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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Mar 10. 2019

네덜란드 대학 체육관은 왜 캠퍼스 한가운데 있을까?

사람이 스포츠를 만들고, 스포츠가 사람을 만든다


"스포츠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스포츠는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힘이 있다." - 넬슨 만델라 -


네덜란드 대학에서 생활하다 보면, 테니스 라켓을 등에 매고 오가거나 체육복 차림을 한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 대학의 Orientation Week을 체험할 때에는 4일간의 일정 가운데 반나절 이상이 대학 스포츠 체험 활동으로 배정되어 있었고, 이날 체험해 본 스포츠 활동들(펜싱, 힙합, 클라이밍, 요가 등)을 주 2회 수강하는 비용도 월 2만 원 정도로 매우 저렴했다(네덜란드에서는 일주일에 커피 한 잔을 덜 마시면 되는 값이었다). 4층 규모로 된 대학 체육관 가운데 웨이트 트레이닝 센터만 해도 2층 규모를 차지했는데, 매일 오후~저녁 시간마다 학생들과 무료 멘토링을 제공하는 전문 퍼스널 트레이너들로 붐볐다. 한국에서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도 '이 가격에 운동을 안 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네덜란드에서 스포츠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2018년 유럽 의회의 자료에 따르면, 약 80퍼센트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매주 걷거나, 수영하거나, 자전거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나 전체 유럽 평균인 44퍼센트와 큰 차이를 보였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의 비율도 네덜란드 사람들이 56퍼센트로, 유럽 평균인 40퍼센트를 훨씬 상회했다. 어떻게 네덜란드에서는 스포츠가 시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들의 삶 한가운데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네덜란드의 스포츠 클럽들은 독특한 구조로 관리되고 있다. 우리가 머물렀던 인구 25만여 명의 중소도시 네이메헌에도 5개 내외의 유소년 스포츠 클럽이 있었는데, 각각 2~3개의 대형 잔디구장과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와 같은 스포츠 클럽들은 대부분 지방 자치단체 체육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들은 나이에 따라, 지역에 따라 리그를 이루며 지역 청소년들의 스포츠 참여를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비영리법인으로 운영되는 네덜란드의 스포츠 클럽들은 공공복지 차원에서 남녀노소,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다. 인구가 1500만여 명에 불과한 네덜란드에만 35,000여 개의 스포츠 클럽들이 갖춰져 있으며, 전체 인구의 28퍼센트가 공공 스포츠 클럽의 활동 멤버이다. 121개의 공공 스포츠 클럽에 5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혹자는 '사람이 스포츠를 만들고, 스포츠가 사람을 만든다' 고 말했다. 지난 30년간 네덜란드 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스포츠도 마찬가지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스포츠 참여율은 1979년 이래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는데, 전체 인구의 50퍼센트 정도가 스포츠를 즐기던 상황에서 2007년에는 7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50-64세와 65-79세의 노령/고령층 인구의 참여율이 각각 20퍼센트, 10퍼센트에서 55퍼센트, 40퍼센트로 매우 높아졌다. 6세~19세 청소년 인구의 스포츠 참여율은 90~95퍼센트를 넘어서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는 인격을 성장시키고, 규칙에 따라 플레이하도록 가르치며, 승리하고 패배할 때 어떤 기분인 지 느끼게 한다. 스포츠는 삶을 가르쳐 준다." - Billie Jean King, 미국의 프로 테니스 선수 - 


스포츠 활동은 청소년의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스포츠 활동이 신체적-정신적 건강, 인지적/사회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늘날 네덜란드에서 스포츠 활동은 인적 자본을 효과적으로 개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고려되고 있다. 와그닝언 대학의 Sabina Super 박사는, 가정 불화 혹은 단절된 인간관계로 외톨이가 되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등 사회적 발달이 취약한 청소년의 경우에도 체육 활동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연구에서, 청소년들은 스포츠를 통해 또래와 긴밀하게 연결됨으로써 일상에서 마주하는 스트레스에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데 상당한 도움을 얻었다. 그녀는 적절한 판단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지속 가능하며, 균형 잡힌'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사람들이 그룹을 통해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그 그룹에 더 충실할 것이다." -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CEO - 


