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연구팀, 폐암과 미생물 관계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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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녀의 사망원인 1위가 ‘암’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은 ‘폐암’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대기오염 문제가 폐를 비롯한 호흡기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호흡기 건강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MIT 연구팀이 기존의 폐암 치료방법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연구를 내놓았다.
이들은 숙주인 폐의 점막에 존재하며, 숙주와 공생하는 미생물이 폐암을 악화시킨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 과학저널 ‘셀(Cell)’ 최근호에 발표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의 타일러 잭스(Tyler Jacks) 교수는 “연구 결과 폐의 공생 미생물의 균형이 깨졌을 때, 폐암으로 직결되는 만성 염증이 악화됐다”며, 이는 폐암의 발병에 있어 숙주의 유전적 결함이 강조되었던 기존의 관점을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생명과학계에서는 암의 발병에 유전적 결함이나 환경적 요인이 주된 원인이라고 믿어 왔다. 따라서 암 치료를 위해 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거나, 수술을 통해 제거하거나,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방식으로만 치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숙주에게 발병한 질병은 숙주에게 원인이 있으며, 그 치료법도 암세포를 목표물로 해야 한다는 한정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폐암 환자들의 70%에서 미생물 감염이 발견되며 생존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임상 결과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만성 폐렴 환자의 상당수가 미생물 감염으로 인해 발병했으며, 폐암으로 발달하는 비율도 다른 그룹에 비해 높았다. 이는 폐암 발달 과정에 들러리로만 여겨졌던 미생물이 모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장 미생물과 숙주의 상호작용에서 형성되는 면역 시스템이 숙주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특정 장 미생물이 숙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질환의 발병에 직접적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이 최근 몇 년간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미국 텍사스대 앤더슨암센터 교수팀은 유익한 장내 미생물이 악성 흑색종에 대한 면역반응을 돕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장내 미생물 조절로 암, 비만의 개선 효과를 확인한 김유미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학계에선 같은 약이 어떤 사람에게는 듣고, 어떤 사람에게는 듣지 않는 이유가 장내 미생물 구성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생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탄력을 받으면서, 연구자들은 폐 점막 미생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장 다음으로 큰 점막을 가져,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서식하는 폐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환의 발병 과정에 미생물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타일러 교수 연구팀은 암 발병을 유도한 유전자 변이 생쥐를 이용해 폐암 발병 과정에서의 숙주-미생물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사했다. 공생 미생물이 제거된 생쥐와, 그렇지 않은 생쥐의 폐에서 암의 발달 과정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암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γδT세포의 활성에 폐 점막의 미생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γδT세포는 장, 피부, 폐 등의 조직에 주로 분포하는 면역 세포로, 면역 반응을 지휘하는 성질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타일러 교수는, 이 작업이 미궁 속에 빠져 있었던 미생물과 면역 시스템 사이의 연결 고리를 밝혀냄으로써, 간접적으로 암 발달을 억제하는 새로운 전략을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생물을 제거하거나 γδT 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방식 모두 폐암 발달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고 덧붙였다.
다만, 이러한 발견이 의료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정확히 어떤 미생물들이 해로운지 밝히는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폐에 존재하는 전체 세포들 가운데 미생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낮다는 점 역시 활발한 연구를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