀’과의 화해 끝에 변해가는 모습은 강신일 배우 외의 그 어떤 배우에게도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김재엽 연출과 벌써 두 번째 호흡을 맞추는 그는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그러했듯 날카로운 배우가 되어 시대의 모습을 비춰내고 있다.


‘에스메’ 역의 정새별 배우 또한 긴 시간 동안 에스메의 변화를 두드러지게 표현해냈다. 최근 <조씨고아>, <1984>, <성>, <한민족 디아스포라전 –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서 두각을 드러내왔던 정새별 배우는 그동안 국립극단에서의 소위 ‘외모’ 담당이라는 족쇄를 벗어던지고 웃음과 솔직함을 담당하는 배우로 드러난 것이 흥미로웠다. ‘페르디난드’역의 김한 배우는 특유의 허스키한 보이스로 페르디난드를 표현했다. 그러나 극 초중반 ‘페르디난드’의 강직한 캐릭터를 살리기엔 목소리가 조금 아쉬웠다. 그의 연기나 분장은 모두 최적의 것이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바츨라프 하벨을 모티브로 한 ‘페르디난드’인 만큼 좀 더 깔끔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나았을 것이다.


‘앨리스’역의 이다혜 배우는 신인답지 않은 면모로 대선배들 앞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필자와 동년배임에도 넓은 폭의 연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였다. 짧은 필모그래피와 극 후반부에만 등장하는 연기 속에서도 충분히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이다.


배우들은 각자의 배역이 살아가는 시간을 연기한다. 그리고 무대는 모든 배역에게 각자의 시간이 있음을 360도 회전하는 3면의 무대를 통해 드러낸다. 설령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 인물의 시간이 멈춰있는 것은 아님을, 각자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무대는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돌아가되 돌아가지 않는 레코드판은 서로 보이지 않는 각각의 인물들이 록 음악으로 이어져있음을 상징한다. 온 무대를 관통하고, 그를 넘어 작품 자체를,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음악으로써의 록 음악을 상징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장치인 것이다.


록 음악은 체코의 정치사와 함께 <록앤롤>을 관통한다. 관객은 ‘에스메’를 통해, ‘얀’을 통해’, ‘페르디난드’와 ‘마그다’, 그리고 ‘앨리스’와 ‘스티븐’을 통해 꾸준히 그 시대의 로큰롤 이야기를 듣는다. 차가운 전쟁의 시대였으나,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과 평화의 로큰롤은 히피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존의 물질문명에 대해 비판하고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주창하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히피들은 그 정신을 공유하는 로큰롤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극 초반부 ‘에스메’와 ‘얀’이 히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로큰롤은 단순히 갈등과 불안, 이데올로기에 의한 갈등을 풀어내는 해방구만은 아니다. 오히려 로큰롤은 과거에 열정을 바쳤던 무엇,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헤드뱅잉인 것이다. 돌이 구르는 평탄한 삶에 시끄럽게 소리를 냄으로써 그 열정으로 돌을 움직이고 바꾸며 종국에는 길을 바꿔버리는 것이 바로 로큰롤인 것이다. 그렇게 로큰롤은 극 내에서 등장인물을 이어주고 끊어내는 역할을 하며 계속된다.


톰 스토파드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핑크 플로이드의 전 보컬 시드 배럿이 이 작품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라 한다. 한 때 기이할 정도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던 아티스트였으나 어느덧 평범한 중년이 되어버린 시드 배럿을 보며 록음악이 예술을 넘어 사회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느끼고 이를 희곡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록앤롤>에서는 배경음악으로 록 음악이 많이 등장한다. U2, 롤링 스톤즈, 건즈 앤 로지즈, 핑크 플로이드, 플라스틱 피플 오브 더 유니버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이름만 들어도 걸출한 록 밴드들의 음악을 적절한 스토리에 버무려 낸 능력은 가히 칭찬할 만하다.


공산주의와 로큰롤, 누가 들어도 전혀 합치되지 않는 두 키워드를 톰 스토파드는 시대의 흐름 속에 잘 녹여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의 역사에서 누군가는 냉전을 말하고 누군가는 음악을 말한다. 그러나 스토파드는 이 기간 동안의 냉전과 사랑과 혁명과 음악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든 배역에 사랑을 담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역사의 흐름에 거스르고자 하는 혁명을,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유를 원하는 음악을 그려냈다.


연출가 김재엽은 이 공연을 소개하는 글에서 ‘이 작품은 저마다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록앤롤처럼” 살았던 20세기 사람들에게 보내는 헌정 앨범이다’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민주의자들, 인문주의자들, 히피들, 그리고 20세기의 모든 인민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이라고 말이다. 이제 ‘록은 죽었다’고들 많이 말한다. K-pop과 EDM과 힙합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록은 시끄럽기만 한 구시대의 잔재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 록은 시끄러워야 한다. 록은 탈출구, 도망로에 그쳐서는 안된다. 록 음악은 해방구임과 동시에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을 수 없는 인간에의 몸짓인 것이다. 우리는 인간성을 잃을 수 없고, 인간이 배제된 사회에서 살 수 없다. 그렇기에 록은 죽지 않을 것이고 록의 정신은 언제까지나 살아남아 세상을 보다 사람답게 만드리라. ROCK WILL NEVE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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