스포츠 활동은 개개인을 넘어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네덜란드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로 구성된 다문화 사회이고, 각 대학교마다 적게는 10퍼센트에서 많게는 40퍼센트 이상이 190여 개 국 출신의 외국인 유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인구 가운데서도 10퍼센트가 넘는 170여만 명이 비서구 국가 출신의 이민자로 집계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집단 간 소통과 긴밀한 교류, 그리고 깊은 이해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는데, 스포츠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포츠가 이토록 중요하며,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학자들은 어느 사회에서, 누가, 어떤 스포츠를, 누구와 함께 하며, 여기에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것을 살펴보면 그 사회에서 자원이 분배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자본, 지식, 교육, 지위와 같은 것들 뿐만 아니라 스포츠도 자언의 하나로 사회에서 분배되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를 '스포츠 사회학'이라 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더 평등하게 자원을 분배(스포츠를 향유)하는 사회는 대체로 더 평화롭고, 부유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이나 행복도가 높다. 또한 문화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하는 스포츠는 형식과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시대와 사회가 변함에 따라 함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스포츠를 통해 사회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연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스포츠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자리 잡아 왔을까? 한국의 스포츠 시스템은 정부 기관(문화체육관광부)을 중심으로 중앙 집중화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 스포츠를 향유하는 시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형태로 조직되어 있다. 정부는 두 개의 중심 - 국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엘리트 선수 양성과 시민들의 스포츠 접근성 향상 -으로 스포츠 정책을 설계하며, 스포츠를 바라보는 방식도 생활체육,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으로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정책이 하나의 통합된 원칙 아래서 운영되지 못하거나 서로 충돌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스포츠는 아주 오랫동안 국제 수준 경기에서의 성과를 통해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단결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사람들은 개개인의 운동선수의 성과를 국가 전체의 자존심으로 인식하며, 특히 일본이나 북한과의 스포츠 경기들은 정치적/역사적 배경과 결합하여 내부 결속력을 강화하고 통치력을 강화하는 선전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까닭으로,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군사 독재 정부는 소수의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Park, 2011). 스포츠에 접근할 수 있는 시민의 수는 적었고, 경제적 배경이나 지리적/사회적 환경에 따라 스포츠 접근성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오늘날 한국 스포츠는 각종 국제 대회에서 상위 10위권에 포함되어 있으며, 스포츠 시설에 대한 시민들과 정부의 지원도 시민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다(Park et al., 2012). 생활 체육 시설을 지자체가 구입하여 공원, 공공 보건 센터, 노인 주택 등 공공장소에 배치하여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다만, 아직까지 성별에 따른 차이가 여전하다는 점은 한국 스포츠 문화에 과제로 남아 있다.


네덜란드의 체육관은 캠퍼스의 한가운데에서, 또는 지역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지식의 축적을 넘어, 개성을 존중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곳에서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참고 문헌>

1. Netherlands Times, 2018-08-15, Dutch Much more active than other Europeans

2. Super, Sabina, et al. "Exami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sports participation and youth developmental outcomes for socially vulnerable youth." BMC public health 18.1 (2018): 1012.

3. 동아일보, 2018-10-02, "온 국민이 평생 활기차게" 스포츠복지 주춧돌

4. 동아일보, 2018-10-30, "한국 스포츠 패러다임 바꿀 공공 SC, 지자체 관심으로 자란다"

5. Breedveld, Koen, and Remco Hoekman. "Measuring sports participation in the Netherlands–the need to go beyond guidelines." European Journal for Sport and Society 8.1-2 (2011): 117-132.

6. Janssens, Jan, and Paul Verweel. "The significance of sports clubs within multicultural society. On the accumulation of social capital by migrants in culturally “mixed” and “separate” sports clubs." European Journal for Sport and Society 11.1 (2014): 35-58.

7. Ahn. (1998). 21세기 한국 체육발전모델과 실현 전략. 

8. Park, Jae-Woo, Seung-Yup Lim, and Paul Bretherton. "Exploring the truth: A critical approach to the success of Korean elite sport." Journal of sport and social issues 36.3 (2012): 245-267. 

9. Park, J. W. (2011). Elite sport development in South Korea: an analysis of policy change in the sports of athletics, archery and baseball (Doctoral dissertation, © Jae Woo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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