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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울리는 조합

by 윤타

<피터 & 웬디> 1911. 제임스 매슈 배리.


<피터 팬>의 원래 제목은 <피터 & 웬디>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원작 소설 <피터와 웬디>를 한국어로 온전히 옮긴 최초의 번역은 1998년 장영희 번역본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봤던 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아동용 축약본이었다고.


에이리언 시리즈 중 가장 암울하고 지루한 건(좋은 의미로) <에이리언 3>라고 생각해 왔다. <에이리언: 어스>는 <에이리언 3>와 <에이리언 1>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것 같다.


드라마 중간중간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 팬>이 투영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어렸을 때 봤던 저 애니메이션이 저렇게 음침하게 보이다니. 혹시 <피터 팬> 원작 소설이 원래 저렇게 기묘하고 음침한 건 아닐까. 궁금했다. 처음으로 <피터 팬> 원작을 읽었다.


아무래도 영국 제국주의 전성기에 쓰인 소설이라, 당시 영국인의 편견이 담긴 시선이 소설 곳곳에 자연스럽게(당연하게) 드러난다. 가부장제, 계급 차별, 여성 차별, 인종 차별 같은 관념은 100년 전이라 어쩔 수 없겠지만, ‘동화’라고 하기엔 수위가 다소 강한 기괴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판타지’로 포장되어 있다.


<에이리언: 어스>에서 막강한 권력자이자 빌런으로 나오는 젊은 회사 주인은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한 천재 소년 이미지로 나온다. 원작 소설 속의 피터 팬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쾌활하고 순수하고 매정한’


작가는 아이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문장이 네 번 반복된다. 피터 팬 역시 ‘매정’한 아이다.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ADHD에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와 비슷한 말과 행동을 한다. <피터 & 웬디>가 1911년에 하나의 소설로 묶여서 출간되기 전, 어른용 소설과 희곡으로 쓰였을 때는 훨씬 더 암울했다고 한다. 동화가 아닌 어른 소설로 읽으면 지금 봐도 꽤 기괴하고 유니크하다.


<에이리언: 어스>와 <피터 팬>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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